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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참사 10년, 철창문을 열지 않아 열 명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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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참사 10년, 철창문을 열지 않아 열 명이 죽었다

[여수참사를 기억하다 ①] 보호소에 '보호'가 없는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2007년 화재참사로 10명의 보호외국인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한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가 있었던 날이다. 2월 11일로 10년을 맞는다. 하지만 10년 년의 시간이 지났으나 그날의 비극을 불러일으킨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는 이뤄지고 있지 않다. 더구나 참사에 대한 사회적 기억과 추모는 이후 반복된 참사들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당장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더라도 열 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일, 그리고 국적이나 체류형태를 불문한 모든 이들의 인권과 평등을 위한 문제제기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일이 아닐까.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 10년을 맞아 전국에서 추모와 기억을 위한 자리가 준비되고 있다. <프레시안>은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 10년을 맞아 3회에 걸친 기고를 실을 예정이다.

"불났어! 불났어! 하며 사람들을 깨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경비직원이 소화기를 가져 와서 한번 뿌리고는 도망가 버렸습니다. 갇혀있던 사람들이 '문 열어 달라!, 살려 달라!' 절규하며 철창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연기를 피해 화장실로 가서 거기서 기절했습니다. 그 뒤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부상자 증언)

불이 났는데도 철창문 열지 않아 열 명이 목숨 잃어

2007년 2월 11일 이른 새벽. 여수의 외국인보호소가 불길에 휩싸였다. 보호소 철창 안에 갇혀있던 이주민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당직을 서던 여수출입국 직원은 문을 열고 먼저 대피시키는 대신 소화기를 가지러 갔고 다시 나타났을 때 이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었다.

연기에 질식해 하나둘 쓰러졌지만 굳게 닫힌 철창은 열리지 않았다. 출입국 직원은 오로지 이들이 달아날까봐 걱정하여 철창문을 열지 않았으리라. 여수 소방대가 도착해서야 보호실 철창을 열어주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아홉 명의 이주민들이 목숨을 잃은 후였고 열여덟 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들에게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이었던가? 게다가 그 곳은 외국인을 ‘보호’해준다는 곳이 아니었던가.

보호를 빙자에 구금했던 이 시설에는 화재에 대비한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버젓이 있던 화재경보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수용시설에는 사용하지 않는 우레탄 매트가 깔려있어 인화하기 쉬웠고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만들어냈다. 3, 4층의 보호실 각 방은 2중 쇠창살로 이루어졌고 그 열쇠들은 1층에 있었다. 도주 우려에만 골몰한 탓에 비상 탈출구라곤 없었다. 상식도 없고 법도 없었다. 보호도 인권도 없었다.

▲ 화재로 불탄 여수외국인보호소 내부와 3층 화재발생장소.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병상에 누운 이주민조차 수갑 채운 출입국직원

살아남은 이주민들 중 중상자들은 병원에 입원조치 되었지만 의식을 회복하는데 사나흘씩 걸렸다. 연기 질식으로 호흡기 질환이 심했다. 무엇보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화재, 그리고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서 겪었던 그 모든 일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남았다.

그 와중에도 여수출입국 직원들은 병실 안팎에서 경비 서듯 감시하였고 심지어 병상에 누워있는 이들에게 수갑을 채웠다.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거센 항의로 수갑은 풀었으나 감시는 여전하였다. 부상자들은 고통스럽게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출입국직원들의 행태에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우리를 사람으로 보기나 한 것이냐, 사람으로 알았다면 갇혀 있는 이들을 불 속에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절규했다.

사망자들의 유가족들은 법무부, 외교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뉴스를 통해서, 지인을 통해서 화재소식을 접했다. 그리곤 직접 법무부에 전화하여 사실 확인을 해서는 부랴부랴 한국으로 입국하게 되었다. 날벼락 같은 소식에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사망 관련하여 한국 경찰도, 법무부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뉴스 보고 달려왔다. 부검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한 바도 없고, 아예 부검사실 자체를 몰랐다. 여수에 와서도 사고경위도 듣지 못했고, 향후 처리에 대한 안내는 전혀 없었다. 어찌 사람이 죽었는데 이리 막 대하는가?" (유가족 증언)

▲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유가족의 오열.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외국인보호소는 어떤 곳인가?

