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5시.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어 누워 있다 깜짝 놀란다. 위층 발걸음 소리가 요란하다. 피아노 소리가 잠시 들렸다가, 다 같이 영화라도 보는지 성능 좋은 홈시어터 스피커 진동이 전해진다. 옆집은 집 단장에 한창인지 쿵쿵 망치 소리와 기계 돌리는 소리가 부산하다. 집에 혼자 있어도, 소리는 어째 혼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일상 속 소리와 소음의 경계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변 집들로부터 소음을 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소음 전달자가 되기도 한다. 여러 세대가 한 건물에 살다 보니 누군가에겐 자연스러운 '소리'인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소음'이 되는 일이 잦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의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가구가 59퍼센트(%)에 이른다. 환경부에서 펴내는 '소음·진동 관리시책 시·도별 추진실적 평가'를 보면, 동물소음과 층간소음 항목이 포함된 생활소음 기타 항목 민원은 2009년 3540건에서 2014년 5637건으로 5년 동안 59%가 늘어났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소음원은 무척 많다. 발걸음 소리, 문 여닫는 소리, 가구 마찰음, 청소기나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 소리에 이르기까지 실내 공간만 살펴봐도 다양하다. 여기에 집 밖 도로를 지나는 차 소리나 사업장, 공사 소리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소음이 사회 문제로 논의되며 정부는 최근 관련법을 정비했다. 2014년 10월 공동주택 건설지점의 실외·실내소음도 측정 기준을 정한 '공동주택의 소음측정기준'을 시행했고,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소음·진동관리법'에는 진공청소기와 세탁기에 저소음 표지를 붙이는 '가전제품 저소음표시제', 소음성 난청 같은 소음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휴대용음향기기의 최대음향기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방송진흥공사
층간소음 문제는 일상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별 관리한다. 소음원은 가구를 끌거나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발걸음 소리로 전해지는 '직접충격 소음'과 텔레비전 소리, 대화 소리, 악기 연주음 같이 공기로 전해지는 '공기전달 소음'으로 나눈다. 급수·배수 소음은 제외하는데, 배관 구조 문제라 건축 영역에서 다뤄진다. 아이들이 뛰거나, 발걸음 때문에 나는 소음이 73%로 가장 높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85% 정도가 '벽식' 구조로 지어져 윗집 바닥이 곧 아랫집 천장이기 때문에 충격 진동이 천장을 받치는 벽의 면적에 비례해 전달된다. 바닥 두께에 대한 규정은 꾸준히 강화되어, 1999년 이전 120밀리미터(㎜)였던 것이 현재는 210㎜이다.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을 통해 층간소음 기준이 정해져 있기도 하다.
2012년 3월 문을 연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는 전화상담, 현장방문·측정, 공동주택 집중관리, 예방 교육 업무를 진행한다. 공사장 기계 소음이나 자동차 소음과 달리 사람과 관련된 일이기에 관계 형성을 통한 예방에 중점을 둔다. 센터장 조경호(55) 님은 소음이 '상대적인' 감각임을 이야기한다.
"기기로 측정해 나오는 수치가 있긴 하지만 '소리'와 '소음'을 가르는 기준은 심리 상태나 개인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납니다. 층간소음은 이웃과 사이가 좋으면 어느 정도 완화됩니다.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대화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하는 거죠."
'공동주택 집중관리 서비스'는 아파트 500세대 이상 되는 곳에서 층간소음을 줄일 수 있는 주민 자치 조직의 설립과 운영을 돕는다. 현재 수도권 지역과 5대 광역시 33곳 아파트에 공동주택 주민자율협약이 제정되어 있다.
우리 감각 너머 저주파 소음
생활 소음과 관련해 최근 관심이 높아지는 분야는 '저주파 소음' 영역이다. 우리가 쉽게 들을 수 있는 고주파와 다른 특성을 가지는 저주파를 연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과 2010년 2차례에 걸쳐 '생활환경연구에서의 저주파 소음 실태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가 이뤄졌다.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유동음향센터 정성수(53) 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 대역은 20∼20,000헤르츠(Hz) 사이. 소음원들을 분석하면 주로 250Hz 위 주파수 대역을 크게 느끼기 때문에 '가청대역'을 중심으로 마련된 소음 한도값과 관리 규정 역시 이 주파수에 맞춰져 있다. 저감 기술의 발달로 중대역 주파수 소음을 줄이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면서 200Hz 밑 '저주파' 소음을 살펴보게 된 것이다.
