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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삶'으로의 탈출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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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삶'으로의 탈출 여행기

오동진의 영화갤러리<50> <엘리자베스타운> 등

머릿 속에 자살 생각밖에 없는 실패한 디자이너 드류는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듣고 켄터키주 어딘가에 있다는 아버지의 고향 엘리자베스타운으로 향한다. 경황이 없는 어머니와 누이동생 대신 아버지의 유해를 그들이 살고 있는 오레곤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다.

국내선 항공기인 아메리칸 웨스트의 스튜어디스인 클레어는 이래저래 우울해 하고 있는 드류에게 다가가 자신도 엘리자베스타운 출신이라며 그곳을 찾아가는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특히 그녀는 하이웨이에서 엑시트 61번으로 꼭 빠져 나가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드류는 건성건성 듣는 둥 마는 둥, 클레어의 그런 친절이 그저 귀찮을 뿐이다. 하지만 정작 고속도로에서 드류는 클레어가 그렇게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타운으로 나가는 램프 길을 놓치고 만다. 고속도로에서 한번 램프를 놓치면 어떻게 되는지 다들 잘 알 것이다. 드류는 길가 중간에 차를 세워 놓고 어쩔 줄 몰라 쩔쩔맨다.

***우리는 진정한 삶으로 가는 길목을 늘 놓치며 살아가는 것 아닌지…**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신작 <엘리자베스타운>은 우리 인생살이의 한 단면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듯 인생을 휙휙 지나치며 살아간다. 진짜 인생, 진정한 삶으로의 탈출구는 작은 마을인 엘리자베스타운처럼 찾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 그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만 드류처럼 제대로 듣지 않기 일쑤다. 얘기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진짜 인생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자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정작 그 탈출구로 나가야 하는 때에는 입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좌절한다.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 드류처럼 스스로를 책망하게 된다.

전작 <제리 맥과이어>와 <올모스트 페이모스>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지명도가 꽤나 높은 카메론 크로우 감독은 그러나 이번 작품으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평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 시카고 선타임의 로저 에버트조차 이 영화를 가리켜 "카메론 크로우의 전작의 훌륭함에 비하면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아주 인색하게, 마지못한 척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쯤으로 이 영화를 취급했는데 영화를 보고나면 로저 에버트의 그 같은 평가에 동의하기가 힘들어진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진정한 삶을 찾아가려는 우리 마음 속의 갈구 같은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엘리자베스타운>은 사랑 얘기로 보는 영화가 아니다. 주인공이 61번 램프를 찾아 고속도로를 빠져나가야 하듯 우리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다.

뉴욕타임즈의 또 다른 평론가 A.O. 스콧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드류가 클레어의 충고대로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장면에 대해 "할리우드가 요즘 미국사람들의 상처입은 내면을 치유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타운>은 전작들만큼이나 크로우 감독의 진심을 담고 있는 영화다.

***전설과 민담이 가진 힘!**

이번 주말 극장가는 볼 작품이 너무 많아 오히려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들 것이다. <엘리자베스타운>을 필두로 <로드 오브 워>와 <그림형제>, <무영검>과 <용서받지 못한 자>, <블루스톰> <천국의 아이들2> <롱기스트 야드> <영화소년 샤오핑> 등 개봉편수만 9편이다. 어떤 작품은 눈에 잘 띌 것이고 어떤 작품은 개봉했는지조차 모른 채 사라질 것이다. 멀티플렉스에서 톡톡이 대접받는 작품과 외롭게 단관 개봉하는 영화들도 있을 것이다.

잊을 만하면 새로운 작품을 툭툭 던지는 테리 길리엄 감독은 <그림형제>로 사람들을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 '라푼첼' '백설공주' 등 수많은 민담과 전설을 채록해 동화로 만든 이 독일 형제작가에 대한 얘기를 18세기 유럽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매력적인 판타지로 풀어낸다. 유럽의 모든 국가가 문화선진국이라는 프랑스만을 바라보고 살 때 그림형제는 독일의 새로운 민족문학을 일궈낸 선각자들이었으며 테리 길리엄은 바로 그점을 코믹하고 유쾌한 모험담 속에 은근히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영화 속에서 독일을 점령한 독재자 장군 드 라 통브는 그림형제에게 숲에서 사라진 아이들 11명을 찾아 오라고 윽박지르며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들이 전설을 믿으면 안 되는 이유가 뭔지 알아? 전설이 많을수록 통치하기가 힘들어기 때문이지"라고 얘기한다. <그림형제>는 바로 그 전설의 힘을 얘기하는 작품이자 지금의 영화가 과거의 전설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과 진심을 갖고 있는가를 되묻고 있는 작품이다.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가타카>란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앤드류 니콜 감독은 새영화 <로드 오브 워>를 통해 군산복합체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지금의 미국 현실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조지 W. 부시와 딕 체니 등등 위정자들이 리크게이트다 뭐다 해서 잘못된 길로 계속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할리우드만큼은 그래도 제 정신을 차리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택하고 있다.

지난 주에 개봉된 조디 포스터 주연의 '플라이트 플랜'과 이 작품 '로드 오브 워'를 보고 있으면 할리우드가 대중적인 기제를 가지고 자신들의 정치적 아젠다를 밀어붙이는 일에 얼마나 '선수급'들인가를 알 수 있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그것이야말로 할리우드의 힘이자 저력이다.

'로드 오브 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카자흐스탄인가 어딘가로부터 무기를 싸게 사들여 아프리카 같은 분쟁지역으로 고가에 되파는 밀매상 유리 오를로프가 철거된 레닌 동상을 깔고 앉은 채 돈 계산을 하는 모습이다. 권력은 총구에게서 나온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권력은 무기밀매상들에게서 나온다.

***<용서받지 못할 자>는 육군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을까?**

27세 약관의 감독 윤종빈이 내놓은 <용서받지 못한 자>는 단돈 3000만 원으로 만든 졸업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기성감독의 작품에도 못지않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병영 안 내무반 생활의 명암을 그린 이 영화는 군대 안 촬영을 위해 육군의 협조를 받았지만 당시에 제출했던 시나리오와 만들어진 영화가 딴판이라는 이유로 현재 육군측으로터 고발을 당한 상태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기도 하다.

지난 해 노동석 감독이 만든 <마이 제너레이션>과 함께 올해 역시 귀중한 독립영화 한 편이 건져 올려진 셈이며 독립영화계가 조금조금씩이나마 엄혹한 상업영화권에서도 생존을 위한 전진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영화를 왜 보는가?**

김영준 감독의 야심작 <무영검>에 대해서는 그리 할 말이 많지 않다. 이 영화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할 수 있는 작품처럼 보인다.

다만 딱 한가지만 얘기하자면 김영준 감독은 <비천무>에 이어서 왜 우리를 자꾸만 과거로 끌고 가려는지 그 이유를 좀더 명확하게 자신의 작품 안에 녹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관객들 가운데는 영화를 재미로만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의미로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 재기발랄한 무협감독이 깨달았으면 싶다.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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