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리의 비전이 그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리의 비전이 그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나"

[서평] 조용환 변호사의 <안데스를 걷다>

조용환 변호사(법무법인 지평)가 쓴 <안데스를 걷다>(진실의 힘)의 부제는 '안데스의 숭고한 자연과 역사에 보내는 헌사'다. 과거에 비해 남미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남미는 한국인들에게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멀고 덜 알려진 대륙이다. 조 변호사는<안데스를 걷다>를 시작하면서 남미에 대해 아래와 같이 개략적인 소개를 하고 있다.

▲ <남미를 걷다>, 조용환 지음, 진실의 힘 펴냄.
남미 대륙을 만든 것은 안데스산맥과 아마존강이다. 안데스산맥이 대륙의 뼈대를 이루고 아마존강이 거대한 평원을 빚어냈다. 전체면적은 1784만㎢, 한반도의 80배가 넘는다. 안데스산맥과 아마존강은 이 대륙의 모든 생명이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대륙의 북쪽에서 시작한 안데스산맥은 서안을 따라 남쪽 끝까지 달린다. 남미의 백두대간인 셈이다. 길이 7000㎞, 너비 200~700㎞, 평균 고도 해발 4000m, 최고봉 아콩카구아산은 6961m다. 지구 위에 있는 어떤 산맥도 감히 비교할 수 없을만큼 장대하다.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로,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다.

안데스 고원에서 방원한 수많은 물줄기가 모여 아마존강을 이룬다. 브라질을 거치며 7000㎞를 흘러 대서양으로 이어진다. 지구에서 제일 긴 강이고 유량도 제일 많다. 그냥 많은 것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많다. 아마존강 다음으로 긴 여섯 개 강의 유량을 다 합친 것 보다 더 많다. 무려 705만㎢에 걸친 아마존강 유역의 열대우림은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강에 빚지지 않은 생명은 없다.

적도를 가로질러 남극 가까이까지 길게 뻗어 있는 남미 대륙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지형과 기후를 다 품고 있다. 열대부터 한대까지, 장대한 산맥과 끝없는 평원과 거대한 강, 만년설과 빙하와 호수, 사막과 우림, '불의 고리'가 만들어낸 화산대까지, 없는 게 없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숭고한 경관이 이어진다.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식생과 동물군이 분포해 있는, 생태계의 보고다.

이 대륙에 언제 어떻게 사람이 살게 되었는지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대략 2만3000년 전부터 1만5000년 전 사이 빙하기에 베링해의 바다가 낮아져 시베리아와 알레스카가 육지로 연결됐을 때 동아시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퍼져나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DNA분석 결과도 대체로 통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 오래전에 헤어져 기억조차 사라진 우리의 형제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물려받은 유전자가 훨씬 더 다양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로 넘어온 사람 중에 유럽인과 같은 조상을 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아마존 원주민 가운데 일부는 안다만제도와 뉴기니, 호주 원주민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 경로는 아직 상상의 영역에 남아 있다.

이들이 광활한 대륙 여기저기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서로 갈라지고 섞이며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다. 15세기 말 유럽에서 막을 연 대항해시대는 남미에 비극을 몰고 왔다. 유럽인이 옮겨온 전염병은 원주민을 절멸 상태로 몰아넣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강철무기에 쓰러지고 정복됐다. 다음 순서는 아프리카였다.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백인들은 흑인들을 납치해와 노예로 삼았다. 수백년에 걸쳐 인종이 뒤섞이고 새로운 인종들이 태어났다. 서양의 언어와 종교가 그 땅을 차지했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현지어가 350개가 넘고 안데스인들의 의식 깊은 곳에는 생명의 여신 파차마마가 있다.

식민지가 된 남미는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외세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완전히 포기하고 순종한 적도 없다. 남미는 "너무나 거대하고 다채로워서 하나의 틀에 도저히 집어넣을 수 없는 역사와 문학과 민족"을 갖게 됐다는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그것이 남미의 존재조건이자 역사다.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있는 본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이 대륙의 진정한 의미다.

남미의 자연과 남미의 문명과 남미의 역사, 유럽에 의한 식민의 기억과 그에 대한 저항에 대해 간명하게 소개한 조 변호사는 사막부터 빙하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풍광이 어우러진 남미의 자연과 잉카로 상징되는 남미의 빛나는 문명을 씨줄로, 군부쿠데타와 독재와 그에 대한 저항으로 얼룩진 남미가 행하는 과거사 정리 및 화해와 치유작업을 날줄로, 남미를 여행하고 기록을 남겼다. 책 날개의 저자 소개에 적힌 대로 "특히 민간인 학살과 고문, 간첩조작을 비롯한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을 변론해 '호모 사케르'(homo sacer)와 같은 처지에 있던 이들을 '인간의 법'이 적용되는 영역으로 불러냈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설치를 처음 제안하고 법의 기틀을 만들었으며 설립과정에도 참여"한 조 변호사이기에 여행과 기록에 인권과 국제인권규범과 과거사 정리와 치유 및 화해의 관점이 들어가는 건 당연해 보인다.

