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 아이들은 유령이 아닙니다. 한국에 사는 '미등록' 아동입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 아이들은 유령이 아닙니다. 한국에 사는 '미등록' 아동입니다"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 우리 안의 그들의 이야기] 3

사회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채 미래조차 꿈꿀 수 없는 아이들. 바로 이 땅을 살아가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부모의 체류자격으로 인해 출생과 성장과정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와 필요한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자아정체성 확립과 미래를 준비해야 할 청소년기에는 각종 공식 영역에 등록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참여와 소속감에서 소외, 배제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현행 국내법 체계 안에 미등록 이주아동이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경로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2012년 17세 몽골학생 강제추방 대책활동으로부터 시작된 이주인권단체, 공익법단체 활동가들의 모임인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향상을 위한 네트워크'에서는 2019년 5월부터 10월까지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아동이익 최우선’의 관점에 입각한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실태조사는 미등록 상태 혹은 체류가 불안정하여 체류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주아동, 청소년과 부모를 면접조사하여 체류상태가 이들 개인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해외 법제도를 통해 체류권 보장을 위한 제도, 정책적 대안을 제안하였다.

‘미등록이주아동·청소년- 우리 안의 그들의 이야기’는, 실태조사에서 이들이 연구자들에게 직접 들려준 경험과 생각의 일부라도 한국 사회에 직접 전달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이들 아동청소년들을 그저 이렇게 놓아만 두는 것이 능사는 아님을 인식하고 그 해법을 함께 찾자고 제안하기 위하여 정리, 집필한 것이다. 현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한 해법에 도움이 되고자 해외정책도 포함하였다.

무엇보다 미등록 이주아동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단지 보고서의 기록이 아닌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로 들려지고 느껴질 때 우리 모두 그 해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동청소년들의 현황과 실태, 10명의 아동청소년들이 한국사회에 보내는 육성, 외국의 정책 사례, 한국사회의 해법 등으로 나눠 총 14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프레시안>과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향상을 위한 네트워크'는 앞서 2편의 글을 통해 '미등록 청년' 린나, 그리고 알리와 리나 이야기를 전했다. 이번 편에서는 이주 아동의 '미등록' 실태와, 문제의 구조에 대해 짚어본다. 린나와 알리, 리나 이야기를 먼저 읽고 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바로가기] 꿈, 버릴 수도 가질 수도...한국서 태어난 '미등록' 청년 린나 이야기

[바로가기] 국문학을 좋아하는 저흰, 친구들이 한국인인 줄 아는 알리와 리나입니다

아동들은 어떻게 미등록이 되는가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비야는 여섯 살 나이에 어린 동생들과 함께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다. 비야의 가족은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해 난민 신청자 체류자격으로 외국인등록을 하고 한국에 체류하게 되었다. 5년여에 걸친 심사와 소송 끝에 비야 가족의 난민 신청은 최종적으로 불허되었고, 더 이상 체류기간도 연장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비야의 부모는 납치와 살해 협박에 시달리던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비야와 동생들은 부모와 함께 한국에 남게 되었다.

정민이는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비자 기한이 끝난 뒤에도 한국에 남아 일을 하고 있던 정민이의 부모는 미등록 체류자라는 이유로 베트남 대사관으로부터 정민이의 출생신고를 거부당했다. 부모의 체류기간이 만료된 데다 여권마저 없는 정민이는 당연히 관할 출입국·외국인 관서에서 외국인등록도 할 수 없었다. 정민이는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아무런 서류도 없이, 본국에 있는 누나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부모와 살게 되었다.

비야나 정민이 같은 아동을 우리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라고 부른다. 이주아동은 외국에서 태어나 부모나 보호자를 따라 한국으로 이주한 아동 또는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부모의 자녀로 국내에서 태어난 아동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이주아동은 부모와 같은 외국 국적을 갖고 있으며 부모의 동반자녀로 체류자격을 얻어 외국인등록을 하고 국내에 거주하게 된다. 그러나 부모가 외국인등록을 하지 않은 채 장기체류 하고 있는 경우, 외국인등록을 했더라도 체류기간이 만료된 후 계속해서 한국에 살고 있는 경우, 외국인등록도 하고 체류기간도 남았지만 자녀동반이 가능한 체류자격이 아닌 경우, 이주아동은 외국인등록을 하지 못하고 미등록 체류자가 된다. 정민이처럼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해 무국적자로 사는 미등록 이주아동들도 적지 않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19세 이하 외국인은 193,217명이며, 이 가운데 미등록으로 체류하는 사람은 7,985명이다. 그런데 이 수치에는 국내에서 태어나 출입국 기록이 없으면서 외국인등록도 한 적이 없어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정민이 같은 아동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최근 실태조사에서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숫자를 최대 13,000여 명으로 추산한 바 있으나, 외국적 아동의 출생을 등록하는 제도가 없는 현실에서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동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아동

