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위험해
어른들도 꿈을 꾼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꿈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목수도 되고 싶었고,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 한번은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대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인연이 있는 한국해양연구원 박사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방법이 없겠느냐고. 이미 아내를 설득한 상태였다. 결국 자격이 안 되어 과학기지 대원이 될 수는 없었지만, 학창시절에 그렸던 꿈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린 꿈이 더 많았다.
그런데 서른일곱 살 되던 해, 그러니까 2008년 1월 4일 '다른 삶'이라는 꿈을 이루고야 말았다. 사회생활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아내를 대신해 백일이 갓 지난 첫째를 키우는 주 양육자로 나선 것이다. 글쎄, 다른 삶도 다른 삶이지만, 극성이라면 극성이고 반성이라면 반성이었다. 잘 키워보고 싶은 극성과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잘' 살아야겠다는 반성. 어쩐지 아내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룬 꿈의 현실은 좌충우돌 정도가 아니었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수레의 바퀴가 된 것 같기도 했고,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주인 아래 종살이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빠라서 그런 게 아니라, 육아라는 일 자체가 그랬다. 재우고 먹이고 똥오줌 치우고 씻기고 입히고 놀아주고 놀아주고 놀아주고…. 하나부터 열까지 대신해줘야 하고, 곁에서 함께해야 했다. 힘들다고, 급한 일 생겼다고 적당히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두 돌쯤 되어 말귀가 통하면 좀 편할까 싶었는데, 그때가 되니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먹어라, 먹어라'할수록 안 먹고, '입어라, 입어라'할수록 안 입었다.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또 죽어라 하려 들었다. 눈앞에서 커다란 어른이 붉으락푸르락 '괴물'로 변하려고 하는데도 이 조그만 괴물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1년 정도 지나서는 특히 더 그랬다. 사랑을 독차지하다 동생이 태어나자 '아우 타기'를 시작한데다 미운 세 살 시기까지 겹친 딸아이는 그동안 쌓은 육아 지식과 노하우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훼방꾼' 그 자체였다. 한번은 둘째가 배고프고 졸려 칭얼거리기 시작하니까 잘 놀던 첫째가 갑자기 안아달라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첫째를 달래면 둘째가 울고, 둘째를 달래면 첫째가 울고, 결국 나는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첫째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 동안 정신없이 두 아이 사이를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당시 하루에 한두 번은 이런 일이 벌어지다 보니 정말 다음날이 오는 게 두렵기까지 했다. 아빠라서 더 그랬겠지만, 내 안의 폭력성을 억누르려고 심호흡을 해야 할 때가 여러 번이었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는 임꺽정의 의형제로 쇠도리깨를 잘 쓰는 곽오주란 인물이 나온다. 그는 술에 취해서 배고파 우는 자기 아이를 내동댕이쳐 죽게 만들고 마는데, 이때의 충격으로 우는 아이만 보면 쇠도리깨로 때려죽이는 무시무시한 인물이 된다. 아이를 어를 때 '곽쥐 온다'는 말은 바로 곽오주를 이르는 말이다. 실존인물이기도 했지만, 단순히 옛날이야기가 아닌 게, 실제로 욱하는 성질 때문에 아빠들이 어린 아기를 다치거나 죽게 하는 사건이 요즘에도 종종 일어난다. 일명 '흔들린 아기 증후군'이라는 것이다. 아기를 기분 좋게 하기 위해 위아래로 흔들다 실수로 뇌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도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아기 때문에 화가 나서 아기를 격렬하게 흔들다가 생기기도 한다. 가령, 보통은 아기를 안아서 재우는데, 빨리 재우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아기도 그 마음을 느껴 오히려 쉽게 잠들지 않는다. 한두 시간이 지나도록 안고 있다 보면 짜증이 나면서 안고 있는 팔에 과격한 힘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아이를 재우다 거칠게 흔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빠 육아의 장점
물론 이 공포스런 경험이 내가 경험한 육아의 전부는 아니었다. 다행히 육아에는 이 모든 어려움을 잊게 하는 즐거움과 기쁨이 동반된다. 육아를 도맡은 아빠로서의 즐거움 중 하나는 보통의 아빠들은 운이 좋아야 목격할 수 있는 '현장'에 항상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뒤집고, 되 뒤집고, 배밀이하고, 앉고, 기고, 서고, 걷고, 달리고, 계단을 오르고, 젓가락질하고, 똥오줌 가리고, 옷 입고 등등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부모를 놀라게 한다. 6주 전후의 사회적 미소부터 시작해 옹알이를 하고, "엄마" "아빠"를 발음하고, 두 음절에서 세 음절로, 단어에서 문장으로 말 속에 자기 생각을 담아가는 아기를 지켜보는 기쁨은 또 어떤가. 모든 부모가 자기 아이를 천재로 착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주 양육자로서 성취도 있다. 소아신경과 전문의인 김영훈이 쓴 <엄마가 모르는 아빠 효과>(베가북스 펴냄)에서 말한 그 '아빠 효과'다. 이 책에서는 활동적이고 윤리적인 아빠의 영향으로 아이의 인지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성, 도덕성 등이 발달한다고 말한다. 특히 아들이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또 아빠 육아의 장점으로 운동신경과 근력도 빼놓을 수 없는데, 직접 해보니 육아는 남자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된 노동력을 요구한다. 섬세함과 더불어 강한 근력이 있으면 더 잘할 수 있는 게 바로 육아이다.
