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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손녀 보러 온 할아버지도 문전박대, 왜?

[민들레] 안전강화에 대한 네 가지 질문

학교, 2014년의 화두는 '안전'

학교에 쏟아지는 공문은 거의 공해에 가까울 정도로 무익하지만, 공문 제목에서 반복되는 단어를 통해 현재 교육당국의 핵심 화두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2012년 공문에는 '학교폭력', 2013년에는 '인성·행복·진로'라는 단어가 두드러졌다. 그런데 2014년을 압도하는 공문 제목은 단연 '안전'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학생 체험활동 안전요원 연수'에 대한 안내가 메신저로 날아오고 있을 정도다.

'안전'에 대한 규정도 대폭 강화됐고, 내용도 매우 세밀해졌다. 예컨대 100명 이상이 단체로 수행하는 체험활동이 금지됐고(그래서 세 개 학급을 묶어 99명이 함께 움직인다), 활동 단위마다 인솔교사뿐 아니라 반드시 '안전 전문가' 혹은 '안전교육 이수자'가 한 명 이상 포함돼야 한다. 학교 밖으로 한 걸음이라도 나가는 프로그램을 운용하려면, 무수히 많은 안전 규정과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그 많은 절차를 다 지켜가며 야외 활동을 하느니, 그냥 안 하고 만다. 결국 하지 말라는 소리다.

▲ 지난 10월 22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여자고등학교에서 '2014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 일환으로 화재 대피 시범훈련이 진행됐다. ⓒ연합뉴스

게다가 학생이 학교에서 지켜야 하는 안전수칙도 엄청나게 상세하다. 서울시교육청에서 배포한 '안전교육 매뉴얼'에 따르면, 학교는 학생이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거의 매 순간마다 안전수칙을 준수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 안전수칙이 얼마나 상세한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때는 지나친 태클·몸싸움·회전 동작이 금지되어 있다. 이 '지나친'이란 말이 매우 애매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결국 태클·몸싸움·회전 동작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야구, 농구, 배드민턴 등 경기 종목마다 금지 동작이 구체적으로 예시되어 있다.

이걸 다 지키려면, 학생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이 매뉴얼에 따르면,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손잡이를 잡고 다녀야 하고, 두 칸 이상 디뎌서도 안 되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녀도 안 된다. 복도에서의 행동도 상세하게 정해져 있다. 복도에서는 뛰면 안 되고, 친구에게 장난을 걸어서도 안 된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인용하지 않아도 그 안전교육 매뉴얼이라는 게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내용으로 150쪽 정도를 채워놨다고 하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마 그 매뉴얼을 다 지키려면 학생은 학교에서 숨만 쉬다 귀가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숨도 급격하게 쉬면 안 될지도 모른다.

학교보안관이 배치돼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데, 손녀를 만나러 온 할아버지조차 교문에서 문전박대 당했다고 울분을 터뜨리는 상황도 발생한다. 급기야 초등학교에는 '안전'이라는 교과가 신설돼, 앞으로 학생은 안전에 대해 정식 수업까지 받게 된다. 가히 '안전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뭔가 어색하고 지나치다. 학교가 학생의 안전에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친 호들갑이란 느낌이 드는 것을 지울 수 없다. 이쯤에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안전 강화에 대한 네 가지 질문

첫째, 매뉴얼이 필요할 정도로 학교는 더 위험해진 것일까?

