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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급 5000원짜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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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급 5000원짜리가 아닙니다!"

[알바 수기] 돈이 없는 건 정말 '죄'일지도 모른다

알바연대' 대변인이었던 고(故) 권문석 3주기를 맞아 아르바이트 노동자 수기 공모전이 진행됐다. 우수상 2편과 장려상 2편이 선정됐다. <프레시안>이 이들 작품 가운데 일부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시급은 네가 합의하고 들어온 거 아냐?"

2014년도 당시 최저 시급 5210원. 집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위치의 한 베이커리에 알바를 하겠다고 찾아갔을 때, 사장님은 내게 시급을 5000원을 주겠다고 했다. 내가 최저 시급을 맞춰달라고 말하자 사장님은 5000원이 자신이 맞춰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시급이라고, 내가 정말 마음에 들지만 이러면 다른 사람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집에서 용돈을 받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고, 심지어 교통비가 없어서 버스도 못타는 상태였기에 시급이 5000원이어도 그냥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사장님이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만 괜찮다 말하면 바로 돈을 벌 수 있었고, 그게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면접을 보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이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시급에 불만이 생겼다. 그냥 단순히 마음이 변해서가 아니었다. 나 혼자 매장 전체를 다 봐야했다. 배송 정리에 진열, 계산, 도넛 및 고로케 튀기기, 포장까지 모두. 게다가 손님 기분에 맞춰 서비스까지 해줘야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이런데도 최저 임금을 못준다고 했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 그래도 이제 와서 뭐 어쩔 수 있나 싶었고, 원래 처음 1~2주는 적응하느라 일이 힘들게 느껴지는 거니까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한 달 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커리는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 근처에 있었는데, 커피를 시키자마자 10초도 안 되어서 늦었다고 빨리 달라고 재촉하는 손님, 버스가 왔다고 집어온 빵을 카운터에 내던지고 가버리는 손님들도 많았다. 그럴 때면 기분이 상한 채로 빵을 다시 제자리에 가지런히 갖다놓아야 했다.

매장 관리를 혼자하기 때문에 손님이라도 몰리면 계산이 늦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카드를 탁 하고 내려놓는 손님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손님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곤 했다. 한번은 배송 정리를 하느라 창고에 가있다가 손님이 계산해달라는 소리에 급하게 나오느라 주방에서 크게 미끄러진 적도 있었다. 순간적으로 다리가 마비된 듯이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손님이 빨리 계산해달라는 말에 어떻게든 일어나야 했다.

그랬다. 나는 내 손에 기름이 튀어도, 칼날에 빵 대신 손이 썰려도, 손님이 금방 나온 빵을 달라고 해서 담아주다가 손이 데여도, 손님이 돈을 던져도, 제 딴에는 농담이라며 어처구니없는 성희롱까지 해도 나는 손님 앞에서 아파할 수도 기분나빠할 수도 없었다. 나의 1시간은 5000원이고, 그들은 언제나 나의 시간보다 비싼 빵과 커피들을 사갔다. 이 세상에서 나는 가장 작은 숫자였고, 마치 아무가치도 없는 사람 같았다.

하루는 매장 뒤편 주방에서 혼자 일하던 제빵기사 언니에게 일이 이렇게 힘든데 최저 시급도 못받는 것에 대해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시급은 내가 합의하고 온 것이며, 그게 싫으면 내가 처음부터 최저 시급을 주는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더해서, 이 정도 힘든 거로 그만둘 거면 더 힘든 사회생활은 어떻게 할 것이며, 그때도 힘들 때마다 일을 그만둘 거냐고 했다. 애초에 법으로 정해진 시급조차 안주는 사장님이 잘못한 건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너무 억울했다. 사장님은 그래도 돈이 있으니 이렇게 가게를 차리고 계속 운영을 하는 걸 텐데, 정말 하루에 1200원도 더 못 주 는건지….

돈이 없는 건 정말 '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너무 서러웠고, 최저 시급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조사도 안 나오는 노동청이 너무 미웠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일을 하면 할수록 나는 삶이 재미가 없어졌다. 하루 6시간을 바쁘게 움직이며 서있는데, 식사하다가도 손님만 오면 뛰쳐나가야하는데, 내 오전이 다 사라져버렸는데, 월급을 받아보면 내 시간의 가치는 한없이 낮았다. 물론 월급을 받으면 기쁘긴 했지만, 그 기쁨은 이틀을 채 가지 못했다. 휴대폰비에 교통비에 식비까지 다 하면 내게 남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미래가 없었다. 여가를 즐기고 저축할 돈 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마 휴학해서 학자금 대출이 더 안 생긴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때는 난 권문석도, 알바노조도 알기 전이었는데, 시급이 딱 1만 원만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얼핏 했었다. 당시 내 시급의 2배였으니까. 그 금액이면 반은 꼭 필요한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 반은 친구들도 만나고, 옷도 사고, 화장품도 사고, 저축도 하는 등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쓰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물론 그때는 그 금액을 상상만 하다 잊어버렸지만.

후에 내가 알바노조를 알게 되었을 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기뻤고, 그리고 최저 임금 1만 원을 이야기했던 권문석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생활을 알아준 사람이 있다는 것에 내심 위로받았다. 나는 그보다 두 배는 더 가치 있는 사람이며, 앞으로 그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맞다. 당시 내 가치는 5000원이 아니었는데…. 돈이 없다는 이유로 한없이 약한 사회적 약자가 되어 상처받고 힘들어했던 그 시간들이 사실은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너도 원한다면 '최저 임금 1만 원' 그거 함께 만들어보자고 손을 내미는 것 같아서 마음이 울렁거렸다.

나는 '돈으로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가 돈으로 나타나야하는 것이 맞다'는 이 당연한 것을 잊고 살았다.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하는 세상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을 실제로 거리에서 외치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숫자 몇 개였기 때문이다. 내가 숫자일 때는 내가 사람인 줄 몰랐다.

만약 당신이 진정 사람의 가치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최저 임금 1만 원'을 외치는 지금, 이 길을 함께 가자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당신의 가치는 '사람'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1만 원도, 2만 원도, 3만 원도 될 수 있다.

나는 진심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2년 전의 나처럼 낮은 시급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고민하고 상처받고 아파하며 자신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한다. 괜찮다고, 정말로 이 정도여도 괜찮다고 ‘괜찮아 인형’이 되어버린 자신을 더 이상은 속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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