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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과학자들 "의심은 우리의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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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과학자들 "의심은 우리의 상품"

[의료와 사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의혹과 그 내부자들

지난해 이맘때 2000원가량 오른 담뱃값으로, 일시적 금연 인구가 어느 해보다 많이 생겼다. 이것은 담뱃값 인상과 이를 토대로 추가 세금을 확보하려는 정부정책에 대한 반응이었고, 새해마다 시작하는 금연 선언의 효과이기도 했다. 금연의 이유가 되는 담배의 유해성이 공식 인정된 것은 언제쯤일까? 담배회사들이 담배가 몸에 해롭다고 인정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채 20년밖에 되지 않는 1998년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담배의 유해성을 몸으로 직접 느낀 것은 1950년 무렵부터였지만, 담배회사들은 온갖 이유를 들어 암이나 각종 질병과 담배의 연관성을 차단해왔다.

2014년에 나온 다큐멘터리 <의혹을 파는 사람들(Merchants of Doubt)>(로버트 케너 감독)은 담배회사들이 어떻게 담배의 유해성을 감춰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담배회사의 전략이 기후변화 이슈에 어떻게 '재탕'되고 있는지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담배와 지구 온난화에서 '저들'이 사실을 숨기고 왜곡하여 속이는 방식을 마술사가 관객을 속이는 것으로 유비(有備)한다. 마술은 사람들을 속인다는 점에서 의혹을 파는 사람들과 비슷하지만, 마술사의 속이는 행위 자체가 심각한 해를 가하거나 사태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영화 제목을 직역한 '의심의 상인들(Merchants of Doubt)'이나 한글 영화 제목인 '의혹을 파는 사람들'과 같이 의심을 마치 사고파는 상품인 것처럼 여기는 콘셉트는 담배회사의 비밀문서 기록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마이클스가 쓴 <청부과학(Doubt is Their Product)>는 담배기업들의 이런 마케팅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의심은 우리의 상품이다(Doubt is our product). 일반 대중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사실의 실체'에 도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의구심의 조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논쟁거리를 만들어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 "의심이 우리의 상품이다" 담배홍보회사의 전략. 다큐멘터리 <의혹을 파는 사람들> 화면 갈무리. ⓒgoogle.com


사람들이 담배가 몸에 해로울 수 있다고 의심을 했을 때부터 담배회사는 '사실의 실체'에 도전하기 위해 갖가지 장치를 이용했다. 처음에는 사실을 숨겼다. 담배회사들은 1950~60년대에 이미 흡연이 암과 심장병 등을 유발하고, 니코틴이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1994년에 담배회사 '브라운 앤 윌리엄슨(B&W)'의 비밀 내부문서가 공개되면서 드러났다. 담배회사들은 최소 50년 이상 담배의 유해성을 감춰 왔던 것이다.


1998년 공식적으로 담배회사들은 담배의 유해성을 인정하면서 이에 대해 향후 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대신 그들은 "질병의 또 다른 원인을 찾고, 병에 걸리지 않은 흡연자를 찾아내며, 어떤 것이든 새로운 연관관계를 만들어내고, 진실을 제외한 무엇이든 이것저것 찾아내어 초점을 흐리는" 것에 집중했다. 담배의 유해성이나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개별 과학자들에게 인신공격을 가하는 '허수아비 때리기'도 잊지 않았다. 물론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로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2001년 스위스 제네바대학의 라그나르 릴란데르 교수가 '필립모리스'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연구에서 '간접흡연의 피해가 과장됐다'는 결과를 발표한 것이 그 대표적 예다.(국내에서도 2007년에 서울대, 전남대, 가톨릭대 임상시험 센터가 '필립모리스'가 제공하는 10억 원의 연구비 용역으로 담배의 유해성 평가를 위한 임상시험에 들어갔다가 이를 알리려는 전문가들과 여론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

▲ "전 100살까지 살 거에요", "그렇다면 '카멜'을 피우거라" 1946년 카멜 담배 광고. ⓒgoogle.com
담배업계를 위해 활약한 '청부과학자'들은 비단 담배뿐만 아니라 살충제, 석탄, 석유, GMO, 핵에너지, 알코올, 탄산음료, 패스트푸드 등의 문제에서도 동일한 전략을 가지고 활약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지구 온난화' 로 알려진 이슈이다. '레이놀즈(R. J. Reynolds)'(카멜 담배를 만드는 회사)를 위해 일했던 프레더릭 사이츠(Frederick Seitz)와 '필립모리스'에게 거액의 연구비를 받은 프레드 싱어(Fred Singer)와 같은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희석하는데에도 지대한 공을 세운다.