조 변호사는 콜롬비아 보고타부터 시작해 페루의 리마, 나스카, 아레키파와 콜카계곡, 쿠스코·마추픽추·무지개산과 볼리비아의 태양의 섬(코파카바나), 라파스, 우유니 소금사막을 거쳐 칠레의 산페드로데아타카마, 칼라마, 산티아고, 이스터섬(이슬라데파스쿠아), 산티아고, 푸에르토나탈레스, 토레스델파이네, 푸에르토나탈레스를 통과해 아르헨티나의 엘찰텐, 엘칼라파테, 우수아이아, 부에노스아이레스, 푸에르토이구아수를 찍고 브라질의 포스두이구아수, 상파울루를 경유해 귀국한다.

조 변호사는 콜롬비아의 황금박물관을 방문해 무이스카 연합이 이룬 찬란한 문화유산에 경탄하고 콜롬비아가 낳은 위대한 조각가이자 화가인 페르난도 보테로에게 매료된다. 한편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콜롬비아 내전의 원인과 경과, 평화협상의 전제 마련에 큰 기여를 한 헌법재판소의 역할, 평화 협상의 과정과 내용, 한 번 국민투표로 부결되었지만, 정부와 반군 사이에 새로 체결되어 실행 중인 신평화협정 등에 대해 설명한다. 전쟁은 쉽고 평화는 어려운 법이다.

조 변호사의 다음 행선지는 잉카의 나라 페루다. 조 변호사는 68년 이래 독재정권이 저지른 인권유린의 배경과 실상, 좌익 게릴라 활동과 진압과정, 진실규명 운동과 과정,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에 관한 다양한 자료와 보고서가 전시된 '기억·관용 및 사회적 포용의 장소'를 방문해 어느 나라 보다 치열한 민주화 투쟁을 했고, 수 많은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된 기념관 하나 만들지 못한 대한민국의 처지를 근심한다. 그 후 조 변호사는 사막에 그려진 나스카 라인, 콘도르의 성지 콜카계곡, 경이로움 그 자체인 마추픽추, 작물시험장 모라이와 수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살리네라스 염전, 지구온난화의 위험신호인 무지개산 등을 관광하고 경험한다. 페루편에서 조 변호사는 안데스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으로 알려진 파차마마를 소개한다.

파차마마(pachamama)는 흔히 '어머니 지구'라는 말로 번역되는데 세상의 창조자인 파차카막(pachacamac)의 아내로 태양의 신 인티와 달의 신 킬라를 낳고, 모든 것을 낳아 기르는 생명의 여신이다. 파차마마는 자연을 인간이 이용하고 수탈할 대상으로만 사고해 파국을 초래하는 서구의 세계관을 지양하는 안데스적 세계관일 수 았다는 것이 조 변호사의 생각이다. 조 변호사에 따르면 유엔총회와 세계민중회의가 지구 생태계 권리의 현실화를 주요한 화두로 정한 데 이어, 볼리비아와 에콰도르가 헌법과 법률을 통해 지구생태계를 권리주체로 인정하였고, 뉴질랜드가 마오리족의 신성한 강 황가누이(Whanganui)에 인간과 같은 권리를 인정하는 법을 제정했다 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자연과 인간이 상호존중하면서 공존의 길을 찾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도 없다는 집단적 깨달음이 늦었지만, 확실히 오고 있는 것일까?

조 변호사가 페루 다음에 찾은 곳은 볼리비아다. 조 변호사는 잉카의 성지 티티카카호와 태양의 섬을 본 후 거석문명의 원형 티와나쿠 유적을 방문하고, 마침내 그 유명한 우유니 소금사막을 2박3일 동안 여행하며 일출과 일몰을 맞이한다. 조 변호사가 찍은(조 변호사는 수준급의 사진가이기도 하다) 우유니 풍경을 보면 여기가 지구인가 싶을 지경이다. 한편 조 변호사는 과거사정리가 부진한 볼리비아의 상황을 염려하며, 4선 연임의 꿈을 접지 않고 있는 모랄레스 현 볼리비아 대통령이 미망에서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볼리비아를 통과한 조 변호사의 다음 여행지는 칠레다. 지구상에서 화성과 가장 가까운 토양을 가지고 있으며 마치 달의 계곡을 연상시키는 풍경으로 유명한 아타카마 사막과 거대 석상 모아이로 알려진 수수께끼의 섬 이스터와 파타고니아 트래킹 중 칠레에 있는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 등이 조 변호사의 여행 목록에 올라있다. 남미대륙에서 무려 2천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스터섬은 인간과 생태계의 공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며, 토레스텔파이네 국립공원의 산과 호수와 바람과 나무와 꽃은 자연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이 뭔지를 잘 보여준다.

