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이슈에 민감하고, 전반적으로 여당세가 강한 것도 그래서다. 동시에 이 지역은 국내 최대의 복합 선거구이기도 하다. 서울보다 7배가 넓은 4155㎢의 면적에 무려 23개 읍·면·동이 걸쳐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파란을 일으킨 '이광재 효과'가 강원도의 다른 지역에서 여전히 표심을 뒤흔들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 지역의 정서는 조금 다르다고 했다. 한나라당 한기호 후보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민주당 정만호 후보 측의 한 관계자도 "이 지역은 아무래도 '바람'이 조금 늦게 올라오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 지역에 출마한 한나라당 한기호 후보. 장성 출신인 그는 각종 '밀리터리 마케팅'으로 접경지역의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프레시안(송호균) |
한기호의 '밀리터리 마케팅'…"지역주민!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육군 중장 출신인 한나라당 한기호 후보는 이런 지역의 특수성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그의 유세차에서는 익숙한 군가를 개사한 선거운동 노래가 흘러 나왔다. "지역주민!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한 운동원은 절도있는 동작으로 유세차 주변을 지나가는 차량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22일 인제군 북면 유세현장을 찾은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한나라당에는 군사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한기호 후보를 국회로 보내주시면 이 안상수가 대한민국의 국방을 좌지우지할 힘을 드리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 지역에서만큼은 이광재 지사를 눌렀던 이계진 전 의원도 동참했다.
군부대가 밀집해 있는 지역의 특성상 군과 관련된 공약도 눈길을 끌었다. 한기호 후보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신병교육대 면회제도 부활과 교육을 모두 이수한 훈령병이 외박을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제대한 직업군인이 지역에 정주할 수 있는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공약도 있었다. 비무장지대(DMZ)의 생태관광루트 개발을 중점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민주당 정만호 역시 이와 유사한 공약들을 포함시켰다. '접경지역'의 특수성 때문이다.
지역 언론의 여론조사 등을 종합하면 현재로선 한나라당 한기호 후보와 민주당 정만호 후보가 오차범위를 뛰어넘는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통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김모 씨는 "여기는 노무현이고 이광재고 소용 없다"며 "게다가 이광재 지사가 이겨 버리니까 투표는 안했지만 한나라당을 더 좋아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란 것 같더라"고 했다. 한나라당 조직과 지지층의 역결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방선거에서와 같은 '막판 반전'을 점치는 목소리도 적지는 않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실장, 청와대 정책상황비서관, 의전비서관 등을 지난 민주당 정만호 후보 측은 "한나라당 일색이었던 지역의 분위기가 이미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고 했다.
중앙당 차원의 득표 경쟁도 치열했다. 한나라당은 안상수 대표를 시작으로 김진선 전 지사, 정몽준 전 대표, 홍준표·나경원·정두언 최고위원의 지원유세가 열린다. 민주당 역시 박지원 원내대표, 손학규 전 대표 등이 철원과 화천 일대를 돌며 지원유세를 펼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날 철원을 찾은 권영길 의원을 시작으로 이정희 신임 당 대표, 강기갑 전 대표 등이 잇달아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다.
▲ 민주당 정만호 후보.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요직을 거친 그는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이광재 도지사 캠프의 총괄본부장을 지냈다. ⓒ프레시안(송호균) |
중앙정치 이슈보다는 '연고'…막판 변수 될까?
만만치않은 변수도 남아 있다. 바로 후보자의 소속 정당이나 공약보다 연고지를 중시하는 특유의 '소지역주의'다.
민주당 정만호 후보는 양구, 민주노동당 박승흡 후보는 철원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인제에서 보냈다. 한나라당 한기호 후보와 무소속 구인호, 정태수 후보는 모두 철원이 고향이다. 게다가 구인호 후보는 한나라당 공천에 반발해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유권자 수는 철원이 가장 많지만 보수 성향 유권자의 표심이 양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민노당 박승흡 후보가 주로 인제 지역에서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박 후보의 부친은 이 지역에서 초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인제 지역의 투표 결과가 나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반면 인제군에서 근무하는 회사원 최모 씨는 "열심히 뛰는 것은 잘 알지만, 아직도 지역에서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거부감이 많아서…"라며 말을 흐렸다.
후보자들 간의 막판 단일화 여부도 관심사이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그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지역의 공통적인 정서였다. 한나라당 한기호 후보는 인제군 유세에서 "자꾸 낙하산 공천이라고 하는데, 지역에서는 나같은 군인 출신이 낙하산을 타고 투입돼야 지역 현안이 해결될 수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후보 측 관계자도 "선거 초반에는 구인호 후보와 단일화하라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지금은 쑥 들어갔다"며 "단일화 없이도 넉넉하게 이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 정만호 후보 측 역시 민노당 박 후보 측과의 후보 단일화는 이미 물건너간 사안으로 보고 있었다. 박 후보 측도 "단일화는 서울 은평을의 문제이지, 여기에서는 아예 논의조차 한 적이 없다"며 "무조건 완주해서 승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뚜껑은 역시 열어 봐야 알 수 있다는 게 대다수 주민들의 관전평이었다. 양구에서 농기계점을 운영하는 양모 씨는 "정만호를 찍겠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숨은 표'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모르겠다"가 대다수였다. 인제군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박모 씨 역시 대답 대신 어색한 웃음만을 내비쳤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광재 지사를 뽑았다는 그는 그러면서도 "이번에도 투표는 꼭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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