특히 나의 경우는 운동신경과 근력을 살려 유모차 대신 주로 자전거를 이용했다. 아직도 이 사회에는 낮 시간에 아빠 혼자 유모차를 끌고 가면 신기하게 쳐다보는 경향이 있어서 불편했는데, 아기 띠를 하고 자전거를 타면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게다가 행동반경을 넓혀 어디든 갈 수 있다. 당시 서울시 마포 근처에 살고 있던 나는 홍대 거리부터 시작해 한강 변, 월드컵공원, 선유도공원 등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노래를 부르며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잘도 돌아다녔다. 저녁에는 조금 일찍 엄마 마중을 나와 자전거로 골목골목을 누볐는데, 첫째 아이는 내가 즉석에서 작사 작곡해서 부르는 엉터리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뿐만 아니라 엄마들보다 겁이 없는 것도 때로 아빠 육아의 큰 장점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엄마와 달리 다양한 경험을 중요시하는 아빠는 무모할지라도 일단 경험해보게 하는 경향이 있다. 밥 먹으라고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지 않고, 잘못을 했을 때 꾸짖는 걸 주저하지 않는 쪽 역시 아빠이다. 지난달 29일 자 <함께자리>에서 쓴 대로, 아이들과 '텃밭놀이'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도 힘 있고 활동적인 '아빠'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관련기사 : "텃밭, 다음 주에 또 오자")
아빠라서 더 특별한 걸까

하지만 무엇보다 큰 차이는 일반인들의 육아에선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와 같은 보상(출연료, 광고)과 사람들의 관심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들의 주된 하소연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내가 <아빠가 되었습니다>(나무수 펴냄)라는 책을 낼 때쯤 육아 책을 썼다고 한 엄마에게 말하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엄마가 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아빠가 하면 주목받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되진 않아요."
맞는 말이다. 육아가 어려운 이유는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결합인 육아 그 자체가 어려운 점도 있지만, 사회뿐만 아니라 가족 안에서조차 육아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해주지 않은 이유가 더 큰 것 같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알아주면 아무리 힘들어도 참아낼 텐데, 아니, 힘을 내 더 잘해보려고 노력할 텐데 걸핏하면 "애 좀 잘 봐" "너 때문에 애가 이렇다"라고들 하니, 누가 춤추며 육아를 할 수 있겠는가.
8년 동안 아이 둘을 키우며, 세상에서 혼자 하는 육아만큼 힘든 일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맡아 아이를 돌보다 우울증에 걸리는 엄마들도 많은데, 이런 엄마들은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면서 영혼이 고갈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 같이 하면 할 만한 것이 또 육아이기도 하다. 아무리 힘 좋은 아빠라 할지라도, 결국 바깥 활동을 하는 배우자의 육아 참여가 있어야 심리적 부담을 덜어 더 좋은 컨디션으로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온전한 나를 찾는 과정
글로는 다 표현 못 할 어려움이 많았지만, 긴 시간 아이들을 돌본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육아를 통해 '다시 사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아기 기억상실증(childhood amnesia)'이라고 해서 보통 아이들도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기억나지 않는 그 시절이 인생의 근원이 된다니, 무척 중요한 시기이다. 만 6세까지의 양육 환경에서 성격의 80퍼센트가 형성된다는 연구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다시 산다'는 건 이런 것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해주어야 하고, 항상 옆에 붙어 있어야 해서 힘들다고 말했던 육아의 그 이면이다. 아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나 자신의 영유아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도 이랬을까?', '엄마도 내게 이랬겠지….' 이유식을 만들며 엄마들은 아무런 조미도 하지 않은 원재료의 맛을 경험한다. 똥오줌을 치우며 아기의 건강 상태를 가늠해보고자 얼굴을 기저귀에 갖다 댄다. 아기가 기기 시작하면 더 잘 기라고 함께 긴다. 아기와 함께 노래 부르고 신나게 엉덩이춤도 춘다. 소꿉장난도 하고, 구슬 꿰기도 하고, 블록 쌓기도 하고, 그림 그리기도 하고, 놀이터 순례도 하고, 공원으로 나들이도 간다.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찾아 온전한 자신을 만나는 경험을 했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되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수시로 오갈 뿐만 아니라 좌충우돌, 허겁지겁, 돌아버릴 것 같음, 경이로움, 즐거움, 두려움, 책임감 등등 수많은 상황과 감정에 수시로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낭만적으로 이야기해서 여행자의 훈장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제 가슴 속에 반짝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니 말이다.
부모가 되어 다시 이루게 된 꿈, '다시 사는 자'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오가는 사이, 오늘도 두 아이는 무럭무럭 자란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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