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비교상영회라는 매우 '이상한' 상영회가 진행됐다. 홍형숙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본명선언>(1998)이 재일교포 출신 양영희 감독이 만든 일본 NHK 다큐멘터리 <흔들리는 마음>(1996)을 무단 도용했다는 논란이 벌어진 지 22년 만의 일이었다.
1998년 당시 양영희 감독은 <흔들리는 마음> 내용 중 7분 50초, 원본영상 1분 50초를 홍형숙 감독이 <본명선언>에 무단으로 도용했다며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부산국제영화제는 '도용도 표절도 아니다'라며 홍 감독 손을 들어주었다. <본명선언>은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인 '운파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논란'을 양영희 감독이 최근 <씨네21> 기고문을 통해 다시금 공론화시켰다. 홍형숙 감독이 <경계도시 2> 제작 당시 스태프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고, 이를 유용했다는 보도를 본 직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를 계기로 <본명선언> 무단 도용 논란이 공론화되었고, <분명선언>과 <흔들리는 마음> 두 영화의 비교상영회까지 진행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양영희 감독이 논란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겪은 감정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본명선언> 사건에 대하여
2020년 1월, 씨네21에 제 기고문이 실리고, 저의 <흔들리는 마음>(1996)과 홍형숙 감독의 <본명선언>(1998)의 첫 비교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4월, 부산국제영화제 측에 <본명선언>의 운파상 수상 철회요청서를 제출하여, 특별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재심의가 열렸습니다.
그사이 현 서울영상집단의 공미연 감독과 한국독립영화협의회 낭희섭 대표가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해외의 영화연구자로부터 <본명선언>에 관한 자료가 도착하는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지워졌던 22년 전과는 사뭇 다른 전개 속에서, 저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입장문 (2020.7.25)을 읽고
22년 만에 재심의를 마친 부산영화제의 입장문을 읽으면서, 실망을 넘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무슨 재미없는 농담인지요. 가해자에게 사과하자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영화에 대한 재심의를 위해서라면 영화만 봤어야 합니다.
1998년 당시 부산영화제 및 운파상 심사위원회의 대처는 형편없는 것이었습니다. 22년이 흐른 뒤, 부산영화제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지성도, 위기관리 능력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과오를 인정하고 새로 출발할 기회를 포기하며, 영화제가 지켜야 할 소중한 무언가를 버린 셈입니다.
만일 1998년에 부산영화제와 영화인들이 바른 판단을 했다면, 그 후의 22년은 한국의 저작권 수준이 달라지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는 어땠나요? 그 시간을 반추하는 일은 여러분 각자의 몫일 것 같습니다.
첫 감독 작품인 <디어 평양>(2005)을 완성하기까지 10년, 한국을 대표하는 부산영화제에 출품하는 것을 목표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로도 제 모든 작품이 초대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왔습니다. 조국도 모국도 확실하지 않은 중간자에게 부산영화제란, 소중한 '안식처'였습니다. 그런 영화제를 비판하게 되어 가슴 아픕니다. 그렇지만 정직하게 문제를 말하는 것이, 제가 부산영화제에 대해 가지는 최고의 성의이자 애정이라 믿습니다.
부산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 아무 언급이 없다는 것은, 양영희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룰 만한 감독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니, 더욱 분발하라는 영화제 측의 쓰디쓴 격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입장문을 읽고
부산영화제 입장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습니다만, 제 영상을 <본명선언>에 사용하겠다는 어떠한 논의도 협의도 없었습니다. 교묘한 문장으로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술단체들은 소속 작가의 도용이나 표절이 밝혀질 경우, 그 사람을 제명합니다.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처치입니다. 그러나 한독협은 '동료'와 미디어를 총동원해 문제를 덮고자 했습니다. 한독협은 1998년 9월에 결성되었죠. 이 조직이 추진한 첫 번째 사업은, 도용 사건에 대한 조직적 은폐였을까요?
한독협은 <본명선언>에 도용과 표절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중앙>에 대해서도, 독립영화에 대한 탄압이라며 문제의 쟁점을 비틀어서 반격했습니다. <중앙>에도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저작권에 '진영'은 관계없습니다.
선배의 어리석음을 뒷갈망해야 할 한독협 중앙운영위원회는 조직의 자정을 위해서 문제를 직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용기를 보여주십시오.
1998년~2020년
당시 <본명선언>을 보고 NHK 담당자에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의혹을 보도한 신문과 피해당사자가 비난을 받는 상태라고 털어놓았더니,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홍형숙 감독을 믿었던 제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담당자에게 사과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의 엔딩롤에는 "제작 NHK 오사카"가 나옵니다. 양영희와 합의했다는 말만 반복하는 홍 감독에게 "NHK 측 허가는요?" 이 질문만 던져도 저작권 침해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겠죠. 두 작품의 감상 시간을 포함해 3시간이면 충분할 일을 결론 내리기까지 장장 22년이 걸렸습니다.
2020년에 들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998년 당시, 조직적인 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와 한국독립영화협회 핵심 인사들이 독립영화계에 함구령을 내리면서 <본명선언>에 관해 일절 언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서명까지 강요했다고 들었는데, 어디까지 사실인지 대답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관련인 대부분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라고 자칭하는 영화인들입니다.