<의혹을 파는 사람들>은 두 저명한 과학자가 담배회사와 석유회사에 유리한 주장을 하는 동기에 대해서 흥미로운 가설을 세운다. 두 과학자는 기업들과 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공통점 말고도 과거에 냉전이라는 정치공간에서 활약한 이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공주의'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깊이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냉전이 끝나자 소위 '(가진 자들의) 자유'를 위협하는 모든 문제들에 '사회주의'라는 낙인찍기를 시작했다. 이들은 "환경운동가들은 겉은 녹색이지만 속은 새빨간 수박과 같고, 탄소세는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고 경제를 침체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 프레더릭 사이츠의 개인 탓하기. 다큐멘터리 <의혹을 파는 사람들> 화면 갈무리. ⓒgoogle.com

▲ '지구 온난화 기우 = 실업, 세금폭탄, 사회주의'. 다큐멘터리 <의혹을 파는 사람들> 화면 갈무리. ⓒgoogle.com

특히 경제위기는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부정하거나 축소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실천 동력이 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지구 온난화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활동 때문이 아니라고 하거나, 지구 온난화와 그것의 원인이 인간의 활동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비용은 사회를 파산으로 몰 것이라는 주장이 혼재되어 있긴 하지만, 근저에는 자유경쟁과 경제발전에 대한 위협으로써 환경운동을 바라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한 경제 신문도 작년 말 파리기후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경제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정부가 "너무 나서지 말아야"한다는 주문을 담은 사설을 실은 바 있다.

▲ 다큐멘터리 <의혹을 파는 사람들> 포스터. ⓒgoogle.com
물론 이러한 주장을 '필립모리스'나 '엑손 모빌'이 직접 할 수는 없다. 대중들이 그 기업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그들의 후원을 받는 청부과학자나 국회의원의 스피커를 활용하는 한편, <의혹을 파는 사람들>에서도 맹활약을 보여주는 '하트랜드 연구소(Heartland Institute)'나 '카토 연구소(KATO Institute)' 등과 같이 '중립적'으로 보이는 씽크탱크를 이용해 그들의 말에 권위를 부여하는 전략을 택했다. '하트랜드 연구소'는 지금도 반(反) 기후변화 담론을 생산해내는 가장 주요한 씽크탱크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난해 2월 <한국일보> '지구 온난화는 거짓이다'라는 인터뷰 기사의 주인공인 존 씨온(John Theon) 전 NASA 기상연구자도 '필립모리스'와 '엑손 모빌'이 후원하는 '하트랜드 연구소' 소속이다.

이런 사례는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산재 의심 사례가 속출하자 삼성전자는 제3기관인 '인바이런'이라는 보건안전 컨설팅 회사에 반도체의 안전성과 관련한 연구 용역을 주었다. 물론 결과는 반도체와 백혈병은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삼성전자 측은 "글로벌 최고 수준의 연구 결과로서 이번 조사는 객관성과 투명성이 보장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인바이런'은 '필립모리스'와 폐암환자의 소송에서 담배회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미국에서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들의 고엽제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참전 군인들의 건강문제는 고엽제와 무관하다는 결과를 낸 바 있는, 전혀 중립적이지 않은 기관이었다.

정치, 언론, 재벌권력의 강력한 카르텔을 다룬 영화 <내부자들>(우민호 감독. 2015)의 한 등장인물인 이강희 논설주필은 언론이 다루려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따라 "어떠어떠하다고 보기 힘들다"라든가, "어떠어떠한 것으로 매우 보여진다" 따위로 프레임을 잡는다고 했다. 다시 말해, 같은 사실이지만 언론과 같이 신빙성 있는 누군가가 발화하는 뉘앙스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천지차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담배의 유해성과 지구 온난화 위험에 대해서도 그 내부자들은 "완전히 알기 힘들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여전히 논쟁 중이다"와 같이 모호한 말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진상을 숨기려는 그들의 목적을 관철시켜왔다. 요컨대 <의혹을 파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것들이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 사실의 탈을 쓴 정치적 프로파간다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정치적 의혹들은 내부자들이 파는 상품이고,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들의 눈을 흐린다. 그리고 우리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결정적 요소로 자리 잡는다.

참고자료


- <청부과학>(데이비드 마이클스 지음, 이홍상 옮김, 이마고 펴냄)
- 2012년 11월 7일 자 <프레시안> '"담배 유해성 입증 안 됐다"는 괴담, 그 배후엔…'
- 2011년 7월 25일 자 <프레시안> '"반도체와 백혈병 상관없다"던 인바이런사의 비밀'
- 2007년 7월 제669호 <한겨레21> '담배회사 돈으로 담배 유해성 연구?'
- 2015SUS 11월 23일 자 <한국경제신문> [사설] '정부, 파리 기후회의서 너무 나서지 말아야'
- 2015년 2월 11일 자 <한국일보> 전 NASA 기상연구자 존 씨온 박사 인터뷰 "지구 온난화는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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