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산하 180여 개 공공기관 노조 대표자들이 지난달 24일 '공공기관 대전환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공공기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로부터 독립하고 시민과 노동자의 참여가 보장되는 공공기관 운영의 대전환이 필요"하며 차기 정부가 이를 국정과제로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정건전성만을 강조하는 기재부 입김 하에서는 공공기관이 사회공공성 강화와 공공서비스 제공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와 관련해 공공운수노조가 보내온 두 편의 기고를 싣는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교섭구조는 실질적 단체교섭권이 제한된 매우 기형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노사관계법 상 사용자는 각 공공기관의 기관장이나, 이들은 교섭 석상에서 한결같이 말한다. "정부 지침 범위 내에서 교섭할 수밖에 없다. 그 이상은 노조가 정부에 직접 요구하라." 물론, 공공기관 노조가 정부(특히, 기획재정부)에 교섭을 요구하면 정부는 당연히 교섭을 거부한다. 이러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정부가 공공기관의 경영방침을 설정하는 실질 사용자이나, 정부에 공공기관의 사용자 책임을 부여하는 제도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공공부문 실질 사용자와의 교섭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ILO협약 제151호가 이미 오래 전에 발표(1978년)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 협약에 대해 비준 논의조차 진행치 않는다. 일부 공공기관 노조가 정부의 사용자성 인정 여부 및 정부 지침의 단체교섭권 제한 여부에 대해 각각 법원 및 헌법재판소에서 소송·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으나, 모두 배척당했다.
정부의 공공기관 교섭과 관련한 제한 조치는 이미 1990년 임금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1999년 이후 임금가이드라인은 사라졌으나 공공기관 예산편성·집행지침이 제도화되어 교섭 내용을 제한하고 있다. 정부의 예산지침은 공공기관 종사자의 임금 억제, 성과 경쟁 확대, 고용 억제 등을 획일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 예산지침을 발표하고, 지침 이행 여부에 대해 경영평가 및 감사원 감사를 통해 세밀하게 점검하는 제도적 조치를 유지하고 있으니, 공공기관 교섭구조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정부의 일방적인 공공기관 임금 정책은 실패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이러한 지침이 전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긍정적으로 적용했는가? 30여 년간 정부가 강력한 임금 통제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의 임금 격차 문제는 심각하다. 중앙 공기업과 지방 공기업의 평균임금은 연간 1500여만 원의 격차를 보인다. 준정부기관 중에는 동일 근속년수에서 임금 수준이 2배 이상 격차를 보이는 곳도 있다. 공공기관의 무기계약직 및 자회사의 초임 및 근속에 따른 임금 차별 역시 심각해서 정규직 전환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 정부가 획일적으로 설정한 임금피크제는 공공기관 간 임금 수준 격차로 인해 저임금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의 임금이 더 높은 비율로 삭감되는 형평의 문제를 낳고 있고, 공정 임금 취지 하에 시행되고 있는 직무 중심 임금체계는 제도적 허점이 너무 많아 과거 성과연봉제의 폐해를 재현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독일 등 직무급 임금체계의 사례를 원용하면서 중앙 노정교섭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했던 선진 각국의 경험을 외면한 채, 정부의 일방적 지침 및 경영평가라는 기제만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획일적 지침 등으로 공공기관 임금 등을 규제해온 정부 정책은 전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공공기관 노조와의 교섭을 배제한 정부의 공공기관 임금정책은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공공기관의 정책 흐름이 공공기관에 머물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대기업 등 민간에서 간접고용 확산 및 하청계열사에 대한 수직적 관리 체계 하에서도 실질 사용자 책임 및 초기업 단위 교섭구조가 철저히 거부되고 있는 현실 역시 이러한 공공기관의 후진적 교섭구조·노사관계 모델이 초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공공기관 노동조건 논의 위한 노정교섭 제도화 방안 찾아야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 체제가 가동되고 있으나, 실질 사용자인 정부와의 교섭이 여전히 제한되고 교섭구조가 공공기관별로 파편화된 조건에서 그 효용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ILO협약 제151호 취지에 맞게 공공기관의 실질적 사용자가 참여하는 교섭구조를 제도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지침으로 공공기관의 일상적 경영을 감독하고 있다면 그 지침의 핵심 내용인 고용·임금·복지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공공기관 노조 대표와의 집중화된 교섭구조가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공공기관의 심각한 임금 격차, 무기계약직·자회사 차별 문제 등을 넘어 임금체계 개편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정부가 실질적 감독을 행사하는 공공기관에 대해 노정간 교섭구조의 제도화를 통한 새로운 노정관계의 틀을 형성시켜야 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0대 대선정책 요구로 공공기관 임금 및 노동조건에 대한 상설화된 노정 교섭 및 협의기구로 ‘(가칭)공공기관노정위원회’를 총리실(또는 독립성을 확보한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설치•운영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해 정부 부처별 정책협의를 정례화하고, 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에너지-교통부문 노정교섭을 즉각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대기업 등 민간 부문에서 사용자 책임을 확대하고, 교섭구조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모범적 사용자(model employer)' 모델의 역사적 어원(영국 휘트니보고서, 1917)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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