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점이요? 음…."
일하면서 힘든 점이 무어냐는 질문에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 하청업체를 전전하다 정규직으로 지금 직장에 입사했다. 회사가 잘해 주는 걸까,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 걸까.
'정식품'은 1973년 설립돼 국내 두유의 시초인 '베지밀'을 생산해 왔다. 두유시장에서는 브랜드 1위 업계로, 40여 년간 130억 개 이상을 판매했다. 청주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최첨단 설비를 도입하여 두유를 생산한다.

'정식품 노동조합'은 1997년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조직을 변경하고 2001년부터 지금까지 총 아홉 차례 전면 파업을 했다. 가장 길게 했던 파업은 2001년에 68일. 노조는 임금을 25퍼센트 이상 대폭 인상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노조 탈퇴자들을 엄격히 징계했다. 노동조합이 현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건 이때부터다. 연구직, 경영진을 제외한 청주공장 제조-생산직 노조 가입률은 99퍼센트. 운송, 구내식당 조리사까지 모두 정규직원이고 노조원이다. 청소 업무만 외주 업체인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노동조합 사무실은 넓고 쾌적했다.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눌 노조원들을 만났다. 대부분 30대 남성들로 입사 3년 차 이하다. 잔업이 너무 많다든가, 임금이 다소 낮다든가, 업무 강도 등 노동자가 흔히들 겪는 어려움을 쉽게 말하지 않는다. 이전 직장과 비교한다면 어떤지 물으니 그제야 말문이 트였다.
"이곳에 입사하기 전에는 삼성 계열 전자 회사에서 일했어요. 6개월 수습 기간 동안 주 6일에 주·야 2교대로 일했어요. 시급은 최저임금이었고요."
오현종 씨(34세)는 삼성에 텔레비전을 납품하는 전자 회사에서 12시간 이상 서서 부품 조립을 했다. 각 라인별로 제품 생산량이 모니터에 집계됐다.
"하루 평균 생산량이 800개라고 쳐요. 그런데 모니터에 1라인 생산량 800개, 2라인 820개, 3라인 815개 이렇게 집계되는 거예요. 열심히 조립을 했어도 다른 라인보다 적으면 문제가 됐죠. 서로 더 많이 생산하려고 경쟁하게 됩니다."
장시간 노동에 더 많이, 더 빨리 생산 경쟁이 붙으니 불량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라인 반장이 모두 보는 앞에서 50인치 텔레비전을 집어던졌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부당하다는 인식을 못 했죠."
뿐만이 아니다. 수습 기간 개인 사정으로 잔업, 특근을 못하게 되면 정규직으로 되는데 불이익이 생겼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참고 견뎌야 했다. 그러나 오 씨가 정규직이 된 지 한 달 만에 구조조정이 벌어졌다. 정규직에겐 권고사직을 사전에 알려줬지만, 비정규직에겐 해고 통보만 했다.
"종례 회의 때 '내일부터 일없으니 나오지 마세요' 그 말 한마디로 해고였어요."

