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본론과 본질은 뒤편에 숨겨두고 표면적으론 자잘한 걸로 박 터지게 싸우던 게 조상들의 싸움 방식이다. 왕권을 견제하는 신하들의 경쟁도 그랬고 양반 사대부 선비의 사색당파도 문제의 핵심이나 본론을 먼저 꺼내 토론이나 경쟁을 안하고 다른 자잘한 곁가지로 트집 잡는 것부터 시작한다.
검을 쥐고도 검으로 싸우지 않고 말로 싸우고 검은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기론의 정수다. 리로 승부를 봐야지 힘을 먼저 쓰는 쪽이 지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비루한 것으로부터 상대를 해체 시키는 것이다. 이런 이유는 따로 있다.
리(理)의 승부에서는 문제의 핵심보다 사사건건 사사로운 것 트집 잡기가 먼저다. 핵심을 말하기 전 핵심을 수긍하고 반론을 제압하기 위해 우선 상대의 심리적 주변을 제압하는 방식이다. 이것에서 최고 호재는 상대나 상대의 주변인들을 도덕과 윤리로 공격하는 것이다.
매스컴이 없던 시대 궁궐 안에서 자기들끼리 권력 다툼 할 때 통한 방식이다. 입소문의 힘은 다수나 신망이 높은 쪽에서 선제 여론을 장악하기에 이롭다는 걸 잘 알고 한 일이다. 현대 언론들이 가짜뉴스도 신경 안쓰고 막가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가. 지금은 언론이 활성화 돼 문제 핵심이 드러나기는 한다. 그럼에도 절대 본론이나 정수로 싸우지 않고 곁가지나 도덕과 윤리 또는 그 밖의 소소한 걸로 싸우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한반도 지배계급의 유구한 통치와 지배 기술이고 방식이며 정치고 토론 문화다.
리로 살아가는 양반과 사대부의 삶과 정치 방식의 핵심 ‘기싸움’이다. 지방토호들도 이런 방식으로 싸운다. 이것의 효과는 강력하다. 양반과 사대부들의 비리 노출을 막으며 왕으로부터 신하들과 가문이 대결하고 아래로부터는 민중(인민, 시민)봉기나 혁명으로 지배 양반이 공멸하지 않을 수 있다(조선에서 노비와 하층민이 많아진 이유기도하다). 최악의 경우 세력 간 권력 교체 정도로 양반 전체 권력을 지키는 유효하고 영악한 싸움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대 양당체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비슷하다
최종적인 리를 쟁취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기싸움’이라고 말하는 것의 실체다. 서양식의 스파링이나 몸 풀기가 아니다. 이 ‘기싸움’이 본 전투다, 이긴 자는 비루한 주제로 싸웠지만 리의 승리자로 추대되고 선망의 대상이 된다. 승리자가 쟁취한 것은 드러난 비루한 것을 쟁취한 게 아니라 숨겨둔 권력과 이득을 지킨 리를 쟁취한 걸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양반 사대부 선비나 왕들만이 아니다. 지금은 신분이 타파되어 양반으로 상승한 모든 족보를 가진 대중들이 같은 방식으로 기싸움을 한다. 이기론의 저렴한 부분이다.
말하고자 하는 본론은 이것이다. 지배층들끼리 기싸움과 대중들 간의 기싸움은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왔다. 정치문화와 협상기술에 대중들 간에도 협상과 타협보다 증오와 끈질긴 대립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상대가 권력을 쥐거나 평화적인 방식인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역대 모든 왕권(할아버지나 아비와 아들 간)도 공화이후 정권들, 보수끼리도 진보끼리도 호환도 안되고 연속성도 없게 된다. 대중끼리는 말해 무엇할까. 동네(지자체)에서 일어나는 대립의 내면을 잘 분석해보라. 지방에서 외지인과 외부인에 대한 극도의 경계나 배타도 같은 논리의 연장이다.
본질과 핵심을 피하는 ‘기싸움’은 상대 약점을 공격하기 위해 끝까지 파기, 나올 때까지 뒤지기, 하물며 무고, 허위, 조작(오히려 쉽기까지 하다)도 가능하다 오래가는 싸움이 된다. 이 과정은 본질과 상관없는 개인감정이나 가족과 사적 영역들을 후벼 파게 되니 다른 갈등의 뿌리가 되며 본질의 승부에 승복하지 않는 원인이다. 공격당하는 입장에서도 당연히 문제의 본질이 아님을 안다. 협상과 타협의 기술이나 협상과 타협보다 차라리 장렬한 전사를 선택한다. 같은 방식으로 공격해 제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협상과 타협이나 그런 기술이 시전 될 수 없는 이유는 이런 역사적인 의식 구조 안에 갇혀 살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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