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은 누구나 그림동화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족과 여행을 할 때면 자기가 좋아하는 동화책 한 권을 가방에 넣어 가기도 한다.
동화를 좋아하는 그런 아이들의 동화 같은 순수한 생각을 실험하는 섬이 있다.
육지 위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댐을 만들면서 섬이 된 남이섬.
그 섬은 강원 춘천으로 가는 경춘국도를 따라 서울에서 1시간 여쯤 달리면 춘천시 남산면 남이섬길 1번지이다.
동화 같이 아름다운 섬에 가기 위해 나는 요즘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동화 ‘책 읽는 루브르’를 여행 가방에 넣고, 그 섬으로 갔다.

5월의 문을 여는 1일 아침은 푸른 하늘이 맑았다. 나는 남이섬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청평에서 경축국도로 길을 바꿨다.
남이섬을 가는 건 7년만이다. 그 때 나는 그 섬이 세계의 모든 아이들에게 안데르센의 동화 같은 꿈과 희망을 만들어주는 동화의 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실험을 이 섬이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섬에게 질문을 던졌다.
1시간 지날 즈음. 남이섬을 상징하는 나미나라공화국 입구 선착장에 설치된 아시아에서 가장 길고,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80m 높이의 은색타워인 짚 와이어(zip wire)가 보였다.

나는 ‘세계책나라축제’가 열리는 섬으로 가기위해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다.
붐비는 관광객들 틈에 끼여 배에 오르자, 배는 5분 만에 나를 동화 읽는 소년으로 변신시켰다.
강 양쪽 사이에서 비치는 초록의 산빛이 강을 물들이고 있었다. 배 안에서는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관광객을 태운 관광 버스에서 내린 한 소녀가 스마트폰으로 섬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다.
섬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나를 다시 반기는 건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인어공주’가 물 위에서 나를 바라본다.
섬은 동화 ‘인어공주’대신 ‘나미나라 공화국’이라는 섬으로 변하고 있었다.
원래 이 섬은 조선조 태종의 왕족 핏줄을 갖고 태어난 남이장군의 이름을 마을 사람들이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섬의 주인은 ‘남이’의 이름을 소리가 나는 대로 ‘나미’로 변형시켜 불렀다.
고유명사의 원형 파괴가 아쉬웠지만, 우리말의 딱딱한 받침이 떨어져 나가고 영어처럼 주는 어감이 다른나라 사람들에겐 더 친근감 있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책 축제가 열리는 섬 속으로 걸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쑥쑥 올라간 나무 숲 속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 섬의 원형의 의미가 내가 어릴적 읽었던 역사 시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유자광이 평(平)자를 득(得)자로 바꿔 ‘스무 살에도 나라를 얻지 못한다면’이라는 해석 때문에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20대에 병조판서에 오른 그가 역모죄로 죽어 돌무덤을 남겼다는 남이섬의 역사.
그의 비극의 역사도 책축제를 찾는 아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지운건 책과 놀 수 있는 도서관 같은 노랑색 2층 건물 앞이다.

남이섬이 창조한 또 다른 실험 공간. 아이들이 이 섬이 만든 책 축제의 공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이 동화 ‘책읽는루브르’의 주인공 루브르 소년처럼 나란히 앉아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다. 아이들 위로 피터팬 같은 아이가 노란티셔츠를 입고 두 손을 올린 채 책읽는 아이들을 장난꾸러기처럼 내려다보고 있다.

마네킹 아이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얼마전 내가 만난 김유정역 ‘레일파크’의 책벽 위에 앉아 책을 읽는 루브르 같은 소년의 모습이었다면 이 공간의 조화가 더 잘 어울렸을 거라는 아쉬움을 남기며 건물 이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과 뛰어노는 아이들이 미끄럼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 사이. 입구 벽에는 동남아에서 온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그들은 읽을 책이 없는지 스마트폰만 들고 앉아 무언가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있다.
아직은 이 섬이 실험중이어서 그런지 그들에 대한 또다른 배려가 안타까웠다.
춘천 가는 길. 춘천 속의 아름다운 북한강이 창조한 작은 섬. 그 섬은 남이장군의 역사를 넘어 ‘NEW 아시아 시대’ 세계사람들과 더 많은 조화로운 실험을 하고 있었다.

사드문제로 섬을 찾았던 중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빈자리를 동남아 관광객이 채우는 섬. 그래도 최근엔 평일 하루 내국인을 포함해 2만 명 정도가 섬을 찾는다고 한다.
나는 섬으로 오기 전날 서울 명동 거리를 걸었다. 한국 속의 작은 중국인의 거리로 북적 거렸던 명동. 그 때문에 한국인이 오히려 명동에서 차별 받았던 아이러니한 도시.
하루 1만 명, 1년이면 3백60만명이 오는 남이섬. 이 섬 때문에 춘천은 강원도에서 제일 많은 관광객 도시가 됐다.