강호중 씨(36세)는 지금이 여섯 번째 직장이다. 첫 직장은 현대중공업 1차 하청업체였다. 선박 엔진 금속 부품을 가공하는 일을 했다. 일의 강도가 지금보다 5, 6배 정도로 힘들고 쉬는 날은 설, 추석 명절뿐이었다. 12시간은 기본이고 32시간 연속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월급은 200만 원이 채 안 됐다. 여러 곳을 전전하다 코레일 정비사 인턴으로 입사했다. 정규직 시험을 보았지만 성적이 공개되지 않은 채 탈락했다. 정규직에 합격한 사람들은 '빽'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서동걸 씨(33세)는 자동차 전기배터리를 생산하는 LG화학 하청업체에서 일했다. 쉴 때도, 일할 때도 원청 정규직원 눈치가 보였다. 정규직원들은 업무 중에도 마음껏 스마트폰도 사용하고 휴게실을 사용했지만 하청 노동자들은 휴대폰 사용은 물론 잡담도 못하게 했다. 더 전에 일했던 곳은 물량이 적으면 출근을 못했다. 하루아침에 일하던 회사가 폐업하기도 했다.
오 씨 등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로 강도 높은 업무에 불안정한 고용으로 마음을 졸였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중 정식품에서 입사 지원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보고 정규직으로 채용이 되었다. 이들은 두유 제조와 팩 생산 현장에서 3교대로 일하고 있다. 가장 좋은 점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주 5일 근무에 공휴일 다 쉬는 거요. 그리고 모두 정규직이니 평등해서 좋아요."
이곳 노동자들은 동종업계 대비 임금과 복지가 가장 좋은 편이다. 그래서 평균 근속 연수가 15년, 평균 연령은 47세다. 노조의 힘이다.
"여기는 한 번 입사하면 정년 퇴직하거나 죽어서 나가거나 둘 중 하나죠, 하하하."
노조 사무국장 정인길 씨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입사하면 노동조합 교육 10강을 이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 3년을 의무적으로 선봉대를 하고 나면 1년 씩 돌아가며 파견 선봉대를 하고, 그다음 규찰대가 됩니다."
파업 때는 선봉대 50명이 천막 치고 순찰을 돈다. 대의원 30명에 파업이 일주일 넘게 지속되면 규찰대로 50명을 가동한다. 조합원의 절반 이상이 파업 대오가 잘 유지되도록 참여하게 된다. 노조가 힘이 강한 이유는 또 있다.
"우리는 부분파업은 안 합니다. 전면파업만 하죠."
더 놀라운 점은 2001년 파업 때 구사대 역할을 했던 영업소 직원들도 작년에 노조에 가입했다는 사실이다. 힘이 강한 노조는 구걸하지 않아도 힘이 모여든다. 오 씨는 노조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지금까지 노조가 없던 현장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노조의 필요성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노조 교육을 받으면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죠. 세뇌당한 거긴 하지만요, 하하하."

노동자들이 공장을 안내해 주었다. 고소한 콩 냄새가 진동을 한다. 콩을 실은 트럭 한 대가 와서 탈피동에 쏟아 부었다. 탈피동에서 깨끗이 가공된 콩들은 '다르르륵' 소리를 내며 긴 통로를 통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간다. 본격적으로 두유를 제조하고 팩을 하는 공장으로 갔다. 공장 안은 모두 최신 설비 자동화 기계로 구성되어 있다. 전처리, 조유실, 멸균실, 팩 포장, 로봇 적재 등 각 공정별로 시간당 7500개~2만 개의 제품을 생산한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형님. <작은책> 아시죠? 오늘 <작은책>에서 취재 나왔어요."
그냥 예의상 하는 인사라고 치기에는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늘 현장 취재를 다니면 내부 구성원들끼리 껄끄러운 관계도 목격하곤 했는데 여기는 그런 일이 없다.
정 사무국장이 잠시 목을 축이라며 사무실 냉장고에서 베지밀 한 병을 꺼내 주었다. 테이블에는 노조 소식지와 민주노총 자료집이 있고 벽에는 노동 개악 선전 포스터도 크게 붙어 있다. 다른 부서도 마찬가지다. 직원 휴게실에는 게시판이 2개가 있는데, 하나는 노동조합, 하나는 회사용이다. 공장장이 쓴 호소문은 경제 위기에 인건비 비중이 타 회사에 비해 높아 경쟁력이 떨어지며, 영업 이익이 얼마 하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노조 게시판에는 민주노총 총파업 선전 포스터가 자리 잡고 있다.

공장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난 후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조리사도 정규직이자 조합원이다. 식대를 한 달에 1000원만 내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한 끼로 치면 50원이다. 서울지하철 비정규직 정비 노동자를 취재하러 갔던 생각이 났다. 그곳은 밥 한 끼에 4000원이면서 식단도 여기보다 부실했다. 전면파업과 부분파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소통과 불통의 차이가 이런 것일까.
얼마 전, 정식품에서 노동자 역사를 강의하고 온 박준성 <작은책> 편집자문위원의 말이다.
"노동자의 학교가 파업이고, 노동자의 대학이 선봉대, 사수대, 규찰대였던 시절이 있었다. 역사가 전설이 아니고 공부가 흘러간 옛 노래 부르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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