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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맛있다' 소문난 가게, 비결 알아보니…

[살림이야기] 반찬·도시락 만드는 '웰빙수라간협동조합'

유난히 입맛 당기게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재료라도 이들 손에서 특별한 요리가 된다. 주위 사람들은 "그 솜씨면 뭐든 해도 되겠어"하면서 음식점이나 반찬 가게를 하라고 부추기고, 만드는 사람도 남들이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 즐거워 음식을 만들 때 세상만사 궂은일 모두 잊고 푹 빠져들지만, 막상 사업을 하자니 돈도, 지식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으면 겁을 먹기 마련이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두 명의 가정주부는 마음 맞는 사람들을 설득해 반찬가게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적은 돈이라도 모으니 웬만한 자본금이 생기고 사람이 모이니 그럴듯한 사업체가 만들어졌다. 바로 2013년에 시작한 웰빙수라간협동조합이다.

그날 만들어 매일 다르게

서울 성북 종암사거리 큰길 안쪽, 상가들이 즐비한 골목에 '반찬 앤 도시락'이라는 산뜻한 간판이 눈길을 끈다. 이 간판은 올해 2월 말에 새로 올렸다. 2013년에 사용 한 '푸드카페 성북협동조합 웰빙수라간'이 라는 이름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뚜렷하게 알리지 못했다. 변화를 만들어 보고자 조금이라도 생긴 수익금으로 간판을 제작했다.

현재 조합원은 여섯 명이지만 반찬가게 운영을 책임지는 사람은 백유미 이사장과 김효숙 이사다. 나머지 두 사람이 시간제로 일주일에 한 번 일을 돕는다. 오전 10시에 판매를 시작해 오후 7시에 문을 닫는다. 물론 조리는 더 일찍 시작한다. 도시락 주문을 받을 때는 오전 5시에 조리를 시작하기도 한다.

ⓒ우미숙

모두 220여 가지 반찬 중에 매일 다르게 서른 가지를 내놓는다. 요리사 기분대로다. 자녀들의 생일이 있는 달에 생일 음식을 만들거나 시장에 갔다가 신선한 해물을 보고 가격과 상관없이 만들어 내놓는다. 간장새우장이나 전복조림도 갑자기 떠올라 해본 요리다. 판매 가능성과 상관없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드는 일도 있다.

반찬 외에 5000원, 7000원, 1만 원 단위로 도시락을 만든다. 만약 회사원들이 점심으로 매일 도시락을 주문해 먹어도 매일 새로운 도시락을 맛볼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네 가지 컵밥도 있다. 모든 컵밥에는 날치 알과 직접 만든 맛간장으로 볶은 밥이 들어간다. 미리 만들면 밥이 불어 맛이 없어 주문을 받으면 즉석에서 만들어 낸다.

'반찬 앤 도시락'은 재료의 70% 이상을 국산 재료와 대기업 가공품을 사용한다. 친환경 식재료는 비용이 부담되어 10%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설탕 대신 직접 담은 양파효소로 맛을 내며, 그날 만든 반찬만 판매한다. 팔고 남은 것은 집으로 가져가 식탁에 내놓는다. 아이들과 남편이 함께 먹어야 할 반찬이기에 좋지 않은 식재료를 사용할 수 없다. 이러다 보니 월 매출에 식 재료의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 월세와 관리비용을 빼면 사실상 남는 게 없을 정도다. 경영컨설팅 전문가가 식재료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이들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자신들의 원칙을 지켜나가려고 한다.

"대신 많이 팔아야죠. 아니면 제철에 나는 식재료를 싸게 많이 사서 갈무리를 잘해서 사용하면 식재료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이들이 매월 수익으로 가져가는 돈은 고작 30~50여만 원. 그것도 매달 꾸준하지 않다. 팔다 남은 반찬을 각자 집에 가져가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도움 없이 시작해 어느덧 협동조합 전문가

ⓒ우미숙
백유미 이사장과 김효숙 이사는 성북구청에서 연 요리교실에서 만난 인연으로 함께 일을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을 좋아해서 다섯 살 차이가 나지만 의기투합하기 쉬웠다. 마침 협동조합이라는 방식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가깝게 지내던 다른 다섯 사람까지 모두 일곱 명이 협동조합 교육을 받으며 사업 설계를 했다.

다섯 명이 각자 500만 원씩 출자해 2500만 원을 모았고, 나머지 두 명이 각자 10만 원씩 출자해 2520만 원으로 문을 열었다. 보증금으로 1000만 원을 내고 나머지로 냉장고를 비롯한 시설과 그릇을 마련했다. 2013년 8월에 협동조합 신고필증을 받아 성북구에서 제1호 직원협동조합이 되었다. 2014년 1월 법인 등기를 하고 나서 세 명이 탈퇴했고 두 명이 다시 가입해, 현재 임원 네 명과 주 1회 시간제로 근무하는 두 명의 조합원이 있다.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덜컥 시작한 협동조합이다. 이들은 돈이 많지 않은 가정주부들이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사업체로서 이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업을 만만하게 본 건가. 갖춰야 할 서류 와 규약이나 규정, 법인등기, 세무, 임금 책정 등 생전 해 보지 않은 분야를 직접 알아서 하는 게 반찬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협동조합을 만들라고만 하지 준비 과정이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대처, 법적인 문제를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 돈 한 푼 지원받지 않고 시작했다. 만일 경영컨설팅을 해주거나 관심을 가져 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바다 한가운데 놓인 작은 배처럼 갈 곳 잃은 처지가 됐을 것이다."

총무를 맡은 김효숙 이사는 그동안 법처리 문제를 떠안고 동분서주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협동조합 관련 교육을 받았지만 역사나 철학, 일반적인 의미에만 머물러 있어 막상 협동조합을 꾸리고 운영하는 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전문가가 되었다는 김효숙 이사. 이제 누가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하면 자신 있게 알려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마음 모으기가 가장 어려운 숙제

협동조합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이다. 웰빙수라간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처음 시작한 일곱 명 사이도 반년이 지나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일부가 탈퇴하고 새로운 조합원이 가입해 재구성되었다. 가게 운영은 이제 두 사람이 전담한다.

"일곱 명 모두 요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요리는 기본으로 하되 다른 역할을 나누는 방식이 되어야 했다."

백유미 이사장의 뒤늦은 평가다.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배분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수긍이 가야 하는데 일하는 형태가 다르면 어떤 기준으로 수익을 나눠야 할지 어렵다는 것이다.

백유미 이사장은 "가정주부가 협동조합으로 사업체를 꾸리면 자기 자본도 덜 들어가고 서로 보완이 되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장사가 잘되어 사람들이 우리 반찬을 더 많이 먹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이 같지는 않았다. 사업을 시작하면 당장 벌이가 충분할 것이라고 기대한 조합원과 3년이나 5년을 내다보며 자리 잡는 데 힘을 쏟자는 조합원이 서로 부딪치기도 했다. 오랫동안 우정을 다져 왔어도 막상 사업체를 꾸리면서 서로 충돌했다. 기득권이 없거나 약한 사람들에 게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이 협동조합이지만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사람들 관계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협동조합은 바보들이 해야 유지된다. 다들 자기 실속을 차리려고 하면 협동조합이 아니다."

어느 협동조합 선배의 말을 되새긴다는 김효숙 이사는 협동조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누가 일을 더 많이 하고 적게 하는 것을 따지기 시작하면 협동이 깨진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고 헌신하는 게 없다면 협동조합이 아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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