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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표감독 장예모, 예술로 다시 일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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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표감독 장예모, 예술로 다시 일어서다!

[언론네트워크] 장예모 신작 <5월의 마중> 리뷰

장예모(張藝謀) 감독을 처음 만난 건, 1987년에 <붉은 수수밭>이다. 그 당시에 중국어로 나오는 영화는 대만과 홍콩에서 제작한 영화뿐이었고, 그것도 거의 대부분이 피바람이 휘몰아치는 무협영화였다. <붉은 수수밭>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중국 대륙에서 제작한 영화로 호기심을 일으킨 영화였다.

중국 대륙은 20세기 냉전체제의 반공교육으로 '무시무시한 모택동(毛澤東)'으로만 알려졌고, 그 이전 이야기는 교과서나 풍문으로만 듣던 중국 대륙의 모습을 영화로 만난다는 호기심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래선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국 대륙영화로 가장 잘 알려진 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호기심에만 그치지 않는다. 드넓은 대륙의 웅장함으로 압도하는 붉은 수수밭 사이에 담긴 어느 여인의 고난이 장엄하고 숙성 깊은 영상과 속 깊은 이야기로 우리의 눈과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뒤론 장예모라는 이름만으로 그의 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았다. <국두>, <홍등>, <귀주 이야기>, <인생>, <집으로 가는 길>에 푹 빠져들었다. 내 90년대 시절은 장예모와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작품에 온통 넋을 빼앗겨 살았다. 2000년대 시절에 들어서더니, 그가 <영웅>이라는 무협영화를 내놓았다.

"아! 그가 드디어 무협영화에 손을 대는구나!" 두근거리며 만났다. 내가 붙인 별명 '색채의 마법사'라는 걸 과시하려는 듯한 영상연출이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거슬렸지만, 내가 만난 수많은 '무협 환타지'에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가슴 벅찬 감동에 휩싸여 들었다. 뒤이어서 <연인>, 장쯔이(章子怡)를 가장 화사하게 꾸며서 환상적인 색채감과 액션을 보여주었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지루하게 늘어지더니 끝내는 축 쳐져 버리고 말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가 이제 내리막길로 가는구나! 그래도 설마?" <황후 화>에서 그의 색채감은 천박해지고 연출은 유치찬란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맘에 한숨을 내쉬었다. "예술로 일어서서 상술로 무너지다!" 그래도 그 이전에 감동했던 수많은 작품을 잊지 못하여 "예술로든 상술로든, 우리의 가슴으로 다시 되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기도하였다.

그 뒤로 10년 가까이 그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을 연출했다고도 하고, 운남성의 계림을 비롯한 중국의 유명한 관광지에 눈요기 오락을 만들었다고 했다. 중국이 대륙의 장대함을 딛고 일어서는 그 '욱일승천'을 과시하는 일이 그에게 의미 없지 않겠지만, 그가 왠지 그 찬란함의 수렁에 휘말려 들어서 자기 자신의 '참다운 모습'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나이가 들면 누구나 시들어간다. 그 시들어감이 그렇게 추한 쪽이 아니라 고졸(古拙)한 쪽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차라리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은퇴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런데 작년 어느 날 그의 <진링의 13소녀>를 만났다. 반가우면서도 불안했다. 조마조마하며 열어보았다. 내 염려와 불안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영웅>이후에 보이던 허세나 억지가 없어졌다. <귀주 이야기>나 <집으로 가는 길>에서 보여주던 소박함이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그게 오히려 연출력이 시들기는커녕 좀 더 세련되고 탄탄해진 걸로 보였다. <영웅>이후에 보이던 잘못을 교훈으로 삼아서 더욱 나아진 게 아닐까? 그러나 그의 작품을 한 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 영화 <5일의마중> ⓒ찬란
그래서 이번 작품 <5일의 마중>을 만남에 두근거리는 맘을 지그시 누르며 긴장했다. 이번엔 작품내용이 <귀주 이야기>나 <집으로 가는 길>와 비슷해선지, 연출에 그 예전의 소박함을 잘 그려냈다. 그가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좀 더 나아졌다고 말하고 싶은 맘이 꿀떡 같지만, 앞으로 두어 개 작품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잃어버린 형님을 다시 만난 듯이 반갑고 기뻤다.

그는 이번에 또 공리(巩俐)를 주연으로 함께 작업했다. 공리는 화사하거나 관능적인 미인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가 요염하거나 팜므파탈한 캐릭터를 맡으면 감흥이 별로 돋지 않고, 시리고 매서운 고난을 이겨내는 강단진 캐릭터로서 수수한 모습이 훨씬 더 어울린다. 그래서 <황후 화>에선 억지로 분장과 연기력으로 감당했지만, 이 영화에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장예모의 20여 개 작품 중에서, 1987년 <붉은 수수밭>부터 이번 영화까지 거의 30년 동안 8편을 함께 작업했다. 대단한 인연이고 둘도 없을 믿음이겠다.

<영웅>에서 진시황으로 출연했던 진도명(陈道明)이 매우 돋보였다. 진시황으로는 그저 다부진 인상을 주는 정도를 넘어서지 못했는데, 이 영화에선 연기력이 온몸에서 깊은 숙성으로 우러나왔다. 장예모를 좋은 작품으로 만난 게 무엇보다도 반갑고 기쁘지만, 그의 더욱 좋아진 작품이 장예모 혼자만의 공덕이 아니라, 오랫동안 깊은 믿음으로 이어져 온 공리가 함께 하고 이에 진도명의 숙성 깊은 연기력까지 보태져서, 이토록 좋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게 더욱 흐뭇하다. 많이 부럽다. 그들의 인생과 작품에 기립박수!!!

프레시안=시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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