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선생님! 빨리 오세요!"
청소시간에 아이들이 다급하게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건이 발생한 복도에는 한 아이가 얼굴을 가린 채 쓰러져 있었고, 영준(가명)이가 그 아이의 얼굴을 발로 차고 있었다.
"그만! 그만!"
곧 점심시간이라 쓰러져 있는 아이와 영준이를 자리에 앉히고 다른 아이들은 식당으로 보냈다. 영준이의 폭력이 절정에 달했던 이 날의 사건(이하 '복도폭행사건')은 나와 우리 반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잊을 수 없는 아이,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는데 영준이는 그 주인공이었다. 영준이는 저학년 때부터 폭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많은 아이들의 관심사는 '담임선생님이 누구냐?'가 아닌 '영준이가 몇 반이냐?'였을 정도였으니까. 영준이가 6학년이 되는 날 나는 영준이 담임이 되었다.
영준이는 작은 폭력부터 큰 폭력까지 폭력 사건을 몰고 다녔다. 영준이의 폭력이 있을 때마다 나름 부드러운 방법으로 해결(?)했지만, 영준이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복도폭행사건'은 아이들을 만난 지 3개월을 넘어가던 시점이었는데, 당시 나는 학기 초와 달리 틈날 때마다 책을 읽으며 내면 성찰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있는 내 모습도 보게 되었다. '내가 남 탓만 하고 있구나.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만 보고 있구나. 이제부터는 아이들의 영혼과 마음을 만나자!' 그런 찰나에 복도폭행사건이 터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을 식당으로 보내 놓고서 눈을 감고 깊게 호흡을 하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는 모든 문제를 영준이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영준이만의 문제일까? 내 잘못은 없을까? 영준이의 영혼과 마음을 보지 않고 무조건 영준이 잘못이라고만 몰아붙인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영준이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있었나?' 마음 깊은 곳에서 영준이에게 미안함이 올라왔다.
점심을 먹고 돌아온 아이들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았다. 음악으로 어느 정도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나는 칠판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잘못한 거라고 몰아붙였던 내 행동에 대한 미안함과 새로운 다짐을 담은 칠판 편지였다. 아이들이 편지글을 다 읽었을 즈음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참 슬픕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걸로만 판단해 온 내 모습을 오늘에서야 봤습니다. 여러분을 만난 지 3개월이나 지났지만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교사인 내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교사로 살려면 오늘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을 잊지 못하도록 여러분이 나를 도와주세요."
예전에 읽었던 글(어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내가 너희를 잘못 가르친 것이니 나를 때려라'라고 했다는 글)이 생각나서 그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오늘을 기억해야 할 것 같아서….
아이들이 점심 먹으러 간 사이 구해 온 몽둥이(마대 걸레의 봉)를 보여 주며 한 명씩 나와서 잘못 가르친 선생님을 때리라고 했다. 이미 분위기는 장난을 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세게 때리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시!"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두 번, 세 번, 네 번 다시 때려야 했다.
영준이는 순서상 여덟 번째 정도였다. 드디어 영준이 순서. 자리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영준이에게 말했다.
"영준아, 나와."
영준이는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엉엉 울음이 터진 것도 그때였다.
"내가 잘못했는데 왜 선생님이 맞아요. 엉엉…."
"영준아, 이거 잡아. 널 잘못 가르친 선생님 잘못이니까 나를 때려. 그래야 선생님이 오늘을 기억할 것 같아. 그게 날 도와주는 거다."
엉엉 울면서 영준이는 아주 약하게 나를 때렸다.
"다시!"
영준이는 또다시 약하게 때렸다. 영준이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과 꺽 꺽 우는 울음 속에 우리 반 전체는 눈물범벅이 되고 말았다.
그날 5, 6교시를 그렇게 보냈다. 마무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손바닥 인사(교실 나가기 전에 교사와 학생이 손바닥을 서로 살짝 맞대는 하교 인사)를 했는데 아이들의 눈빛과 손바닥 느낌이 전과는 달랐다. "선생님, 그만 울어요"라며 선생님 눈물을 닦아 주는 아이들. 그렇게 마지막 아이까지 손바닥 인사를 하고 보냈다.
아이들 앞에서 내내 눈물을 보인 그날,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얻었고, 우리 반 분위기도 달라졌다. 물론 영준이도 달라졌다. 그렇다고 확 달라진 것은 아니다. 졸업식 날까지 조마조마하기도 했고 작은 문제들로 티격태격도 했으니까. 하지만 전처럼 큰 폭력 사건은 없었다.
"영준아, 넌 뭐하고 싶으냐?"
"저는 레슬링 같은 거 하고 싶어요."
하지만 영준이 부모님은 영준이에게 운동을 절대로 시키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운동을 시키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거라며….
'왜 영준이는 본인이 하고 싶은 운동을 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할까? 영준이를 이렇게 만든 건 어떤 선택권도 주지 않은 채 교실에만 가둬 놓으려는 학교 시스템 때문이 아닐까?'
영준이 이야기를 한 것은 학교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영준이의 심리적 상처와 폭력성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걸 더 곪게 만들어 악화시키는 것은 학교 시스템이었다. 영준이는 초등학교 내내 'ADHD에 폭력적인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나답게 자라려면 아이에게 배움을 선택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선택권이 전혀 주지 않고 있다. 모든 선택권은 어른들에게만 있을 뿐이다.
누구를 위한 교육이고, 누구를 위한 학교일까? 저마다 다른 아이들에게 획일화된 교육만을 강제하는 시스템을 과연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어느 때보다도 학교 교육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우린 사고를 통제하는 그런 교육은 원하지 않아요. 교실에서 혹독한 야유는 이제 그만! 선생님 제발 애들을 그냥 내버려 두세요. 우린 그저 벽 속에 벽돌일 뿐이죠. 우린 그런 교육 따위는 필요 없어요."(핑크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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