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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천 "'해무'는 내게 큰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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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천 "'해무'는 내게 큰 산이었다"

[인터뷰] 동식, 순박했던 청년이 잔인한 인간이 되기까지

“제 눈이 너무 컸어요.”
서른을 목전에 둔 그는 스크린에 비친 스스로를 보고 난 뒤에야 자신의 눈이 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영화관에 앉아 바라본 자신의 모습은 그동안 작은 화면으로만 봐왔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팬들의 함성이 뜨겁게 느껴지는 무대, 그리고 수천만의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브라운관 앞에 섰었던 그도 첫 영화를 선보이는 자리에선 포스터만 봐도 두근거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으며, 시사회 내내 긴장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고도 했다. 영화가 시작하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것에 마냥 부끄러웠던 이 신예는 영화의 스크롤이 모두 올라가고 나서야 ‘먹먹함’을 느꼈다. 스크린 속 그의 눈에 비친 여섯 선원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모습을 지닌 이들이었다. 스물아홉의 그가 배우로서 새로운 한 발을 내디뎠다. 영화 ‘해무(감독 심성보)’의 순박한 막내 선원 동식과 만난 그, 박유천이다.
“이 영화에 속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고, 또 영광이었습니다.”
ⓒ뉴스컬처 이슬기 기자

‘해무’의 박유천, 그는 첫 영화부터 묵직한 무게감을 안고 시작했다. 작품을 채우고 있는 배우들의 면면은 물론 ‘살인의 추억’을 함께 만들었던 심성보 작가와 봉준호 감독이 이번엔 감독과 제작자로 만난다는 것부터 시선이 쏠렸다. 여기에 올 여름 치열한 흥행 대결을 벌이고 있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대작의 마지막 주자라는 점까지. 들은 것도, 상상해 본적도 없는 미지의 세계였던 영화는 그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와 삶의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정말 대단하고, 멋있고… 또 신기하기도 했어요.” 차디찬 바다 위에서 몸을 에는 추위, 그리고 떨림과 싸워낸 그는 이 영화로 작품보다 더욱 큰 사람을 얻었다.
“대단하신 분들이 왜 대단하신 건지, 몸소 알게 됐어요.” 그는 촬영했던 그 순간이 말 그대로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동선 하나하나 옮기는 것조차 불안하고, 낯설었던 신예에게 선배 김윤석은 몸으로 모든 것을 보여줬다. 또 ‘이렇게 하면 좋겠다’가 아닌 ‘이런 방법도 있으니 고민해봐라’라는 조언을 던졌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의문을 가졌고, 조금씩 그 내면에 파고들길 수 개월, 그렇게 그는 영화 ‘해무’에 물들어갔다.
“처음부터 모든 촬영이 끝날 때까지 고민과 집중을 계속한다는 것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크게 소모가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인데, 정말 한도 끝도 없이 그 감정을 이끌어 가시더라고요. 그분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 자체로도 제겐 굉장히 큰 의미였어요. 실은 연기 이야기를 나눌 때보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죠. 그저 평범한 대화들이 저를 선원으로 살 수 있게 도와줬어요.”
그는 영화 ‘해무’에서 갓 뱃일을 시작한 스물여섯의 청년 동식으로 분한다. 할머니를 걱정시키는 것이 싫어 ‘돈은 내가 벌어오겠다’며 괜한 허세를 부려보지만, 밀항을 도우라는 선장의 말에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고, 배 위에서 첫 눈에 반한 홍매에게 줄 수 있는 건 몸을 따끈하게 할 컵라면뿐이었던 순박한 막내 선원이다. 그런 그가 눈앞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잔인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다.
촬영에 임하며, 또 스크린 속 해무에 갇힌 이들을 바라보며 그는 참 많이도 아팠다며 운을 뗐다. 동식을 생각하면 꼭두새벽에 일어나 잠을 못 이루는 날도 허다했을 정도였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홍매와 연결이 되어 있는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질까 실타래같이 얽혀있는 감정에 한 치의 의심조차 던지지 못하는 한 청년. 눈앞에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동식의 모습은 그에게 겪어볼 수도, 겪어보기도 싫은 것임이 분명했다. 수많은 고민 끝에 얻은 그의 결론은 죽음의 현장을 목격한 후 서로의 몸을 보듬는 동식과 홍매의 모습이, 동식에게만큼은 분명 사랑이었다는 점이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의문이 굉장히 많았죠. 글로는 상상해 봤지만, 제가 겪어보진 못한 것이다 보니,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니 너무나도 살고 싶고, 살아있다는 걸 깨닫고 싶은 감정이 어느 순간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더라고요. 현장에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죠. ‘액션’ 소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눈물이 났어요. 흐느낄 정도로 말이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정말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김윤석은 “스펀지 같은 배우”라 칭했다. 첫 번째 영화,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 서있다는 중압감을 알고 있는 그이기에, 오롯이 작품 속에 녹아들었던 후배 배우에게 전할 수 있었던 진심 어린 한 마디였다. 대선배의 칭찬에 “잘 모르겠다”며 웃어 보인 그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감사함, 뿌듯함이 뒤섞인 감정을 전했다.
“너무 큰 칭찬이잖아요. 저는 단지 선배님들과 작품 안에서 잘 스며들기만을 바랐어요. 튀지 않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죠. 그 외에 제가 이번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더 흡수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진 않았어요. 그러려고 연기를 하지도 않았죠. 단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열심히,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봉준호 감독과 만날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영화의 의미를 더욱 깊게 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모니터를 보며 “동식이란 인물에 정이 가고, 사랑하게 되니 헤어지네”라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지난 겨울,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 한 마디였다.