저주파 소음은 일정 속력으로 회전하는 모터를 장착한 제품에서 잘 발생하고, 소형 기계보다 대형 기계에서 많이 발생한다. 송풍기, 디젤기관, 풍력발전기, 변압기 같은 것들이 주된 발생원이고 생활 속 가전제품 가운데 에어컨 실외기,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냉장고에서는 60Hz 정도 소음이 나온다. 소리로 느낀다면 '웅~'하는 정도로 들리고, 진동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바닥을 쿵쿵 자극하는 층간소음도 저주파 대역이다. 63에서 31Hz 정도인데, 바닥을 자극하는 충격이 콘크리트 바닥을 떨리게 해 진동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기차역 주변 지역에서 기차가 지나갈 때 집 안 창문이 떨리는 것도 저주파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1960년대 고속철도 개통 뒤 빨리 달리는 기차 안에서 사람들이 큰 압력을 느끼는 점에 주목해 연구가 시작됐다. 잘 들리지 않아 인식하기 어렵지만, 몸은 그 힘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저주파 소음 연구는 중요하다. 정성수 님은 저주파 소음 문제가 '고령화 사회'와도 연결된다고 이야기한다. 사람 귀의 특성 때문이다.
"청력이 20살 뒤로 감퇴하기 시작할 때 높은 소리인 고주파부터 들리지 않게 되어 나이가 들수록 저주파가 크게 들리거든요. 외국 자료를 보면 55세부터 65세나 70세까지가 저주파 소음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죠."
파장이 짧아 멀리까지 가지 못해 방음벽을 통해 어느 정도 차단이 가능하고 금방 공기 속에 흡수되는 고주파와 달리 저주파는 파장이 길어 방음벽을 쉽게 넘고 먼 곳까지 흘러간다. 우리 몸 표면에서 흡음되거나 반사되는 중고주파에 비해 파장이 긴 저주파는 몸을 통과한다. 때문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신체 내부 장기에 영향을 주어 심박수나 호흡수, 수면 심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 중반, 일본은 2004년에 저주파 소음 지침서를 마련했다. 아직 저감 방법이 마련된 것은 아니어서 강제성을 가지는 '규제값'과는 다른 '권장값' 정도 수준이다. 그래도 '저주파 소음'의 존재를 인식한 것은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저주파를 특별히 분류하고, 소음측정 했을 때 어떤 영역을 넘어가면 사람들이 고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겁니다. 사람들이 호소하는 피해들이 맞을 수 있으니 무시하지 말고 잘 돌봐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 생활소음, 피할 수 없다면 이렇게
○ 직접 해 보는 실내소음 저감방법 - 발걸음 소리는 밑창이 3센티미터(㎝) 정도 되는 실내용 슬리퍼, 바닥 매트 사용 - 가구 끄는 소리는 소음 방지용 패드 부착 - 문 닫는 소리는 경첩이나 도어가드 설치, 도어 완충기로 속도 조절 - 피아노 소리는 방음·저감 장치 설치 - 청소기, 세탁기를 고를 때 '저소음표지' 있는 제품 고르기 - 배경음악을 틀어 소음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 있음 - 실내 음압이 낮으면 소음이 쉽게 전달. 가습기, 분수대, 어항 설치로 음압을 높일 수 있음
○ 상담이 필요할 땐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로 - 전화상담 : 층간소음 분쟁의 대처방안, 해결사례 제시 같은 전문 상담 제공 - 현장진단 : 층간소음 분쟁 해결을 위한 소음측정·분석 서비스 제공 - 공동주택단지 층간소음 맞춤형서비스 : 층간소음 관리위원회 결성, 관리규약 제정지원, 교육 - 전화 1661-2642 / 국가소음정보시스템 누리방(www.noiseinfo.or.kr) 환경소음, 교통소음 관련 정보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 것이 아름답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