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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김유정역’에서 춘천의 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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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김유정역’에서 춘천의 봄을 만나다

사라져가는 성냥갑처럼 작은 간이역에게도 인간의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

경춘천 기차와 어울리는 작가. 그는 김유정이다. 많은 사람들은 김유정 작가가 서울에 있는 연희전문학교를 다닐 때 이 경춘선을 타고 다녔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경춘선을 한 번도 탄 적이 없다. 그 이유는 경춘선은 그가 죽은 지 2년 후인 1939년에야 춘천으로 가는 기차가 처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경춘선을 타고 유정을 만나고 싶었다.

4월 셋째 주인 17일 아침.

상봉역에서 김유정역으로 가는 경춘선 전철을 탔다. 용산에서 약 1시간 정도면 춘천에 도착하는 ITX 청춘열차를 타고 싶었다. 그러나 청춘열차는 김유정역에 정차하지 않아 모든 역을 다 정차하며 가는 일반 전철을 탔다.

전철 안에는 나 이외에도 춘천으로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전철에 탄 사람들은 춘천 닭갈비를 점심으로 먹으면 좋겠다는 나이 지긋한 등산객 일행과 춘천으로 대학을 다니는 통학생들이 보였다. 그 전철 안, 사람들 틈에서 나는 가져 온 낡은 유정의 소설책을 읽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사춘기 중학생이 된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동백꽃’의 주인공 점순이가 지금 학교를 다닌다면 발렌타인데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감자대신 초콜릿을 당당하게 주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어제 하루 종일 비가 하늘을 씻고 내려온 경춘선의 창밖은 싱싱한 봄이다.

▲더이상 기차에서 내리는 손님도 없는 경춘선의 옛 김유정역의 풍경. ⓒ프레시안(서정욱)

잠시 후, 내가 탄 전철은 강촌을 지나 빠르게 김유정에 도착했다.
대학시절. 내가 타고 내렸던 김유정역. 그때는 ‘신남역’으로 불렀다. 그러나 춘천사람들은 단선이 경춘선이 복선으로 건설되면서 ‘신남역’이라는 이름 대신 이 마을에 태어난 젊은 소설가 ‘김유정’ 이름을 딴 ‘김유정역’을 원했다. 그래서 개명된 ‘김유정역’

▲춘천으로 가는 경춘선 복선전철이 생기면서 새로 지은 '김유정역'의 모습.ⓒ프레시안(서정욱)

새로 지은 김유정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으로 지은 웅장한 역이었다. 그러나 나는 낡은 김유정 역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유정도 나처럼 더 좋아했을 성냥갑처럼 작은 옛 김유정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간이역 앞 철로에는 전철이 놓이기 전에 경춘선을 달렸던 디젤 기관차와 낡은 무궁화호 열차 서 너 차량이 손님 없는 봄날 아침을 외로이 맞고 있었다.

이 열차들이 경춘선을 달리게 한건 국가의 힘이 아니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한국을 강제 점령했던 그 때. 조선총독부는 강원도청을 강원도 최초로 철로가 놓였던 철원으로 옮기려고 했다고 한다.

그 때 춘천사람들이 철원에 도청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사비를 걷어 경춘철도주식회사를 세웠고, 우리나라 철도 역사상 최초로 국철이 아닌 사철로 건설한 것이 경춘선 철도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경춘선 철도만 보면 ‘춘천사람들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그 덕분에 작가 김유정의 마을에 들어선 작고 소설같은 소박한 간이역. 나는 그 간이역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간이역에 앉아 생각했다. 유정이 죽기 전에 경춘선이 생겼더라면 이 경춘선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춘천 집으로 오며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고 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김유정역 광장 옆에 있는 옛 경춘선 폐선로 위에 세운 '레일 파크'. ⓒ프레시안(서정욱)

그런 간이역을 빠져나와 중국인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린 ‘레일파크’로 갔다. 가족이나 친구들 끼리 여행을 온 중국인 관광객 수 백명이 경춘선 전철이 생기면서 폐선로가 된 엣 경춘선 자리에 운행하는 레일바이크를 타려고 줄을 섰다.

나는 폐선로 철길을 걸었다. 레일바잍크 사이로 유정이 이 마을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금병의숙으로 가는 길에 핀 화사한 봄꽃들을 보았다.

