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엄마가 있다. 한 엄마는 8년 전, 다른 한 엄마는 5년 전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자식을 매일같이 기다리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두 엄마는 수년째 광장에서 소리친다. 왜 내 아이가 그렇게 죽었어야만 하는지, 정말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서로의 아픔은 서로만이 알 테다. 사람들은 '먼저 간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두 엄마에겐 그 말조차 잔인하다.
수년 전, 두 엄마는 함께 촛불을 들었다. 새 시대가, 손을 잡아준 새 대통령이 억울함을 풀어주리라 굳게 믿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를 두 달도 안 남긴 지금, 두 엄마는 아직 그때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5주기인 31일, 두 엄마는 청와대 앞에서 또 섰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이등항해사였던 허재용 씨의 어머니 이용문 씨. 그 옆에 선 세월호 참사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 씨. <프레시안>이 두 엄마의 호소를 그대로 전한다. 이 글은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가 <프레시안>에 보내온 것이다. 편집자.
아랫글은 스텔라데이지호의 이등항해사였던 고 허재용 씨의 어머니 이영문 님이 스텔라데이지호 5주기 청와대 분수대 앞 기자회견에서 낭독한 글이다.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침몰된 스텔라데이지호의 이등항해사였던 허재용의 엄마 이영문입니다.
대통령님과의 첫 만남을 저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2017년 4월 17일 용산역에서 저를 비롯한 실종자 8명의 가족이 대통령님을 붙들고 오열을 했었지요. 저도 대통령님 붙들고 대성통곡하며 아들을 찾아달라고 애원했었구요.
그 후로 한국노총 앞에서도, 민주당사 앞에서도, 만나 뵐 때마다 우리 아들 좀 구해 달라고 정신줄을 부여잡고 버티던 제게, 대통령님께서는 제 손을 잡고 '당선되면 조속히 해결해 주겠노라'고 약속하고 다짐하셨었지요.
그 약속 하나만 철석같이 믿으며, 저는 그 경황 없던 와중에도 다른 실종자 가족들 모두를 설득해 함께 사전투표를 마쳤습니다.
2017년 5월 9일 선거 날 밤, 세종로 공원 무대 위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우리 가족들은 만세를 부르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대통령님 취임식이 있던 날, 저희 가족들이 바라는 바를 편지로 써서 대통령님께 드렸더니,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이 '문재인 대통령 민원 1호'가 되었다고 언론에 나왔습니다.
이렇게 대통령님 임기 첫 시작과 동시에 생겨난 민원 1호인데, 어찌하여 5년 임기가 다 끝나도록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까?
"사람이 먼저다"라고 수많은 공약을 하셨는데, 왜 스텔라데이지호로 실종된 사람들은 여전히 뒷전입니까?
자식을 바닷속에 두고 벌써 5년입니다. 5년 동안 모진 목숨 버티며 숨 쉬고 있다고 해도 어미로서 살아도 사는 것처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대비가 쏟아져도, 회오리바람, 눈보라가 몰아쳐도, 무쇠도 녹일 만큼 뜨거운 삼복 불볕더위에도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을 해달라는 피켓을 들고 5년 동안 청와대 분수대 앞을 지켜왔습니다.
1인 시위자로 고참이 되어버린 저를 202경비대원들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분수대 건너편 높은 담을 쳐다보면서, 이 늙은 어미가 얼마나 가슴 치며 애간장을 태웠을지 상상해 보셨을까요?
늙고 힘없는 어미라,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피켓을 들고 선 채, 비통한 속내를 어쩌지 못해 절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대통령님, 5년 동안 자식 잃은 슬픔에 가슴 찢어지는 제 울부짖음을 정녕 못 들으셨나요? 제아무리 높은 담장이라 한들 안 들렸을 리 없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실종자 가족이 아닌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하겠습니까?
제대로 된 2차 심해수색을 해달라는 것은 죽은 자식 살려달라고 억지 쓰는 것이 아닙니다. 뼈 한 조각이나마 찾아야 장례라도 치러주고, 사망신고도 해야만 실종자 가족이 아닌 유가족으로 뒷마무리를 할 것 아닙니까! 어미보다 먼저 간 야속한 아들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는 갖추어 보내줘야 제가 눈이라도 감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국 각지에서 일면식도 없는 시민분들이 제 소식을 듣고 함께 마음을 보태주러 나오십니다. 칠십이 훨씬 넘은 노모가 아들 찾겠다고 청와대 앞을 지키고 있다는 입소문을 듣고 날마다 많은 분이 응원을 보내옵니다. 한편으로는 ‘문재인 대통령 민원 1호’가 어떻게 임기가 끝나도록 시간만 끌고 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늙고 힘없는 이 어미는 비참함을 못 이겨 수없이 눈물 쏟으면서 심해수색 집행해줄 날만을, 행여 오늘일까, 내일일까, 기다리고 기다린 세월이 어느덧 5년이 흘러갔습니다.
대통령님, 이제 임기가 한 달 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제발 떠나시기 전에 대통령의 권한으로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수색을 준비하라는 한마디만이라도 해주십시오.
자식의 뼈 한 조각이나마 내 품에 안아보고 눈감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제 아들이 지금까지 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지 원인이라도 알게 해 주십시오. 사람이 먼저라던 그 약속을 지켜내는 모습을 꼭 보여주십시오.
대통령님을 믿었던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을 부디 저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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