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내내 몽롱한 상태에서 보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조금은 더 외롭고 가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너무 많은 말들과 갈등과 욕망들에 노출되어 있어서인지 뱃속이라도 비우고 싶었으리라.
며칠 잠을 설친 탓도 있어서였을까. 고작 세 끼 굶은 것인데도 저물 무렵이 되자 나른한 정신이 허공으로 붕 뜨는 기분이었다. 목디스크 증상으로 몇 달째 먹고 있는 ‘아편성 진통제’로도 느껴보지 못했던 몽롱함이 고단한 현실로부터 내 영혼을 떼어내 위무라도 해주는 듯, 과히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느 순간 밀려드는 졸음까지도 달콤. 까무룩하니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자정이 넘은 시간. 모두가 가고 난 사무실의 투명한 적막조차도 나쁘지 않았다. 언제쯤이나 나의 영혼은, 우리는 삶의 감미로움과 평온과 고요를 얻을 수 있을까.
괜한 상념을 접고,
9년 전 용산 참사 현장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야 했다. 날이 밝으면 추모시 한 편을 다시 출력해 가슴에 담고 마석 모란공원으로 가야 하는 날.
굳이 지금 와서 용산 철거민 참사의 내막과 의미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날 새벽 남일당 위 파란 망루 안에서 잠시 일렁이다 이내 거대한 불기둥으로 솟던 발화의 원인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서울시장 시절 서울 전역 서민 주거지 100여 곳을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 건설 지역으로 허가해 일부 자산가들과 투기 건설자본의 먹이를 만들어주고, 대통령 재임 시절 용산4가에서 철거민들의 첫 저항이 발생하자 발빠르게 대터러 진압부대를 투입해 신속하게 망루를 진압하게 했던 이명박을 역사의 법정에 꼭 세워야 한다는 말은 적지 않을 수 없다. 그 재빠른 진압의 노고를 인정받아 일본총영사로,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이제 다시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 행세하고 있는 전임 서울경찰청장 김석기에 대해 분명히 단죄해야 한다는 분노의 말을 남기지 않을 수는 없다.
잊을 수 없는 2009년 1월 20일 새벽.
‘그날’은 가난한 철거민 다섯 명과 무고한 일선 경찰관 한 명만이 짓밟히고 죽임을 당한 날이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거덜나있던 한국사회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수천만 민중들의 인권이 처참하게 불태워진 날이었다. ‘그날’은 용산4가 철거민과 연대하던 타 지역 철거민들만이 끌려 간 날이 아니라, 토건 부동산 투기 공화국의 무한한 영화를 위해 집 가지지 못한 모든 자들의 권리가, 가난한 모든 이들의 최소 생존권이 재갈 물려 끌려 간 날이었다. ‘그날’은 철거민 다섯 명의 시신만이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갇힌 날이 아니라, 우리 시대 모든 이들의 평화와 평등의 염원이 꽁꽁 얼려져 시대의 냉동고에 갇힌 날이었다.
‘그날’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2017년 촛불항쟁을 통해 몇 명의 권력자들과 자본가를 감옥으로 보내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키워 온 보수금권의 토대와 구조는 여전히 견고하다. 소수의 자본가들과 금수저 특권층들을 위한 온갖 혜택들은 여전히 넉넉한 대신, 흙수저 N포세대들의 절망은 끝나지 않고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들의 비참한 현실은 오늘도 명백한 진행형이다.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추모문화제 한번을 열기 위해 구속을 각오해야 했던 그 수많던 날들. 사과박스에 작은 스피커를 숨겨 들고 나가야 했던 청계광장에서의 매일 촛불. 녹아내린 파란 망루를 지키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던 남일당 앞 미사. 평화바람 유랑차를 끌고 용산으로 들어와 주셨던 문정현 신부님. 레아의 독립미디어센터, 끝나지 않는 미술전과 연극제. 두 달만에 긴급히 펴냈던 르뽀집 ‘여기 사람이 있다’와 문학인들의 연대 산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등등. 네 번의 점프 가투 끝에 잡혀 들어간 혜화경찰서 유치장. 철거민을 학살해두고 무슨 ‘서울 하이페스티벌’이냐고. 서울시청 광장 개막식 무대를 점거하고 올라가던 수많은 저항자들. 유가족들과 함께 울고 또 울고, 싸우고 또 싸우며 미친 듯 지내야 했던 2009년의 ‘그날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용산. 이명박이 비로소 역사의 법정에 서는 날. 김석기의 번지르한 양복깃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원 뱃지를 떼어내고 그 역시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날이면 ‘그날’ 우리 모두가 나눠 가져야 했던 뜨거운 불꽃상처 또한 조금은 식고 아물게 되는 걸까. 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가슴에 살아남아 있는 용산의 분노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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