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포위하고 있는 4대 강대국이 2020년대 들어서는 세계패권을 놓고 더욱 숨가쁘게 격돌하는 양상이다. 첨단무기의 우월적 파괴력을 과시하는 강도 높은 군사훈련이 잦아지는 가운데 미국은 동맹의 결속력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설전도 위협적이어서 날선 공방전이 날로 날카로워지고 있다. 그 모습이 19세기 끝자락에 조선을 서로 차지하려고 벌였던 강대국의 각축전을 상기시킨다.
그 때 조선은 중국의 망조도 일본의 융기도 모르고 있었으니 러시아의 숨은 발톱인들 알 리 없었다. 일본의 뒤에는 미국과 영국이 밀고 있었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 세기를 훨쩍 넘겨 태평양 시대를 맞아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미국의 세계유일 초강대국 등극, 패망한 중국의 G-2 굴기, 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의 발흥, 공산주의 종주국 러시아의 재기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가변성을 높인다.
그런데 강대국의 사냥감으로 전락했던 한반도가 백년이란 세월을 넘기면서 다른 얼굴을 들고 있어 상황이 과거처럼 단순하지만 않다. 남쪽은 경제력-군사력이 세계 10위권에 진입했고 북쪽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자리를 굳혀 강대국의 세력판도에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작용하고 있다. 거기에다 중국이 일전도 불사한다며 타이완 탈환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동아시아의 또 다른 화약고 타이완 해협이 발화점을 향해 위험하게 질주하는 형국이다.
한국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는 수출이다. 공산주의가 붕괴된 1990년 이래로 한국은 이념을 초월하여 해외시장 확장에 매진하고 있다. 그에 따라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 구공산권과의 경제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이 미국과 일본에 대한 수출액을 합한 것보다 많다. 베트남에 대한 수출액이 대일본 수출액보다 많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들은 한국경제가 여전히 미국과 일본에 편중되어 있다고 잘 못 알고 있다.
태평양 시대를 맞아 세계패권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단극체제에서 양극체제 또는 다극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다. 다시 말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도전받는 형세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들이 아직도 식민통치와 냉전시대의 사고에 갇힌 탓에 미국과 일본에 일방적으로 경도되어 있다. 그것은 많은 한국인들이 냉전체제 붕괴 이후 세계판도의 세력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같은 의식의 한 단면이 새 정부의 세계관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이유로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주요인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토와 우크라이나로 달려갔다. 러시아를 향해 자극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 미국의 중국봉쇄 정책과 맞물려 한국경제의 탈중국을 주저 없이 역설하는 하면 역사성을 무시하고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조한다. 쿼드에 가입한다며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그 의미나 알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국제무대에서는 때로는 외교적 애매성(diplomatic ambiguity)이 요구되는데 너무 자극적이고 무식한 발언들을 마구 쏟아낸다.
그것은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geopolitical), 지경학적(geoeconomic) 특수성을 이해한다면 발설할 수 없는 표현이다. 최선의 전쟁억제책이야 말로 경제적 상호의존성(economic interdependence)의 제고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처럼 함부로 떠들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얽히고설켜 서로 잃을 것이 많아진다면 전쟁을 쉽게 선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유럽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없었다. 그 해답은 경제적으로 교직되어 있는 EU(유럽연합)가 말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잘 아는 듯이 말하나 사실은 너무 모른다. 그들은 국제관계, 국제경제는 더욱 모른다. 좋은 예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악화다. 새 정부가 일본과 화해한다며 서두르고 있다. 옳은 방향이나 결자해지가 선결되어야 한다. 일본은 전범자 내지 그 동조자의 손자들이 지배하는 나라다. 다시 말해 그들의 세습정치가 할아버지들이 외치던 대동아공영권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다.
두 나라의 정상들이 한번 만나 악수나 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런 정치적 행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일본은 지금 과거의 식민지 한국에게 굴종적인 자세를 강압하고 있어 관계개선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조급증은 오히려 패착을 둔다. 일본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약진을 아주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규제가 그 내심의 발로다.