아동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에 법과 제도를 통해 특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내의 법률에 따라 아동에게 적용되는 보호, 지원, 복지와 관련된 제도는 한국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이주아동을 그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영유아에게 지원되는 보육료와 아동수당, 보호자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아동에게 제공되는 사회보장 등은 한국 국적이 있는 아동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제도이다. 이주아동 중에서도 특히 미등록 이주아동은 아동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질병의 치료와 건강의 회복을 위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는 아동의 생존과 발달을 위해 필수적인 권리이지만, 의료비 부담을 줄여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건강보험제도는 한국 국적 아동이나 체류자격이 있는 이주아동에게만 적용될 뿐 미등록 이주아동을 배제하고 있다.

그나마 유일하게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허용된 기본권은 교육권이다. 한국 정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편입학을 허용했고, 학교장 재량에 따른 고등학교 편입학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외국인등록번호가 없다는 이유로 교육비 지원이나 장학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되고, 각종 경시대회 참가나 운동선수 등록에 제한을 받는 것은 물론, 학교안전공제회의 보상대상이 되지 못해 현장학습이나 수학여행에서 배제되는 등 온전한 학교생활을 누리는 데 한계를 겪어왔다. 무엇보다 학교에 다니는 중에도 본인이나 부모가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날 수 있다는 공포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교육권 보장에 큰 걸림돌이었다.

이에 법무부는 2010년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지원방안’ 지침을 마련해 초·중학교에 재학 중인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해 단속을 자제하고, 미등록 체류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학생 및 학부모에 대해 중학교 졸업 시까지 강제퇴거를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13년에는 해당 지침의 적용대상을 고등학교 재학생과 학부모에게까지 확대했다. 교육권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나온 이 지침은 하지만 역설적으로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을 훼손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한국에 머물 수 있게 함으로써 교육을 마친 미등록 이주아동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미래를 꿈꾸며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성인이 된 미등록 이주아동들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는 지난 해 국내에서 미등록으로 체류하며 아동기를 보낸 25명의 이주배경 청소년·청년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 절반 가까이 되는 12명은 이미 만 19세가 지난 성인이었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친구들은 되는데 자신은 안 되는 숱한 경험들을 하면서 체류자격이 없다는 것의 의미를 서서히 깨닫게 된 이들은 성인이 되자 더 큰 장벽에 부딪치고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려고 해도 직장을 구하려고 해도 체류자격이 없다는 사실에 발목을 붙잡혔고, 남들 다 따는 자격증과 운전면허는 고사하고 본인 명의로는 휴대전화 개통도 은행계좌 개설도 할 수 없어 평범한 사회생활이 불가능했다. 거기에 언제라도 쫓겨날 수 있다는 현실은 이들의 삶을 옥죄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냥 본국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성장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교육받은 이들에게 한국을 떠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본국은 그저 부모의 국적국일 뿐, 자신에게는 언어도 문화도 다른 타국일 뿐이다. 미등록으로 체류하며 본국을 오갈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탓에 모든 사회적 관계는 한국에만 있다. 이들에게 본국은 여행이라면 모를까 가서 살기는 힘든 나라이다. 왜 이들이 한국에서 계속해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일까.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으로 이주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모의 체류자격 미비로 외국인등록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교육은 받을 수 있다고 해서 학교에 다녔고 졸업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은 이들의 미래를 박탈하고 있다. 2012년 고등학교 재학 중 단속되어 10년 넘게 살던 한국을 떠나 낯선 본국으로 쫓겨 갔던 미등록 청소년은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계속 살 거라고 생각했지만 언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뭐가 되고 싶다’는 꿈도 딱히 없었어요.”라고 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청소년들도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이 지금껏 이들을 외면해왔던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일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