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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 주목하는 '막후실세' 정윤회…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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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 주목하는 '막후실세' 정윤회…왜?

최태민 목사의 사위이자 '박근혜 총재 비서실장' 출신

'숨겨진 실세', '밤의 비서실장'. 최근 하루가 멀다고 신문지면에 오르내리고 있는 정윤회 씨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숨은 실세로 지목되면서 다양한 추측성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2007년께 박근혜 대통령과 거리가 멀어졌다"고 해명했으나 의혹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관련기사 바로가기 ☞ : 정윤회 "난 박근혜에게 7년전 사실상 잘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도 그의 이름은 언론에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막후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의혹이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낸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등 10여 명의 고위 인사를 천거한 게 정 씨라는 설도 있었다.

그나마 잠시 잠잠하던 숨겨진 실세의혹은 일본 <산케이신문>'박근혜 세월호 7시간' 보도 이후 다시금 불이 붙었다. 정 씨가 세월호 참사 때 박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는 게 밝혀지기는 했으나, 그가 여전히 막후 실세처럼 행동하고 다니는 정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 정윤회, 지난 8월 대통령 측근들과 독도행 발각, 정윤회 만난 역술인 "박근혜와 자주 통화")

정 씨 자신은 극구 부인하지만 왜 언론은 그를 박근혜 정부의 막후실세로 지목하는 걸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 씨와 박 대통령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파악해야 한다.


▲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쓴 뒤 고발당해 8월 18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일본 산케이 신문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이 점심 시간 휴식을 취한 뒤 검찰 건물로 다시 들어가고 있다. 가토 지국장은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에서 증권가 관계자 등을 인용해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 등을 언급하며 사생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연합뉴스


정윤회 전 부인 최순실 씨, 박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

정 씨와 박 대통령의 관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고 최태민 목사다. 최 목사에게는 6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총 3남 6녀를 두었다. 그중에 다섯 번째 부인 사이에 낳은 최순실 씨가 정 씨와 결혼했다.

주목할 부분은 최 목사는 박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최 목사는 지난 1974년 박 대통령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자, 실의에 빠진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박 대통령과 만난 최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등 측근으로 자리매김했다.

박 대통령도 공식석상에서 최 목사에 대한 수차례 굳은 신뢰를 표현해왔다. 이런 굳은 신뢰가 1994년 최 목사의 사망 후, 당시 정 씨 부부에게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최순실 씨는 박 대통령보다 네 살 아래로 대학생(단국대) 시절 아버지인 최 목사 소개로 박 대통령과 연을 맺었다. 어린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 대통령은 여동생처럼 자신을 잘 따르던 최 씨와 상당히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최 씨를 청와대로 불러 자주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최 씨는 박 대통령과 최 목사가 1977년부터 전국적으로 펼친 ‘새마음운동’에 관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후 최 씨는 1987년 ‘육영재단 사태’ 때 재단 직원들이 최 목사와 최 씨를 겨냥해 ‘외부세력 전횡으로 재단이 설립목적에 어긋나 사기업화 되고 있다’며 농성에 돌입하자 자취를 감췄다.

그 후 최 씨는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이런 최 씨가 모습을 드러낸 적이 한 차례 있다. 바로 지난 2006년 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선거 유세 도중 괴한으로부터 피습을 받아 입원했을 때다. 최 씨는 박 대통령 병실로 찾아와 극진히 간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이후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정 씨, 그러나…

부인과 장인의 후광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정 씨도 박근혜 대통령과 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 정 씨와 박 대통령과의 공식적인 관계는 박 대통령이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 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다. 정 씨는 당시 '박근혜 비서실장' 격이었다. 고 이춘상·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비서진 4인방이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도록 연결 고리 역할을 한 사람 역시 정 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 씨는 2002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 총재 비서실장을 맡았다. 그러던 중 2004년 박 대통령이 다시 한나라당에 복당해 대표에 오르자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정 씨는 이후에도 박 대통령에게 가장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거론됐다. 2007년 대선 당시에도 정 씨의 이름이 회자됐다. 정 씨가 비선 조직인 '강남팀'을 꾸려 SNS 작업 등을 해왔다는 것. 2012년 총선 때는 정 씨가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고,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는 정 씨가 인수위 내에 핫라인을 돌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2013년 초에는 정 씨가 영등포 A건물에 사무실을 내고 공식 활동을 시작한다는 설까지 돌았다.

하지만 어느 하나 확인된 것은 없다. 정 씨가 워낙 베일에 가려 있는 인물이라 그렇다. 정 씨는 숨은 실세로 수년 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막상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출신지, 출신 학교는 물론 현재 어디에 거주하는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몇몇 보도를 통해 지난 5월 부인과 이혼한 사실, 그의 출신학교, 그의 이전 직업 등이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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