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등록금 실현'에서 '등록금 부담 완화'로 방향을 돌린 한나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보수-진보 양측에서 난타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에 밀려 애초 공언했던 '반값 등록금' 포기 선언을 한 한나라당은 15일 국회에서 '희망캠퍼스를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열고 등록금 부담 완화 문제를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대교협 관계자, 언론인, 교수, 학생,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두루 참여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이날 토론회 결과를 바탕으로 6월 21일 당정협의를 하고, 6월 말까지는 등록금 완화 방안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황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이날 토론회가 진행된 2시간 동안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아 "이례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도 받았다.
"정부, 30년 후 미래를 지금 재무구조에 맞추려 하나"
가장 눈에 띤 것은 전남대 박은철 총학생회장과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이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박 회장은 "한나라당과 (대학생) 간담회 때 박자은 한대련 의장이 사과를 요구했을 때 한나라당은 '반값이라고 말한 부분은 사과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촛불집회가 '반값'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지키지 않아서 열린 것이 아니다. 등록금 자체에 대한 심각성 때문에 열렸다. 단어상 '반값은 발언하지 않았다'고 해서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민주당이 지난 10년 동안 집권하며 등록금이 올랐던 것도 질타하고 있다. 이는 한나라당을 포함해 선배들이 (대학생들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20년, 30년 후 교육의 문제를 (현재의) 재정 구조에 맞춰야 하는 게 옳으냐"면서 "과거 '아들딸 구별말고 하나만 낳자'고 했던 정책이 지금 실패로 판명된 것은 (사회가 가진) 자원에 인구 수를 맞췄기 때문이다. 지금 교육 문제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유럽은 한 국가의 어떤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장인이 되는 기술'을 알려주는데 어떻게 돈을 받고 가르쳐 주느냐는 개념이고 미국은 (대학교육을) 시장 경제에 맡겼다. 한국은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 (한나라당은) 그 철학을 말해야 한다. 2조냐, 5조냐, 7조냐 하는 (지원은) 다음 정권에서 바뀔 수도 있다. 언발의 오줌 누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성원 인하대 총학생회장은 "(한나라당은) 반값 등록금 실현과 관련해 대통령을 설득해야 하며, 정부 여당은 자기 반성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며 "반값 등록금은 두고 '세금 폭탄'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오히려 등록금 부담이 완화되면 가계의 실질 소득이 높아지고 내수 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경제 선순환 구조를 이를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순덕 "유럽 대학생, 나랏돈만 써…똑똑한 사람은 미국 가더라"
반값 등록금 반대 쪽 패널로 나온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토론회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이 좋은 반값 등록금을 대학 등록금에만 적용해야 하는지 갑자기 안타깝다. 고등학교 수업료도 반값, 기름값도 반값으로 해달라. 세금도 비싸다 반으로 내려줬으면 좋겠다"고 비꼰 후 "다 하자는대로 하다가 국민 소득도 반값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학생들의 의견을 비판했다.
김 위원은 이어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궁금한게 있다. 황 원내대표 집과 재산을 팔아 대학에 기부할 의향이 없나"라고 묻기도 했다. 황 원내대표는 웃기만 했고 답을 하지 않았다. 김 위원은 "국회의원들은 자기 주머니에서 돈은 안 내면서 여기서 빼서 저기에 주려고 한다. 제가 이 문제에 감정적, 정서적으로 접근 하는 것은 반값 등록금 논의가 정서적인 것을 건드려서 폭발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신문에서 아무리 설명하려 애를 써도 잘 먹히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저는 반값 등록금 주장이 순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내년 총선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이슈로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또 "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법과 질서, 국방에 지출되는 비율이 세계에서 4번째"라며 "(반값 등록금을 하려면) 여기(법, 질서, 국방 등 유지비)에서 줄이든가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논리를 댔다.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면 국방, 안보 등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김 위원은 마무리 발언으로 "유럽 대학 얘기가 나왔는데 제 딸이 네덜란드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다. 얼마전 프랑스 특파원을 다녀온 친구가 나에게 '(딸이) 유럽 대학생과 연애하거나 결혼하려고 하면 말리라'고 하더라. 유럽에서도 똑똑한 학생은 다 미국으로 가 있다는 것이다. 유럽 학생은 평생 대학 다니며 나랏돈 쓰는 사람이 많으니 (딸이 유럽 대학생과 교제한다고 하면) 웬만하면 하지 말라고 하라는 것이었다"고 자신의 사례를 든 후 "대학 경쟁력이 그 나라의 경쟁력이다. 다른 나라를 보면 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데, 왜 정치인들, 한나라당이 나서서 틀린 답으로 국민을 몰아가려고 하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록금 태스크포스 위원장인 이영선 한림대 총장은 "이 기회에 대학 신뢰성을 훼손하고 대학 경쟁력을 낮추는 방향으로 사회적 인식이 돌아가면 큰 사회적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반값 등록금 주장을 비판했다. 이 총장은 등록금 부담 완화 방안으로 '기부금 문화'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김황식 국무총리가 '기여 입학제(기부금 입학제)' 도입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참여연대 안진걸 사회경제팀장은 토론이 끝난 후 "통상의 토론회와 달리 한나라당 측의 발표문이 없어 각계 패널들의 이야기만 듣다 보니 한나라당 측의 안을 중심으로 조목조목 비평을 하고 효과적으로 토론을 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며 "너무 짧은 토론 시간과 한나라당 측 대책 안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나라당 측이 마련한 대책안을 바탕으로 한 2차 토론회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