아르헨티나는 조용환 변호사가 칠레 다음으로 선택한 여행지인데 사실상 남미 여행의 종착지다. 조 변호사는 이 지역 최고봉인 피츠로이를 눈 앞에 보며 트레스 호수와 수시아 호수를 함께 감상한 후 그란데 빙하를 보고 빙하의 땅 엘칼라파테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페리토모레노 빙하를 보며 인간으로 태어난 사실에 감사한다. 조 변호사는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에서 파타고니아 트래킹을 마친다. 그 후 조 변호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탐방한 후 모든 폭포의 왕 이구아수를 아르헨티나쪽과 브라질쪽에서 각각 구경하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안데스를 걷다>는 남미를 여행하려는 사람들과 남미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해 줄 책이다. <안데스를 걷다>는 인문 교양서로 읽어도 좋고, 여행 가이드북으로도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조용환 변호사는 책 말미에 남미여행을 위한 간단한 안내를 해 놓았다. 여행준비와 정보, 언어, 여행경비, 숙소, 교통, 현지 관광, 준비물, 안전 등이 친절하고 자세히 담겨 있다.

끝으로 <안데스를 걷다>를 읽으며 내 눈길을 사로잡았고 앞으로도 내 심장에 묻고 싶은, 더 나아가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진보 개혁 정부의 성공을 염원하는 시민들과 나누고 싶은 문장이 있어 소개한다. 역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등장했다 미국의 사주와 지원을 받은 군부 쿠데타에 무너진 아옌데 정권에서 보좌관을 하던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이 쿠데타 발발 20년이 지난 후 망명지의 방에 걸어놓은 두 개의 사진, 즉 1970년 11월 4일 대통령에 취임한 아옌데가 모네다궁 발코니에서 군중들에게 인사하는 사진과 1973년 9월 11일 쿠데타군의 폭격으로 구멍이 뚫린 채 검게 불탄 모네다궁 발코니 사진을 보며 던진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정치적 질문" 이 그것이다.

만약 그 과거가 그렇게도 찬란하고 유망하며 모두 참여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현재의 블랙홀이 되어버렸는가? 어떻게 저 발코니가 이 발코니로 변해버렸는가? 그 두 번째 사진, 사라지고 없는 두 번째 발코니는 우리의 실패를 따져 묻고 우리의 비전 없음을 따져 물으며 우리가 혁명을 시작한 날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어떻게 해서 닥쳐오는 재앙과 그 재앙에 이르는 길을 계속해서 닦아나간 우리의 실수에 그다지도 맹목적일 수 있었는지 깨달으라고 요구한다.

그것은 그냥 사라져버릴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 질문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별적으로, 그리고 아엔데를 지지한 칠레인 모두가 다 같이 대답하라고 요구했다. 우리를 삼켜버릴 듯 바라보는 그 블랙홀은 우리가 완고하게, 그리고 향수에 젖어 과거를 되풀이하거나 정당성을 주장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과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미래에 대해 책임이 있기 때문이고 또 우리가 그 책임, 그 참사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인식할 때까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정당하게 의견을 달리하는 많은 동료를 마치 배신자라도 되는 것처럼 공개적으로 가혹하게 비난하고 사적으로 무시하는 게 바로(전투적 동지들 가운데 가장 관용적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한다는) 내 방식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나는 우리가 충분히 민주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인 선을 넘어서까지 혁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걸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돈 파트리시오 같은 사람들은 의미 없는 존재인 것처럼, 그들의 반대의견은 소중한 것이 아니라 경멸해야 할 것처럼, 합의하는 게 무슨 범죄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을 역사의 장에서 쓸어내버렸다는 것을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다.

낙원에 대한 우리의 비전에서 배제됐다고 느낀 사람들에게는 우리를 그토록 들뜨게 했던 것이 위협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려웠고, 이해하는데 여러 해가 걸렸다. 우리는 그들을 무의미한 존재처럼 무시했고 미래에도 없을 존재처럼 여겼으며 우리의 순례행렬에 동참하거나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대안을 주지 않았다. 바로 그런 우리의 비전이 우리를 반대한 남자들과 여자들의 원초적 공포심을 부채질했다고 믿는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