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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수'야말로 살아 있는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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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수'야말로 살아 있는 사전이다!

[프레시안 books] 정수일의 <실크로드 사전>

십여 년 전, 바다의 실크로드를 따라 베트남 중부 호이안이라는 고대 항구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인도인들이 바닷길을 따라 중국과의 중간 교역지로 삼은 곳으로 원주민인 참족과 함께 앙코르와트보다 훨씬 오래된 인도문명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이들이 만든 나라 참파는 중국인들에게는 점파(占婆)라 알려지기도 했으며, 그 중심은 거대한 벽돌 탑과 신전이 존재하는 밀림 속 고대 도시 미선이다. 당시만 해도 이곳을 찾는 외국인 순례자가 드물어 고즈넉한 시골동네였고 주변에는 호텔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숙소들이 몇 있었다.

베개를 대신한 책

<실크로드 사전>(정수일 엮음, 창비 펴냄). ⓒ창비
당시는 디지털카메라가 없던 때라 가방이 비교적 가벼웠다. 노트북을 가지고 다닐 일도, 외장하드를 넣고 다닐 일도 없었다. 카메라와 필름 그리고 책 한권이면 됐다. 해지고 숙소로 들어가면 샤워하고 천정에 붙은 대형 선풍기를 돌린 후 침대에 누워 책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 때 늘 내 배낭 속에 함께한 책이 정수일의 <실크로드학>(창비 펴냄)이었다. B5의 큼직한 판형에 810쪽이나 되는 이 책은 카메라 한 대 무게는 족히 됐다. 하지만 책을 메고 다니는 피곤함을 상쇄할 만큼 실크로드를 걷는 내게는 성경 같은 책이었다. 어느 페이지를 열든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들이 담겨있었으니 말이다. 책이 나온 다음 해였던 2002년 한해 수 없이 많은 길을 함께했고, 밤이면 나는 이 책을 보다 벽에 붙은 도마뱀붙이의 낮은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낯선 열대의 오지에서 잠이 들곤 했다. 물론 그 책은 내 베개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전에 쓰던 베개 높이보다도 훨씬 높은 1092쪽의 <실크로드 사전>(정수일 엮음, 창비 펴냄)이 나왔다. 정수일 선생이 국가보안법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 974개의 표제어 항목을 집필한 초고를 바탕으로 작년 한해 총 1900개 표제어 항목과 8000개 항의 색인을 추가한 거대한 실크로드 지식의 총합이다. 물론 출판은 그리 쉽지 않았다. 후기에 기록된 선생의 글에 의하면 "모 학술재단에서 사전류 집필 공모가 있다고 하기에 타의 반 자의 반 응모했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러던 것이 경상북도가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발의하면서 이 사전이 빛을 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 책은 사전(辭典)이 아니라 사전(事典)이다. 단어의 언어적인 풀이가 아니라 실크로드와 관련된 여러 사항을 기술하고 지식을 제공하는 사전인 것이다. 그래서 엮음 뿐 아니라 지음도 함께 있는 사전인 된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던 책의 꼴은 'ㄱ~ㅎ' 으로 전개되는 사전이라 어찌 서평을 써야할지 고민했다. 책이 나온 지 몇 달 되었으니 서평이 있을까 찾아봤지만, 역시 없다. 모두 정수일 선생의 노고를 치하하는 인물 기사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교수신문>에서 "특징적인 점은 표제어나 색인 수 등 규모 면에서 세계 최대 수준일 뿐 아니라,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인 오아시스로, 초원로, 해로를 총체적으로 망라해 환지구적 문명 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를 학문적으로 정립한 탁월한 연구 성과로 제출됐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이 사전은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 중국이라는 기존의 통설을 깨고 한반도까지 연장시킴으로써 우리의 문화적 위상을 드높일 뿐 아니라 실크로드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마련해주고 있다"고 짧게 언급할 뿐이다. 그래서 나 역시 서평은 포기하고 사진가로서 솔직하게 이 사전의 독자가 되어 글을 써보기로 했다.

첫 번째 항목 파미르

파미르 가는 길의 백사산과 부룬쿨 호수.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2008, 이상엽


아시아 대륙 중앙부에 있는 대고원. 평균 고도 5000미터로 히말라야 산맥과 힌두쿠시, 톈산 산맥 등 대 산맥을 품고 있는 '세계의 지붕'이다. 중국에서는 이 고원을 총령(茐嶺)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수경주> '수하이'에 '총령은 둔황 서쪽 팔천 리 거리에 있는 높은 산인데, 산상에서 파가 나므로 옛날에 총령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에서 유래했다.(823쪽)

건조하게 쓰이긴 했지만 이 기술 속에서 재밌는 것을 발견한다. 총령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면 '파마루'다. 어째 파미르하고 비슷하게 들린다. 흔히 실크나 도자기, 향신료 정도만 떠올리지만 그보다 더 먼 옛날 언어를 쓰던 인류가 이 실크로드를 통해 오갔으리라는 막연한 확신이 든다. 우리는 알타이어족이다.

