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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별마로 천문대에서 슬픈 별의 이야기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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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별마로 천문대에서 슬픈 별의 이야기를 묻다

[서정욱의 영월 별마로 천문대마을 여행]

해발 798.8m의 천문대로 가는 마을이 있다. 나는 그 마을을 '별마로 마을'이라고도 하고 '유 레굴루스 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별마로 마을 여행을 모두 눈에 담으려면 자전거 여행이 제격이다. 자동차를 봉래산 입구의 한 공터에 주차를 하고 자동차 트렁크 칸에 싣고 간 자전거를 타고 먼저 봉래산 정상에 있는 별마로 천문대로 향했다.

4월 3일 오후 영월 읍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봉래산 가는 길은 구불구불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마차에서 석탄을 싣고 영월 역까지 가는 길목 골짜기의 낡은 삭도가 있던 자리는 석탄가루 대신 상쾌한 산나물들이 뿜어내는 봄바람이 불었다.

▲해발 798.8m 영월 봉래산 정상에 위치한 별마로 천문대. ⓒ프레시안(서정욱)

한참을 달렸다. 별마로 천문대로 가는 산 입구에 팻말이 보였다. 나는 그곳의 별마로 식당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었다.

별마로 천문대로 가는 길은 가파른 곳이 많아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야 하는 길이 대부분이었다. 나 혼자 올라가기도 벅찬 산길을 자전거까지 끌고 가다보니 봄인데도 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다.

30여분을 걸었을까. 헉헉거리는 숨을 몰아쉴 때서야 별마로 천문대가 보였다. 하늘을 닮은 둥근 돔이 지붕을 덮었다. 입구에는 로봇이 빨간 우체통을 들고 나를 반겼다. 밤이면 지름 800mm 주망원경과 보조망원경으로 밤하늘 행성들을 관측하기에 좋은, 정말 조용하고 캄캄한, 별들과 가까운 공간이다.

▲별마로 천문대 앞의 로봇 우체통. ⓒ프레시안(서정욱)


웅장한 천문대 바로 앞, 산 아래로는 어릴 적 내가 걸어서 올라오던 빠른 숲길에 층층계단에 밧줄로 엮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그 옆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타기위해 마련된 인조 잔디의 활공장 풍경이 별마로 천문대와 잘 어울렸다. 그 곳에서 나는 한눈에 들어 온 영월 읍내를 내려다 보았다.

읍내 한 켠. 구석진 자리에 소년 시절,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이사와 살던 별마로 마을이 우울히 앉아 있다. 사람들은 이 마을을 '수재민촌', 또는 '독가촌'이라고 불렀다. 독가촌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던 마을이었다. 내가 살던 마을은 장릉으로 가는 산줄기를 등 뒤로 두었고, 앞산은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을 끼고 있었다.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 입구에 있는 독가촌 마을(소설 '유레굴스'에서는 '별마로 마을'로 나온다). ⓒ프레시안(서정욱)

그 마을에 살며 나는 천문대가 있는 산 정상을 새벽이면 일어나 운동삼아 올라갔다가는 내려왔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심장이 튼튼했고, 오래 달기기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그 때 나는 아버지가 갖고 계신 아주 낡은 작은 망원경을 갖고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 그런 자리에, 그후 40년이 지난 이 마을에 천문대가 생겼다.

나는 이 천문대 자리에 앉아 삭도 너머 바라보이는 장릉을 보며 시를 짓기도 했다. 장릉은 그 때 나와 나이가 엇비슷한 조선의 6대 군주 단종이 묻힌 슬픈 곳이다.

권력에 눈이 어두운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이 형의 아들인 10대 소년 단종을 죽였기 때문이다. 작은 아버지 수양이 조카인 어린 단종을 귀양보내 사약을 내린 슬픈 흔적은 내가 다니던 중학교 담장 뒤, 그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는 영모전, 읍내를 흐르는 동강과 서강에 어린 군주의 눈물로 흐르고 있다.


▲별마로 천문대 옆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서 바라본 단종의 슬픔이 담긴 영월 읍내로 흐르는 서강이 보인다.ⓒ프레시안(서정욱)

중학 시절 아버지와 함께 별마로 천문대를 오르면 아버지로부터 군군신신(君君臣臣)을 들었다. 이 말은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가난한 사람들도 행복을 만들어 주는 군주다운 군주, 즉 그런 나라를 만들어 주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를 꿈꾸며 살았다.


그 별마로에 살며 4월이면 밤하늘을 보았다. '레굴루스 별'을 작은 임금인 '단종의 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문학을 전공하던 나는 어린 단종의 별인 레굴수스 별을 생각하며 '유레굴루스' 라는 청소년 장편 소설을 썼다.

해의 그림자가 산마루를 다 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서강이 내려다 보이는 별마로 천문대의 저녁 노을을 보며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를 마셨다.

저물녁. 4월이면 별마로 마을 하늘에 보이는 '레굴루스 별'. 그 별빛 아래 가난하지만 순수한 별마로 독가촌 마을 사람들의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에 회색 벽돌 담장을 두른, 자전거 한 대 겨우 빠져나갈 만큼의 비좁은 골목길. 골목길에도 레굴루스 별 같은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고 있었다.


그 불빛에 비친 밤하늘을 보며,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이 마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레굴루스 별을 떠올리며, 마을로 내려가는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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