아이들. 여러분. 너희들. 하다못해 아마 드라마 밖에서는 쓰지 않을 것 같은 '제군들' 같은 해괴한 호칭까지, 한 교실 안에 있는 학생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방법은 참 많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는 것보다 참으로 간편한 일이다.
교실 안에 앉아 있는 개개인을 유형화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청소년 소설, 인터넷 소설, 만화, 심지어 학교괴담에도 유형화된 아이들이 있다. 예전엔 공부 잘 하고 착한 애와 싸움 잘 하고 못된 애가 나오더니 이젠 공부 잘하고 스트레스 받는 애와 싸움 잘하고 내면의 상처를 가진 애가 나온다.
<이름이 무슨 상관이람>(엘렌 위트링거 지음, 정소연 옮김, 궁리 펴냄)의 주인공인 열 명의 아이들 역시 표면적으론 분류하기 어렵잖아 보인다. 겉으로 보기엔 십대 여자애들이 대거 등장하는 미국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 같기 때문이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나 <브링 잇 온>, <체인지>나 <보이 걸 씽>같은 영화들. 부잣집 딸인 금발의 퀸카(제 엄마와 외모가 꼭 닮은), 특이하고 사교성 없는, 혹은 사교성 없는 것이 특이함의 요소라고 생각하는 애, 영어가 서툰 유학생, 정의로운 애, 소심한 애, 인기 많고 잘난 전학생, 자존심은 세나 현실이 자존심을 따라주지 않는 애, 백인 엘리트 집단의 흑인 남자애, 재능 많고 비밀 있는 아웃사이더, 아웃사이더와 정반대 이미지를 가진 그의 친형 미식축구 스타. 이 열 명의 아이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가지고 차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간다. 한 아이가 입을 열면 그를 둘러싼 세상과 사람들이 이야기에 엮여 나가고, 그 관계맺음의 연쇄로 새로운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주제를 가지고 일관되게 이뤄지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을 향해 간다. 이 과정에서 하이틴 영화 속 전형 같이 보였던 이들의 진짜 내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퍽 단순한 구조이지만 아이들의 발언 순서를 배열하고, 그들의 일상에 깃드는 고민과 위기를 적당한 중량감으로 표현해 낸 작가의 연출력이 발군이다.
소설은 인물들의 내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주는 일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동아리 활동을 필수로 해야 하고, 더 좋은 학군에서 공부하기 위해 불편한 통학 버스를 타야 하는 학교생활. 수평선을 볼 수 있는 바닷가 절벽의 소나무 숲과 해변을 사들이고 숲을 베어내 저택을 지은 부잣집, 그런 부잣집들이 원하는 세련된 마을 이름 '폴리 베이'와 마을 토박이들이 유지하길 원하는 이름 '스크럽 하버' 사이의 갈등. 갈등 사이에서 드러나는 마을 안의 빈부격차와 은연중 드러나는 아이들 사이의 예민한 신경전. 안팎을 오가는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스크럽 하버라는 마을을 진술과 묘사라는 두 가지 방법으로 간접 체험하게끔 해 준다.
많은 어른들이 하는 말처럼, 어른이 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면 그때 부모님 말 들을 걸, 할 수도 있고, 어른이 돼서 해도 좋을 일들 때문에 시간을 날려 보냈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열아홉 살에 하고 싶었던 일과 생각했던 것들이 스무 살에 하고 싶었던 일과 생각했던 것들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몇 살엔 걸어야 하고 몇 살엔 글을 떼야 한다는 성장 발달의 수순은 차치하고서라도, 몇 살쯤엔 결혼을 하고 몇 살쯤엔 퇴직을 해야 된다는 것까지 꽝꽝 못 박아 둔 세상에서 어째서 모두가 고민에 빠져 있는 시기인 열아홉에겐 '고민 적령기'라는 이름을 붙여 주지 않는 것인지. 열아홉 살은 인간이 아니고 스무 살부터 인간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름이 무슨 상관이람>은 절대로 '애는 애일 뿐' 식의 어조를 쓰지 않는다. 소설은 그 순간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절실한 고민들을 신중한 톤과 성숙한 문장들로 담아내는 데 노력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애늙은이인 것도 아니다. 이들은 그저 십 수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때로는 공을 들여, 때로는 직관적으로 이해한 세상과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또 하나 이 책의 멋진 점을 꼽자면 그건 바로 <이름이 무슨 상관이람>이 아주 두근거리는 로맨스 소설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이제 뭔가 탐색하고 말 돌리고 어렵게 구는, 어른 소설에 나올 것 같은 어른 연애엔 지쳤다. (그거야말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못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소설 속에서 리카르도가 조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때, 포르투갈어를 쓰는 소년의 서툰 영어 행간에 스며든 천진한 애정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이름이 무슨 상관'이냐는 질문은 아이들의 이름이나 마을 이름뿐만이 아니라 감정의 이름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이 형언 못할 설렘을 독자에게 전할 수 있었던 데엔 번역의 힘도 크다. 열 명의 아이들이 가진 각자 다른 말투를 살리고, 단어나 문장의 뉘앙스도 잘 옮겨 놓았다. 합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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