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울 군자차량기지에서 지하철 1·2·3·4호선 전동차를 정비하는 유성권 씨(39세)는 일터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깍듯이 인사를 하고 다닌다. 유 씨가 유독 열심히 인사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 12월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외주화했다. 그리고 은퇴를 앞둔 재직자들에게 용역업체인 프로종합관리(주)로 전적을 유도했다. 전적 시 정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재직 시 임금의 70~80% 보장 및 공사와 동일한 수준의 복지 보장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107명 모집 중 40여 명만이 전적하자 부족한 나머지 인력 60여 명을 용역업체에서 자체 채용했다. 유 씨는 그중 한 사람이다.
유 씨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롯데전자, LG상사, CMM 케이블방송사 등에서 전자·전기 일을 했다. 그리고 2010년 7월 지금 용역업체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일상 업무(3일 주기 검수) 중 전동차 옥상과 차 바닥은 정규직이 정비하고요, 저희는 실내를 정비합니다."
하지만 차량 하부를 전부 정규직이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온갖 금속 먼지가 들러붙은 차량의 하부 배선을 에어 호스로 제거하는 작업은 유 씨와 같은 비정규직 용역업체 직원이 한다.
"옆에 있는 사람이 안 보일 정도로 분진이 많이 나요. 하지만 에어 작업을 안 하면 잔고장이 많이 나기 때문에 꼭 해야 하죠."
방진 마스크와 방진복을 입고 들어가지만 마스크에는 분진을 마신 흔적이 남는다. 기름때도 다 뒤집어쓴다. 한여름에는 땡볕 아래에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열차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 그냥 더운 정도가 아니라 실신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다. 그밖에도 형광등, 안전기, 소켓, 손잡이, 부착물, 출입문 유리 육안 검사와 차량과 차량을 연결해주는 인통문 정비까지 비정규직이 담당한다.
이렇게 위험하고 힘든 작업을 하면서 유 씨가 받은 임금은 연봉 2050만 원. 하지만 서울메트로가 용역업체에 지급한 유 씨의 인건비는 연봉 3000만 원이다. 950만 원을 용역 업체가 떼어 전적자와 나누어 가진 것이다. 중간에서 가로채니 정규직, 전적자와 임금 차이는 세 배나 벌어졌다. 유 씨가 더 화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기지 안에 목욕탕이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 '용역 사용 금지'라고 써 붙이고 정규직만 사용할 수 있게 해놓은 거예요. 우리도 작업하고 나면 온통 기름때에 시커먼 먼지랑 땀범벅이 되거든요."
그 사실을 알게 된 한 정규직 선배는 유 씨의 손을 붙잡고 씩씩 대면서 목욕탕으로 갔다.
"야, 어떤 새끼가 씻는 것 갖고 지랄하냐?"


다행히 2012년부터 그 부착물은 없어졌고, 지금은 요금을 내면 비정규직도 사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그 사이 정규직 노조인 서울지하철노동조합에 민주 집행부가 들어섰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물러나면서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눈에 띄는 차별이 많이 있다. 의무실도 여전히 정규직만 이용할 수 있다. 일하다 다치면 비정규직은 치료도 못 받는다. 안전 교육도 정규직은 정기적으로 전문 강사를 초빙해서 받았지만 비정규직은 얼마 전 처음으로 받았다.
"구내식당 식권도 저희는 정규직처럼 직원권을 사용할 수 없어요. 외부인처럼 1000원을 더 내고 일반권으로 사 먹고 있어요."
그리고 서울메트로가 3년간 맺은 용역업체와 계약이 종료되던 2011년 10월, 용역업체는 자체 채용한 비정규직원 74여 명에게 해고 예고 통보를 했다. 빈자리에 전적자들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유 씨와 해고 동료 두 명은 3개월 뒤인 2012년 2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하철비정규지부를 설립했다. 그리고 지부는 서울시에 민원을 넣었다. 서울시는 곧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할 테니 해고를 유예하라고 공사에 지시했다. 그래서 해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같은 해 12월 '서울시 2차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6,231명을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정규직 전환하는 내용이었다. 그 대상에 서울메트로 경정비 비정규직 노동자도 포함이 됐다. 노조 가입자는 세 명에서 50명으로 늘었다. 비슷한 시기에 정규직 노조 민주 집행부가 당선되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더 적극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서울메트로와 5·6·7·8호선을 운행하는 도시철도공사를 올 12월에 통합할 예정이다. 노조는 2015년 4월 서울 시청역에서 천막 농성을 했다. 공사 통합을 이유로 정규직 전환 약속이 흐지부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천막농성 21일 만에 지부는 서울메트로 사장,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과 정규직화 합의를 이끌어냈다. 2017년 1월이면 외주화했던 경정비업무를 서울메트로가 가져갈 예정이다.
해고 통보로 노조 활동을 경험하자 유 씨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어릴 때 동네 경찰들이 노조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늘 얘기했어요. 그래서 삐라만 주워도 가슴이 설레서 파출소에 갖다 줬죠. 그런데 해고 안 당하려고 공공운수노조에 가서 상담을 받으면서 많이 깨달았죠."
노조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회사로부터 탄압이 들어오자 유 씨는 관리자들과 싸움도 많이 하고, 전적자들하고도 많이 싸웠다.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지각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떤 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이 정규직 신입사원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는다고 잘못 알기도 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유 씨는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났다. 그리고 조합원이 아닌 직원들, 모르는 직원에게도 깍듯이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제 인사를 안 받아줘도 저는 해요. 계속 그러다 보면 저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한두 명 생겨요."
곁에 있던 정규직 김영준 씨가 거들었다.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의 미래야. 우리 아들들이나 자식들이 다 그럴 거 아냐."
서울메트로, 그리고 한국 기업들이야말로 '용역 사용 금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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