일본은 국가간에도 신의를 잘 지키지 않는 나라다. 미국은 조선의 지배를 놓고 벌인 노-일전쟁의 종전을 이끌어내면서 일본의 손을 들어 주었다. 미국은 1853년 흑선원정 이래로 전쟁물자 수출, 일본군 훈련 등을 통해 일본의 군비증강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일본은 돌연 하와이 미국해군 기지를 기습공격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 악연을 망각의 영역에 가두고 있다.
영국은 노-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돕기 위해 국채를 매입해 줌으로써 재정적으로, 최신예군함 판매함으로써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그런데 일본은 영국의 식민지 말레이시아, 버마, 싱가포르를 기습하여 영국군 포로들을 학대했다. 네덜란드는 군함설계에서 수병훈련까지 일본해군 창군과 육성에 공로가 크다. 그럼에도 일본이 네덜란드의 식민지 인도네시아를 침공하여 네덜란드인들을 모두 포로수용소에 감금하고 온갖 악행과 만행을 저질렀다.
종주국의 미몽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중국은 조선이 종속국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중국은 G-2로 굴기하자 한국과의 관계에서 더욱 고압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주한미군이 사드를 배치했다는 이유로 한국에 대해 단행한 무차별적 경제보복이다. 시비를 가린다면 서울이 중국 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가지 않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막무가내다. 한마디로 조공국답게 굴종적 자세를 보이라는 억압이다. 그 같은 맥락에서 김치 종주국, 한복 유래설 따위의 치졸한 시비를 건다. 어릴 적 홍위병 노릇을 하며 고난의 세월을 살았던 중국지도부는 배고픔의 아픔을 잘 안다. 삽시간에 풍요의 시대가 개막되자 그들은 이제 중국은 어제의 중국이 아니라는 거만한 얼굴을 들고 군림하려 든다. 그들이 그 옛날의 단꿈을 회상하며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에 탐닉해 있다.
러시아는 딴 곳을 보는 척하다가 느닷없이 허점을 찾아 찌른다. 2차 아편전쟁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함께 중국을 치자고 할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다가 중국의 패색이 짙자 갑자기 연해주를 침공해 강탈했다. 그 때 부동항을 갖는 꿈을 이뤘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항복이 눈앞에 다가오자 불쑥 한반도로 진격하고 사할린을 강점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돌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갑작스런 침략에 세계가 놀랐지만 러시아는 꼭 1년전에 식량수출을 통제하며 식량비축에 나섰었다.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 러시아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한반도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접경해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고 본다. 미국을 모든 기준, 표준의 시금석으로 삼으려고 한다. 국가적 논란거리도 미국에서는 이렇게, 저렇게 한다고 말하면 끝난다. 안보에서도 미국에 대한 의타성이 너무 높다. 하지만 미국은 안보문제에서는 일본을 우선하며 오늘날에도 그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 말하고도 남는다. 많은 한국인의 반발을 샀던 '한-일 군사정보협정', '10억엔 기증 위안부 타결' 뒤에도 미국이 자리하고 있다.
상대를 모르면 살아남을 수도 없고 상대를 이길 수도 없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건국 100년만에 강대국으로 등극한 미국의 잠재력은 무엇인지, 개항 50년만에 해양강국으로 부상한 일본의 돌파력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패망 100년, 개방 30년만에 G-2로 굴기한 중국의 저력은 무엇인지 한국인들은 잘 모른다.
그것은 세계역사의 중심축이 태평양으로 옮겨온 상황에서 4대 강대국에 의해 포위된 한반도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성을 갖는다. 하지만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변하는데도 나라 돌아가는 모습이 어지럽기만 하다. 잘 모르면 허튼소리를 자제하는 것도 지혜다. 너무 답답하고 안타까워 애국적 충정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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