객관적인 자료를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봐도, 최근 학교가 특별히 더 위험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안전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험 하기는 지금보다 옛날이 몇 곱절 더했다. 1970~80년대에는 학급당 인원이 70명이 넘었고, 한 학년이 1000명이 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화장실은 작은 체구의 어린이가 빠질 수도 있는 깊은 재래식 변소였다. 곳곳이 재개발이던 시절이라 학교 주위는 온통 공사판 천지였으며, 통학 거리는 지금보다 훨씬 멀어 횡단보도를 여러 번 건너 몇십 분씩 걸어야 했다(요즘 이 정도는 고등학교 통학거리다). 학교 안전도우미니 보안관이니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 시절에 특별히 안전사고가 더 많았던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우리나라가 저개발 국가이던 시절과 비교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고 반론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OECD 국가로 분류된 이후 자료들만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2013 청소년백서'를 보면 15~24세 사이의 청소년 사망률은 2000년에 비해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줄었다. 사망률이 크게 줄어든 영역을 살펴보면 교통사고, 운수사고, 익사 등 이른바 안전사고들이다. 그리고 안전사고가 꾸준히 줄어드는 동안 압도적인 1위 자리를 차지한 청소년 사망 원인은 '자살'이다. 청소년 자살 급증은 성적비관과 가족문제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각종 안전사고가 아니라 성적 스트레스나 과도한 성취 기대 같은 것인데, 이런 것은 안전수칙이나 CCTV, 학교보안관으로도 막을 수 없다. 교육체제를 바꿔야 하고 부모의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일거수일투족을 다 얽매면서 학생에게 숨만 쉬고 있으라는 저 안전교육 매뉴얼 안에는 '성취 기대를 낮추라, 공부를 적당히 하라'와 같은 내용은 전혀 들어 있지 않다.

둘째, 안전교육을 강화하면 정말 안전해질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전혀 아니다"이다.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학교 안에서의 위험요소가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는 필요하지만, 막상 저 호들갑스러운 대책은 안전사고나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안전사고는 사람의 문제일 뿐 아니라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 활동하는 사람이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가 위험하면 사고를 피할 수 없다. 교통사고 다발 지역에서 운전자 탓만 할 수 없다. 혹은 우리나라에서 지하철에 무리하게 승차하다 사고를 당하는 승객 비율이 높은 까닭 역시 우리나라 지하철 배차 간격이 다른 나라보다 길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학생 안전 대책과 규정들은 이런 사정들에 대한 고려가 없다. 안전사고의 책임을 학생들의 '안전의식' 부족으로 돌리고 있다는 혐의가 강하게 느껴진다. 학교 환경을 학생 친화적으로 안전하게 개조하려는 방안은 없고, 운동장에서 복도에서 계단에서 뛰지 말라고만 한다. 안전한 학생 수련시설을 확충하고, 이를 담당할 전문가를 육성할 계획은 없고, 그저 수련활동 가기 전 체크리스트만 잔뜩 늘려놓았다. 심지어 수학여행 사전답사 출장비마저 삭감돼 서울 지역의 교사가 경주까지 당일에 답사를 다녀오거나 자비로 숙박비를 부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전은 비싸고 돈이 든다. 돈을 들이지 않은 채 규정만 복잡하게 강화해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셋째, 통제 강화의 수단으로 안전을 내세우는 건 아닐까?

의외일 수 있지만 이 물음에 대한 대답 또한 "전혀 아니다"이다. 물론 교육당국의 속내는 안전을 빌미로 학생 통제권을 강화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통제 역시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돈을 들이지 않으면 감시와 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다. 학교보안관은 교문에 출입하는 사람을 관리하기에도 빠듯하다.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 다니는 중학교는 그나마 관리 인원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저임금 비정규직이다 보니 주로 퇴임한 공무원들이 찾는 자리가 되었고, 감시와 통제는커녕 교사보다도 더 너그럽고 편안한 할아버지 노릇을 하는 경우도 많다.

▲ 서울시는 2011년부터 국공립 초등학교에 '학교보안관'을 2명씩 배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CCTV 역시 10대 중 7~8대는 화소수 100만에도 미치지 못하는 구형이라, 바로 앞에서 찍히거나 어지간히 밝은 날에 찍힌 게 아니라면 얼굴을 식별하기 어렵다. 설사 제대로 찍혔다 하더라도 하루 종일 여러 군데에서 찍힌 그 수많은 CCTV 영상을 분석할 인력도, 장비도 없다. 교사가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 학교 CCTV보다는 차라리 주차장에 세워진 교사 차량 중 혹시 설치되었을지 모르는 블랙박스에 우연히 찍혔기를 기대하는 편이 빠르다.

