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대유행을 시작한 지도 벌써 10개월여‘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남녀노소,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세계 최강 방역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지만, 예외는 아니다. 다행히 기쁜 소식도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등급 전망을‘안정적(stable)’으로 유지했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BTS(방탄소년단)의 활약도 눈부시다. 코로나 방역 모범국가에 이어 또 한번 세계의 눈길이 한국으로 쏠리고 있다. 영국 토트넘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의 소식도 즐겁다. 한 경기에서 4골을 몰아넣는‘포트트릭’을 기록 한 데 이어 세계 최강‘맨유’를 6-1로 격침시키는 선봉장이 되면서 ‘손샤인’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처럼 즐겁고 기쁜 소식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제로 눈을 돌려보면 ‘코로나 블루’는 여전하다. 중소기업 대기업을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이 때문에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버티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뜻의 ‘존버’라는 말이 유행이다.‘꼰대’시절의 언어로 풀이하자면 젖은 낙엽처럼 버텨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산이다. 한 개인이나 중소규모의 가게라면 버티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혹독했던 IMF 시절을 돌아보라. 당시에도 ‘살아남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IMF 시기 이후 급성장한 기업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던 곳들이다. 말 그대로 버티기만 했던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알짜 기업을 하나씩 매각했고, IMF가 끝난 뒤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재정적 출혈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기업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2020년은 격변의 시기이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 궤도에 오르면서 각 기업의 적극적이고 발빠른 대처가 무엇보다 중요해졌고,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상황의 장기화에 맞춘 새로운 전략도 필요하다. 20세기의 마지막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제 ‘존버’나 ‘젖은 낙엽’ 전략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전 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힌 채 ‘안정’을 주장하는 기업이나 경영자가 적지 않다. 포스코도 그중 하나다.
20세기 대한민국 혁신과 성장을 앞장서서 이끌었던 젊은 피는 사라지고 어느새 뒷방 늙은이처럼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덕분에 포스코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다시금 포스코의 최고경영자 선출 시기가 다가오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 좋은 일이다. 논의가 많을수록, 평가의 기회가 많을수록 더 새롭고 훌륭한 CEO를 맞이할 가능성도 크다. 그런 와중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많이 들려온다. 현 회장에게 대과(大過)가 없으니 연임을 하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일면 맞는 이야기다. 국가든 기업이든 평화 시기에는 큰 문제없이 안정적으로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큰 덕목이다.
흔히 태평성대라고 부르는 요순시대를 보라. 그들은 새로운 일을 벌여서 공연히 백성을 번거롭게 하는 대신 ‘무위의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 체질을 전면적으로 쇄신할 수 있을 정도의 과감하고 혁신적인 리더십이다. 현대 기업에 있어서 정체는 곧 퇴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대과(大過)’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대과(大果)’를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로 리더십을 평가해야 한다.
최정우 회장에 대한 포스코 내외의 평가는 대체로 일치한다. ‘대과(大過)’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대과(大果)’도 없다, 대과를 이룰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평가 역시 일치한다. 경영성과도 미미하다. 심지어 매출은 정체되었고 이익은 감소했다. 주가도 덩달아 폭락했다. 물론 해외의 경쟁 철강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이 면책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경쟁사가 정체되어 있을 때 치고 나가지 못하면 덩달아 퇴보하다가 미국의 US스틸이나 일본의 신일본제철처럼 형편없이 쪼그라들 수도 있다. 이미 포스코는 기존 회장이 연임될 때마다 큰 상처를 입고 위상이 추락하는 트라우마를 수차례 겪었다. 이른바 ‘포스코 회장 연임 잔혹사’다. 이제 악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큰 과오는 없으니 연임을 하는게 좋겠다’라는 평가도 있지만 ‘큰 성과가 없다면 곧 퇴임을 해야 한다’는 냉정한 판단도 필요한 시점이다.
“변화가 우리를 압도하게 놔둔다든지 혹은 변화가 우리를 그냥 지나쳐 버리게 놔둔다면, 우리는 변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변화에 순응하고, 지금 당장 다가올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며, 변화를 포용한다면, 예기치 못했던 아이디어도 긍정적이며 고무적인 생각이 될 수 있다.”(<생각의 속도> 중에서) 20년 전 빌 게이츠의 예언이다.
오늘날 변화는 생각의 속도를 넘어 초광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기업은 정체되고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서 있지 말고 달려야 한다. 대과(大過)가 있느냐 없느냐는 21세기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 한때 포스코는 세계 철강산업의 기린아였고, 대한민국 산업을 이끄는 혁신과 성장의 아이콘이었다. ‘정체’와 ‘퇴보’는 포스코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2020년 10월,누군가 성장과 혁신 대신 안정과 현실 안주를 포스코에 주문하고 있다면 그것은 포스코의 마지막 숨통마저 조일 수 있는 위험한 주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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