외국인보호소는 외국인이 체류기간을 넘기는 등 미등록상태가 된 경우 본국으로 출국시키기 위한 대기장소로써 법무부가 '보호'하고자 하는 시설이다. 하지만 말이 보호소지 실제로는 구금시설이다. 교도소보다도 훨씬 더 열악한 구금시설이다. 법무부가 '수용시설, 구금시설'이라고 칭할 수 없는 것은 미등록 이주민들은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사람을 구금하는 것은 자신들이 생각해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보호'라고 하는 것이다. 구금도 아니고 보호도 아닌 보호소는 그래서 무법천지다.

대한변호사협회가 2015년도 발간한 '외국인보호소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보호소에 구금된 6명 중 모두가 강제 구인이 되던 단속 당시 공무원으로부터 미란다원칙을 전혀 고지 받지 못하였다 답하였고, 보호명령서나 긴급보호서를 출입국공무원으로부터 제시받았다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보호소에서의 운동시간은 운동장으로의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하루 10분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마저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대부분 방 점검시간으로 위법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가 비인간적인 단속과 강제추방, 보호 없는 구금에 경종을 울렸음에도 현재까지 정부에 의한 불법과 인권침해가 여전하다.

왜 구금되었나? 왜 미등록이 되었나?

"연수생 신분으로 건설회사에서 터널 뚫는 일을 하다 귀를 다쳤는데, 처음에는 회사 측에서 치료를 해 주었으나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저보고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오게 되었고, 그 뒤로는 미등록 체류자가 되었습니다." (부상자 왕○○님)

여수보호소에 구금되어 있다 화재참사를 겪은 대부분의 이들은 그저 노동해 먹고사는 평범한 노동자들일 뿐이었다. 인권침해로, 제도적 허점으로 미등록 신분이 되었고 여수출입국에 단속되었다. 적게는 한두 달 많게는 1년 넘게 체불임금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철창 안에 갇힌 사람을 어느 사업주가 두려워하겠는가? 이들을 구금한 법무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체불임금을 청산할 리 만무했다. 그리하여 이들의 구금생활은 하세월이었다. 임금 체불하여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범죄자를 법무부가 도와준 셈이었다.

故 진선회 씨는 연수생으로 1년 반 정도 근무했던 업체가 계약서대로 월급을 지급하지 않고 노동환경이 너무 열악해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과 작업을 거부하는 등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힘든 상황이 계속되어 업체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알려졌다. 故 김성남 씨는 건설업 비자를 가졌지만 일을 구하지 못해 여수의 한 양식장에서 일하다가 1020만 원의 임금이 체불되었고 이후 새롭게 구한 일자리도 건설현장이 아니어서 체류기간 만료 전에 연기신청을 하려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방문했다가 '불법체류자'라고 구금됐다.

그저 허가받은 기간보다 좀 더 머물고 있다는 이유로, 정해진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때로는 단지 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사람이, 인간이 '불법'이 되고 있다. 불법으로 낙인찍힌 그이들은 대부분 그저 일하는 사람들이거나 그들의 아이들일 뿐이다. '불법체류'를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일컫는 까닭이다.

미등록 이주민이 누구를 다치게 하였는가? 미등록 이주민들은 그들의 드러낼 수 없는 처지 때문에 오히려 범죄 피해자가 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그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이용해 손쉽게 착취함으로써 오히려 이득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2007년 화재참사로 한국에 입국했던 유가족들은 아름다운 바다라는 의미의 여수(麗水)의 한자말 대신 '눈물 려(淚)'자로 바꾸어 ‘눈물의 바다(淚水)’라고 피켓에 적었다.

우리는 이번 주 전국 각지의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외국인보호소 앞에서 그리고 눈물의 바다 여수와 광화문 광장에서, 비정한 대한민국에서 고인이 되신 故 김광석 씨, 故 에르킨 씨, 故 이태복 씨, 故 장지궈 씨, 故 손관충 씨, 故 리샤오춘 씨, 故 양보가 씨, 故 김성남 씨, 故 진선회 씨, 故 황해파 씨에게, 여수외국인보호소화재참사 10년을 기억하며 추모의 촛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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