그러나 이 섬이 실험하는 실험 속에 ‘조화’가 없다면 그 실험은 서울의 명동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책그림놀이 건물을 나왔다.
나는 책이 있는 산책로로 가기 전에 눈에 띈 ‘겨울연가’의 주인공 배용준과 최지우의 대형 사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동남아 관광객들을 보았다.

영화가 창조한 문화의 힘은 크다. 그 힘이 이 섬을 포브스 저널리스트 미셀 유안이 세계 10대 겨울 웨딩 촬영지로 꼽을 정도로 세계 사람들이 찾는 섬으로 진보시켰다.
8년 전, 그들은 ‘책의 나라’ 축제를 치른 건물 앞에서 구운 가래떡을 먹으며 손바닥만한 디지털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었다. 그런데 그런 풍경은 또다른 레스토랑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 때 이 섬은 책의 축제를 통해 전쟁이 아닌 평화와 공생을 말하고 싶었다. 국경 없는, 인종의 벽이 없는 소통의 자유와 힘을 공감하는 섬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보였다.
그때 나는 유커(중국인관광객)들이 화장품을 사던 명동 풍경과 달리 이 섬은 우리의 문화를 그들에게 파는 그런 섬이 되고 있어 고마웠다.
상인의 입장에서는 비싼 음식과 상품을 많이 파는 것이 외화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우리가 이 자연의 공간에서 아시아는 물론 세계사람들이 섬을 느끼고, 이해하며, 소통한다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며 책산책로로 발걸을 옮겼다.
책으로 쌓은 탑이 서 있던 자리에 만든 책산책로는 의외로 한산했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기술을 가진 우리가 세종대왕이 만든 우리만의 글로 책을 만들어 읽고, 또 다른 문화로 창조해 보여주는 책 탑에서 그 검푸른 눈을 깜빡거리던 아이들이 없이 책간판만 오밀조밀하게 허수아비처럼 서있다.

책산책로에는 벤치가 없다. 나는 책산책로를 걸으며 생각했다. 어릴 적, 나는 북한강에 있는 이 섬이 나폴레옹황제의 모자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 때 이 섬은 지금처럼 빼곡한 나무도 없는 황량한 들판 같았다. 그리고 섬 한가운데 있던 도깨비성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나름 즐겁게 한 기억이 남아있다.
남이섬이 음식과 상품으로 외화를 버는 섬만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강물위에 뜬 섬으로 남아 세계 사람들과 공감하는 소통의 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섬으로 불어오는 강바람을 쐬었다.
섬은 아침이면 뜨는 안개를 먹은 나무들이 주는 자연의 색깔과 싱그러운 공기를 먹으며 싱싱하게 자랐다.
그 때 나는 이 섬이 실험중인 자전거를 타는 목각으로 만든 피노키오를 보며 섬을 찾는 아이들이 동화 속 피노키오처럼 자전거를 타고 숲속을 달리는 풍경을 상상했다.

섬은 메타세콰이어가 강물에서 살아남을지 실험을 했다. 그러나 강물에 키운 메타세콰이어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막 싱그럽게 올라온 자작나무 숲을 걸으며 자작나무들이 내게 들려주는 섬의 생명의 소리를 들었다. 이 섬은 정말 내게 많은 걸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원시림의 상태가 아닌 인위적인 인간의 힘으로 창조한 섬. 그 때 작은 그 나무들은 아름드리나무로 자라 나에게 또다른 나무들의 이야기를 책을 읽어주던 엄마처럼 내게 말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노자는 인위적인 세상을 반대했다. 인간의 욕심으로 부수고 창조하기보다 인간의 손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의 공간을 더 간절히 요구했다. 자연의 빛과 나무들, 그리고 섬을 안개 속에서 감추었다 내놓는 마술처럼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창조를 담아낼 수 있다.
노자의 생각은 7년 만에 다시 찾은 이 섬에게 내게 다시 묻는 질문이고, 이 섬의 숙제이다.

늦은 오후 시간. 저문 강은 집으로 돌아가는 배를 탄 사람들에게 오늘 섬에서 흘린 땀방울을 씻어줄 싱그러운 강바람을 내어 준다.
그리고 나는 선착장으로 바쁘게 걸어 나가 배에 올라타는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섬을 보았다.
책축제가 한 달 내내 열리는 나미나라 섬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밀물 앞에서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 내 기억 속에서 토마스 모어가 실험하고자 한 모두가 꿈꾸는 인간의 차별도 전쟁도 국경도 없는, 오직 평화만 읽는 그런 동화 같은 세상을 이 섬이 다시 실험해주길 기대하며 섬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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