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두 해 사이에 우리 영화계는 두 명의 스타 아닌 스타감독을 갖게 됐다. 윤종빈 감독과 노동석 감독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로 올해 부산영화제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윤종빈이나 〈마이 제너레이션〉으로 작년 한 해 각종 영화상을 휩쓴 노동석은 주류 상업영화들이 언급하지 못했던 현실의 영역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우리 영화의 담론을 풍성하게 만든 신진세력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캠코더가 영화미학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 둘의 출현은 기성 영화계의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대안영화를 실현시킨 셈이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마이 제너레이션〉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에 담긴 강한 현실성이다. 〈마이 제너레이션〉에서 노동석은 카드빚에 몰려 청춘과 희망을 차압당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차분하지만 끈질기게 추적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윤종빈은 군대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일반화된 경험을 소재로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 안의 파시즘을 고발한다. 이 두 영화는 모두 우리가 애써 외면해 왔지만 결코 감출 수 없었던 한국 사회의 치부와 상처를 표면화시킨다. 이 두 영화는 우리 현실에 대한 직설적인 태도로 일관하지만 반면에 그 내면을 향한 고해성사적인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지금의 우리 자신들을 반성케 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 영화가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된 초저예산 영화라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두 영화의 제작비는 3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예산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두 영화가 모두 뛰어난 완성도를 갖춘 영화라는 점이다.
디지털 캠코더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0여 년 전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장비에 주목했고 그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어떻게 영화적으로, 미학적으로 구현될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 사이에 한국영화의 대세는 대규모 자본이 투여된 상업영화 제작으로 기울었고, 디지털 영상기술에 대한 관심 또한 산업적 영역으로 편입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렇게 한때 무한한 가능성으로 인정받던 디지털 캠코더는 학생용 실습장비나 아마추어 영화를 위한 장비로 인식되면서 영화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소외받던 장비가 젊은 감독들에 의해 새로운 가능성을 평가받게 된 셈이다. 두 영화야말로 그 가능성이 구체화된 결과물이다.
두 영화에는 디지털 캠코더 영화의 태생적 한계처럼 느껴졌던 미숙함과 조악함이 없다. 노동석 윤종빈 두 사람은 필름의 표현력을 모방하려고 애쓰는 대신 디지털 캠코더만이 가진 독특한 질감을 자신들의 영화의 중요한 미적 특징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취했다. '육중한' 영화들이 다가서지 못했던 사소하고 일상적인 영역으로 자신들의 영화를 이끌고 들어간다.
이건 마치 한국식의 누벨 바그의 탄생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1960년대 프랑스 누벨 바그 감독들은 핸드 헬드가 가능한 초경량의 카메라를 사용함으로써 스튜디오 안에 갇힌 채 화석이 되어가던 프랑스 영화를 다시금 세상의 빛과 조우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디지털 캠코더를 손에 든 한국의 청년 영화감독들도 헐리우드 영화의 재생산과 그 변종의 탄생에 골몰해 하고 있는 한국영화를 다시금 세상밖으로 끌어내고 있다.
강박적인 흑백화면이 거친 입자의 컬러화면으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암전으로 변해가는 〈마이 제너레이션〉의 마지막 장면, 승영의 카키색 군복과 욕실에 흘러내린 붉은 피를 대비시킨 〈용서받지 못한 자〉의 클라이맥스 장면, 그리고 공허한 시선과 굳은 얼굴을 가진 인물들은 이 두 편의 영화가 어떤 영화적 전통에 기대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충무로 바깥의 청년 영화인들에 의해 완성도 높은 저예산영화가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평균 제작비가 40억을 넘어선 현재의 한국 상업영화 구도 안에서 젊은 감독들이 자신의 재능을 선보일 기회는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주류 영화의 언저리를 서성거리다 자신의 재능을 소진하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목격해 왔다. 한국영화의 미학적 위기는 어쩌면 신인감독들에 대해 진입장벽이 높아진 사실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런 미학적 위기는 한국영화산업의 위협요소로 늘 잠재돼 있다.
다행스럽게도 젊은 감독들은 디지털 저예산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창작욕을 해소할 방안을 발견했다. 그리고 기성영화와는 다른 대안영화의 영역을 개척해 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노동석, 윤종빈 외에도 수많은 미래의 영화감독들이 지금 디지털 캠코더를 들고 영화를 찍고 있다. 새로운 장비와 새로운 영화적 감성을 가진 이 '디지털 제너레이션' 가운데서 우리는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의 뒤를 잇는 새로운 문제적 감독들의 이름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