“그런 말씀을 해주신 것 자체가 감사함으로 남아있죠. (함께 작업하며) 정말 매력적이신 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듬직하고, 진짜 멋진 분이었죠. 다음에 연출하시는 작품에 저를 불러주시면 ‘만세’를 부르면서 들어갈 거에요.(웃음)”
추운 겨울을 지나니, 시간은 훌쩍 흘러 어느덧 여름이다. 어서 빨리 관객을 만나고픈 신인 배우에게 주어진 기다림은 즐거움과 설렘, 그리고 애틋함으로 남았다. 이미 촬영은 끝났고, 자신의 손을 떠나버린 작품이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홍매의 ‘집에 가자’라는 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정말 쉽게 나올 수가 없는 감정이잖아요. 그런 감정을 곁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겐 복이었어요. 당연히 ‘좀 더 잘하고 싶었는데’란 마음은 남아있는 것 같아요. 사투리 부분도 그렇고, 영화 촬영을 하면서 제가 ‘좀 더 빨리, 많이 알고 있었다면 더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왔을 텐데’란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그나마 위안이 된 건 제가 튀지 않았다고 말씀해주시는 거였어요. 영화에 잘 스며들었다는 말만으로도 굉장한 위로였죠.”
이제 개봉을 눈앞에 둔 그의 바람은 작다. “좋은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에게 큰 산으로 다가왔던 영화 ‘해무’는 욕심을 내려놓게 한 작품이었다.

“김윤석 선배님은 ‘신인상은 군대 가서 받아. 내가 대신 받아줄게’라고 농담을 던지시기도 했어요.(웃음) 물론 상을 받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좋은 작품에 속해있었던 것만으로 기쁘죠. 그동안은 상에 대한 욕심이 생겼던 작품도 있었고,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해무’만큼은 정말 욕심이 안 생기더라고요. 그저 이 작품은 제게 큰 산같았어요. 이젠 무사히 개봉돼서, 좋은 작품을 많은 분들이 보시길 바랄 뿐입니다.”
[프로필]
이름: 박유천
직업: 가수, 배우
출생: 1986년 6월 4일
참여작: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미스 리플리’, ‘옥탑방 왕세자’, ‘보고싶다’, ‘쓰리 데이즈’ 외/ 영화 ‘해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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