1998년 당시 홍형숙 감독이 제게 던진 말의 의미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강심장인지요. 뉴욕에서 함께 팩스를 함께 읽은 친구도, 그 담대함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왜 테이프를 건네줬는가
홍형숙 감독은 재일코리언에 대한 작품을 만들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 자료조사로 <흔들리는 마음>의 무대가 된 아마가사키 고등학교의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해서 제가 소개해주었습니다. 앞으로 며칠은 통역해드릴 수 있노라 밝힌 저에게, 홍 감독은 앞으로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저를 보면서 홍형숙 감독은 환하게 웃었습니다. 저도 보도 프로그램을 위해 태국이나 방글라데시에 몇 개월씩 머무르며 통역을 대동해 취재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어를 하지 못하고 일본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홍형숙 감독이 재일교포에 관한 장편 다큐멘터리를 찍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리라 짐작했습니다. 당시 홍감독은 재일교포 문제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 제 인상이었습니다. 이분은 일본으로 이사를 와서 작품을 찍으려나.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다큐멘터리 선배 감독들은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홍형숙 감독은 참고용으로 <흔들리는 마음>의 취재 테이프를 보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여러 번 거절했으나 계속 연락이 왔고, 뉴욕행을 앞두고 있던 저는, 마지막 도움이라 생각해서 '감상용'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프로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실례라고 말문을 열면서, 홍 감독님을 믿고 소중한 소재 테이프를 보내니 유의해달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일본에서 방송까지 된 <흔들리는 마음>에 '손을 댈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40개의 테이프 안에서 단 1초라도 거리 풍경이라도 사용할 시에는 미리 임시 편집본을 저에게 보여주고 합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홍형숙 감독은 "당근이지!"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연하다는 뜻으로 "당근"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지요. 새로운 한국어를 배운 순간이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홍형숙 감독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재일코리언에 대한 이해가 한국에 조금이라도 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베푼 호의였습니다.
저를 속여서 해외 지상파 방송을 도용하는 그 대담함은 실로 두렵습니다. "기획 구상안에 따라 '필요한 그림'을 구하려고 몇 주 동안 촬영했지만 임팩트가 부족했다. 그래서 저작권과 초상권을 무시하고 NHK 방송 영상을 도용해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이것이 <본명선언>의 정체입니다. 2주간 촬영에 동행한 통역도 그 촬영 방식에 기가 막혔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의 주인공에 대한 초상권 침해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국 이름과 일본 이름 사이에서 아이덴티티를 고민하는 재일교포 고교생을 다룬 작품입니다. 홍형숙 감독은 다큐멘터리리스트의 진정성 없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미성년자들을 감동 포르노의 재료로 소모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그 죄책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두 이름 사이에서 고민하며 살아가는 게 어떤 일인지, 교포인 제가 가장 잘 아니까요.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홍형숙 감독의 진의는 저로서 알 수 없습니다. 저작권에 대한 무지 탓인가, 거짓말 일상이기 때문인가. 그러나 증인은 있습니다. <본명선언>을 편집했던 서울영상집단의 공미연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1999년 2월, 다른 일로 뉴욕에 왔다는 현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이사장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 이후 각국 영화제에서 마주친 강석필 씨(<본명선언>기획자)에게도 문제는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언제 두 분이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화해하시죠" 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2003년 YIDFF 심사원으로 일본에 온 김동원 감독 (98년 당시 한독협 회장) 은 파티에서 제 이름을 듣고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 것 같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제가 "98년 <본명선언> 문제로 한국 언론에 이름이 나와서 거기서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지만요"라고 말하자 머쓱한 표정으로 잘은 모르겠지만 기사는 읽은 것도 같다며 말끝을 흐리더군요.
그 복잡미묘한 표정이 아직 기억납니다. 저는 <송환>의 일본어 자막 작업을 도왔으며,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 탬버린도 흔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본명선언> 사건에 함구령을 내린 핵심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너무 늦게, 올해가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할 일
홍형숙 감독은 마땅히 운파상(현 메세나상)을 반납해야 합니다. 다른 수상자들에게 너무나 큰 모욕 아닌가 합니다. 미국 아카데미 회원 자격도 같이 반납한다면 일말의 상식과 양심의 파편 정도는 세상에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울러 부산국제영화제 또한 표절작에 대한 수상을 취소해야 할 것입니다.
<본명선언> 사건을 둘러싼 현상을 주시하고 있는 것은 비단 한국 영화인만이 아닙니다. 부산영화제와 한국독립영화협회의 '특별한' 관계는 미국에서 출판된 서적에도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본명선언> 표절 문제도 이미 해외 대학원에서 논문으로 발표되었습니다. 향후도 여러 나라에서 Film Study, Cultural Study, Social Study의 소재가 될 것입니다. 국내 대학에서도 적극적으로 다루기를 바랍니다. 오랜 고질병으로 아직 진영병을 앓고 계신 교수님들이 계신다면, 부디 젊은이들의 연구와 창작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침묵도 기록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모든 것이 만나서 역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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