▲김유정 옆 폐선로 위를 달리는 레일바이크. ⓒ프레시안(서정욱)

그리고 레일파크 안에 거대한 빙벽처럼 책을 세운 책벽을 걷다 책벽 위에 앉아 책을 읽는 한 소년을 만났다. 꼭 동화 ‘책읽는루브르’에 나오는 주인공 ‘루브르’를 닮은 소년이 하늘과 가장 가까운 책벽 위에 앉아 있다.

▲레일파크 안에 설치한 책벽 위에 앉아 책읽는 소년. ⓒ프레시안(서정욱)

그 책 읽는 소년을 보며, 어쩌면 유정이 다시 태어난다면 읽고 싶은 책을 저 소년처럼 저렇게 앉아 읽고 싶은 책들을 읽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책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중국인 소년을 보며, 나는 유정이 마을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금병의숙의 마을 안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 앞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서 나는 마을을 품은 해발 652m의 금병산 자락을 보았다. 그리고 떡시루처럼 움푹이 들어간 마을의 풍경을 보고 나서야 유정의 태어나 자란 마을이 왜 ‘실레마을’인지를 깨달았다.

▲김유정 작가의 집으로 가는 밭둑길. ⓒ프레시안(서정욱)

유정이 태어난 집으로 가는 밭둑과 논둑에는 현대식 카페가 하나 둘 들어서서 유정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낡은 집에서 안낮 닭우는 소리가 소설속 점순이네 닭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유정이 걸었던 밭둑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병이 들어 힘든 몸이었을텐데도 불구하고 간나한 마을 아이들을 깨우쳐 주기위해 야학을 세워 가르치며, 밤이면 남몰래 호롱불 아래서 소설을 썼을 유정의 소설 자국은 쉽게 지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유정의 마을은 많이 변화했다. 거대한 공연장이 세워졌고, 유정이 생각조차 하지 못한 거대한 관광객용 초가집들이 문학관으로 웅장한 모습을 갖추었다.

그런데 나는 촌스럽게도 그런 풍경이 싫었다. 논둑밭둑 따라 유정이 걸었을 자연스런 좁은 길과 낮은 토담들. 그리고 봄이면 춘천의 봄을 담아내었던 동백나무와 진달래 개나리 꽃이 피고, 살구꽃과 배꽃이 피던 밭둑 사이 흙길이 더 그립다.

▲경춘선 복선전철로 금병산 등산객과 웅장한 문학촌이 건설되면서 마을은 점점 외지인들의 투기로 인해 옛모습이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 ⓒ프레시안(서정욱)

글을 쓰는 사람들은 욕심이 없다. 욕심을 내는 건 변화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일게다. 유정도 내 마음 같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을 아래 저 멀리 내 손톱만큼 작아보이는 김유정의 간이역을 보며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쓴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새뮤얼헌팅턴의 말처럼 문명의 충돌에서 강한 것만 살아남게 하려는 인간의 욕심에서 벗어나 문명의 틈바구니에서 작은 간이역들에게도 우리가 조금 노력해 배려할 줄 아는 지혜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유정은 어릴 적 어머니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서울로 유학을 갔다. 춘천에서도 꽤 갑부였던 유정은 서울에 99칸짜리 집을 사서 살 만큼 엄청난 부자집 아들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단칸방에서 폐병에 걸린 동생 약값 조차도 제대로 대지 못한 형에 대한 원망과 슬픔만 남아 있는 서울을 떠나 병든 몸으로 다시 고향 춘천으로 내려 왔을 유정의 아픔을 생각했다.

꿈 많은 20대의 젊은 김유정 작가. 그러나 그가 죽어서 간이역으로 남아 더 유명해진 김유정역은 유정의 소설을 기억하고 있었다.

▲경춘선 복선전철역에 세워진 새 역사에 밀려 타는 손님도 내리는 손님도 없는 옛 김유정역이 외로이 늦은 오후의 봄비를 맞고 있다. ⓒ프레시안(서정욱)

늦은 오후. 더 이상 손님이 내리지 않는 낡은 간이역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유정의 나이 때, 춘천 공지천 호수에서 겨울나기를 하며 내가 쓴 단편소설 ‘공지역’과 북한강이 보이는 강변 언덕에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 북한강을 바라보며 썼던 ‘붉은 벽돌집’을 동화속 성냥갑 만한 유정의 간이역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빗속을 걸으며 생각했다. 우산 속에서, 나는 문명의 충돌로 사라져가는 낡고 힘없는 간이역들을 무조건 새것으로 바꾸기보다는, 그 작은 것들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과거 문명에 대한 인간의 작은 배려’를 우리가 스스로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간이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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