두 번째 항목 카슈가르

성지순례를 다녀 온 청년을 위한 거리 퍼레이드.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카슈가르. ⓒ2002, 이상엽

644년경 인도로부터 귀국길에 오른 현장은 카슈가르를 지나며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농업이 성하고 직물업이 발달하였으며, 문자는 인도 문자를 모본으로 하고 있으며, 불교를 신봉하는 승려는 1만여 명이고 사찰은 수백 개 소에 달한다." (771쪽)

즉 이곳은 당시만 해도 이란계 아리안과 트르크인들의 세계였고 불교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채 100년도 지나지 않아 당의 장수 고선지가 탈라스 전투에서 패한 후 이 지역은 차츰 이슬람의 세계로 변했다. 중동에 비해 무척 자유분방하고 세속적인 교리를 갖고 있었으나 최근 들어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 번째 항목 투루판

투루판의 고창고성 풍경. 서기 500년쯤 들어선 고대도시는 이제 풍화로 그 흔적만이 남았다.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투루판. ⓒ2002, 이상엽

옛날부터 이곳은 화주, 사주, 풍주라 불렸다. 불과 모래와 바람은 역설적으로 이곳을 문명의 용광로로 만들었다. 불, 즉 고온은 포도나 면화와 같은 특산물의 산지로 이름을 떨치게 했고, 모래, 즉 건조한 기후는 카레즈 같은 전무후무한 관개시설을 발전시키고 유물 보존을 가능케 했다. 바람, 즉 기류 또한 문명의 소통을 가져왔고 오늘날엔 에너지원까지 제공하고 있다. (815쪽)

이 책의 미덕이랄까? 인문지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뛰어난 해석이라 할 것이다. 자연지리지적인 요소를 인간의 삶에 적용해 가장 가혹한 해면 아래 154미터의 사막 분지가 어떻게 실크로드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지난 십 수 년간의 나의 실크로드 취재를 대조하며 항목을 찾다보면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어떤 때는 지금까지 수없이 읽었던 <실크로드학>에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고, 당연히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항목이 빠져있어 아쉬운 경우도 있다. 현재로서는 기존의 백과사전 유와 보완해가며 참조해야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전망적'으로 펴낼 예정이라고 하는 <문명교류 사전>은 표제어 5148개에 이른다고 하니 1900개의 항목으로 만들어진 <실크로드 사전>에 비해 두 배의 노작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틀림없이 나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인간 실크로드

<실크로드학>(정수일 지음, 창비 옮김). ⓒ창비
정수일 선생은 10년 전까지 '무하마드 깐수'라 불렸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연변 디아스포라의 아들로 태어나 베이징대학 동방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카이로대학 인문학부를 중국 국비 장학생으로 마쳤고, 중국 외교부 모로코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그러다 돌연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다는 욕망에 북한에 들어가 평양외국어대학의 교수를 지냈고 이후 해외로 나가 튀니지,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이슬람 전공 학자로 대학에 재직했다. 그리고 돌연 레바논계 필리핀인으로 국내에 들어와 단국대에서 역사학 박사를 받고 초빙교수로 임용되어 활발한 연구 활동을 벌인다. 동양권 7개 국어(한국·일본·중국·아랍·페르시아·말레이·타갈로그어), 서양권 5개 국어(러시아·독일·프랑스·에스파냐·영어)를 합쳐 총 12개 언어를 구사하는 이슬람 학자는 그 말고는 국내에 없었다.

그러던 그는 1996년 당시 안기부에 의해 북한공작원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구형받는다. 하지만 그의 연구 업적을 높게 평가하는 각계의 노력으로 감형되어 만 5년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2003년에 비로서 한국적을 취득했으니 중국, 북한, 레바논, 필리핀에 이어 5번째 국적을 얻은 셈이다.

선생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분단의 비극이다.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다. 중국에서 30년, 북한에서 16년, 말레이시아·필리핀·튀니지에서 5년, 한국에서 29년을 살았다. 돌이켜 보면 참 굴곡도, 파란도 많았던 인생이다. 역마살이 낀 건가."

아마도 정수일 선생이 연구하고 쓴 실크로드 역사 속 어떤 인물보다 그 자신이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선생의 나이가 올해 여든이다. 사전을 여기저기 뒤적이다보니 아직도 내가 '가야할 길이 많은 청춘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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