넷째, 대체 누가 안전해지는가.

끔찍하게 안전을 챙기는 것 같지만, 현실을 보면 학생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게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드물고, 안전을 빌미로 학생이 하지 말아야 할 것, 하더라도 먼저 갖춰야 할 것의 목록만 무한정 늘어나고 있다. 안전 매뉴얼을 지키려면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교사 역시 학생들이 교실에 가만히 있다가 무탈하게 하교하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교육은 어느 정도 위험의 가능성을 감수하는 활동이다. 달리 표현하면, 최대한 통제되고 조직된 위험 속에 아이를 고의로 노출시키는 행위다. 그런데 안전의 이름으로 가능한 교육활동의 폭이 갈수록 좁아지면 그 과정에서 진취적인 교사들은 더욱 위축되고 말 것이다. 우리 교육의 방향은 창의적인 쪽보다는 고루하지만 사고가 나지 않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다. 이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교육활동의 가능성을 위축시키고, 특히 대안교육기관에게 '위험한 교육기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할 빌미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육당국은 왜 이런 정책을 내놨을까. 그들이 제시한 각종 규제와 절차는 분명 안전대책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안전해지는 것이 '학생'이 아니라, '교육당국'이라는 사실이다. 관료제 사회에서는 규정이 많고 상세할수록,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할수록 일을 많이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안전문제가 화두가 되면, 교육당국은 우선 안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세세한 규정과 절차를 만든다. 실제 운영 실태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규정과 절차가 문서로 만들어져 일선 학교에 배포됐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사고가 났다면, 그건 개별학교 혹은 학생 개인의 과실이지 교육당국의 책임이 아닌 게 된다. 이는 정보유출 사고가 날 때마다 각종 신원인증 절차가 점점 복잡해지는 것을 연상시킨다. 아마존 같은 세계적인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아이디(이메일)와 비밀번호만으로도 신원인증을 하고 있다. 오히려 본인 인증절차가 복잡해질수록 요구되는 개인정보도 많아져 결국 유출될 정보도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게다가 각종 보안 프로그램이나 인증서 등을 보안벽이 강력한 대형 서버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관리가 취약한 사용자의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에 저장하게 만들면, 해커에게 더 쉬운 먹잇감이 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인증 절차가 늘어나고 복잡해지는 까닭은 정보통신 당국이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교육당국도 학생의 안전을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는 증거와 책임을 다했다는 안도감이 필요한 것이다.

▲ 지난 10월 2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2014 우리가족 안전캠페인'에서 아이들이 화재 예방 안전 교육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대부분의 안전사고는 천려일실(千慮一失)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사는 교과 내용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학생을 챙기고 보살피는 부분에서는 매우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만약 천 가지를 고려했는데 단지 한 가지를 놓쳐 사고가 난다면, 이는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조건 속에 학생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위험한 조건을 찾아 제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천려를 이천려, 삼천려로 늘리라고 강요한들 문서만 두 배, 세 배로 늘어나고 관련 공무원이나 관리자의 마음만 두 배, 세 배로 편해질 뿐 학생들의 위험은 조금도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교육당국이 이렇게 책임회피와 복지부동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이들이 학생들을 촘촘하게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정부의 파쇼적 요구에도 이와 비슷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대부분의 학교가 두 번 이상은 받아보았을 '정치적 논란이 되는 계기수업 관리 철저' 등의 공문에서 확인된다. 교육당국은 학교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와 규제를 하라는 정부의 요구에 맞추어 각 학교에 형식적인 공문을 보내고 그로부터 보고를 받았다는 증거가 필요할 뿐이다. 물론 각 학교에서는 '정치 중립에 위배되는 수업 한 적 없음'이라는 답신이 갈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부쩍 늘어난 안전 관련 규제와 절차들. 그 결과는 학생의 안전도 아니며, 학생에 대한 통제력 강화라는 불순한 의도의 관철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다만 서류상의 일일 뿐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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