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차별의 도구이자 차별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책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은 뒤였다. '평등한 유토피아'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나라에서는 여성을 나타내는 '움(wom)'이 곧 일반적인 인간을 지칭하는 언어다. 인류는 '움카인트(womkind)' 또는 '휴움(huwom)'이라고 쓰며, 영웅(hero)은 '쉬로(shero)'라고 쓴다. 남성은 '움(wom)'에 '맨(man)이라는 접두사를 붙여 사용한다.
이 같은 언어의 전복을 가부장제 사회를 모계 중심사회로 바꾼 소설적 배경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여'성 사람으로 태어나 '계집애다움'과 '여성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입장에서 <이갈리아의 딸들> 첫머리에 나오는 '움'과 '맨움'의 정의를 읽고 또 읽었다. 무엇보다 정조(貞操, 성적 순결)가 '맨움'이 지켜야 하는 것으로 설정된 것을 보고는 '와'하는 탄식밖에 나오지 않았다.
책 <차별어의 발견>(김미형 지음, 사람in 펴냄) 목차를 보면서도 '헉'하는 탄식부터 나왔다. 2장 '나는 차별어 사용자가 아닐까'에 담긴 소제목들이었지만, 마치 'O' 'X' 설문조사를 앞에 둔 것처럼 'O'나 'X'를 표시해야 할 것 같았다.
'어리다고 차별하고 / 늙었다고 차별하고 / 모르며 차별하고 / 알아도 차별하고 / 다르다고 차별하고 / 못산다고 차별하고 / 못한다고 차별하고 / 맘에 안 든다고 차별하고 / 자조적으로 차별하고 / 대조하며 차별하고 / 신성한 직업을 차별하고'에 모두 'O'를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즉, '나는 차별어 사용자'다.
'주린이' '틀딱' '매춘' '좌좀'에 숨어있는 '차별'을 발견하다
어리다고 차별하는, 대표적인 차별어로 '주린이' '부린이' '요린이' '헬린이' 등 '~린이'를 붙인 신조어를 들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린이'라는 표현은 아동을 불완전·미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차별적 표현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돼 아동에 대한 차별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미'와 '재민(한 인터넷 방송의 음성 지원 서비스에 등장하는 어린아이의 이름)'이 결합된 '잼민이'는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무개념'으로, 학교 급식으로 주요 끼니를 해결하는 청소년을 뜻하는 '급식충'은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멸칭으로 쓰이고 있다.
'틀딱'과 '꼰대' 등은 늙었다고 차별하는 경우의 대표적인 차별어다. 과거 유교 사회에서 노인은 공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늙음은 혐오와 동일시되었다. 지하철과 버스에 붙은 '노약자석'을 두고도 '노약자석을 비워두는 것은 의무인가 배려인가'와 같은 논쟁이 붙기도 했다.
'~린이'와 '틀딱'은 과거와 달라진 인식에 새로 만들어진 차별어지만, 예전부터 사용하던 단어에도 차별은 존재했다.
"예를 들면 '매춘' 같은 단어이다. 한자로는 '賣春(팔 매, 봄 춘)'이다. '춘'은 봄이란 뜻이 있다. 의미가 확장되어 젊은 시절이나 남녀의 연정을 뜻하기도 한다. 매춘에는 남녀의 연정이란 뜻이 적용되는데, 한 사람이 돈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이 돈을 주는 계약관계를 맺은 후의 연정 행위를 지시한다. 문제는 파는 쪽에만 초점을 둔 '팔 매(賣)'를 쓴다는 것이다. 즉, 매춘의 주체를 사는 쪽이 아니라 파는 쪽에 둔 것이다. 즉, 매춘의 책임을 그렇게 보고자 하는 인식이 개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위의 책, 67~68쪽)
그 결과, '매춘부(賣春婦)'라는 말은 있지만 '매춘남'이라는 말은 없다. "두 사람이 함께 매춘 행위를 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초점을 두어 매춘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고, 사회적·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때 여성에게만 비난이 쏠리곤 했다."
'아닐 미(未)'가 사용된 '미망인(未亡人)'이나 '미혼모(未婚母)'도 대표적인 양성 불평등과 성차별 인식이 담긴 말이다. '남편이 죽었는데도 아직 죽지 않은 사람'과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미망인'이란 단어를 쓰는 경우가 드물다. 또 '미혼모'는 자발적으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뜻하는 '비(非)혼모'로 대체되고 있다.
'여의사' '여기자' '여군' '여교수' 등 전문직을 가진 여성에게 유독 '여~'를 붙인 표현 또한 여성을 비대칭적으로 강조한 데 따른 차별어다. '남의사' '남기자' '남군' '남교수'라는 표현은 없다.
백인, 흑인, 황인처럼 사람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차별은 두드러진다. "사람을 묘사하는 방식이 굳이 인종의 다름, 출생의 다름, 피부색의 다름 같은 일차원적 방식밖에 없을까 생각해볼 일이다."
'불체자(불법체류자)' 대신 '미등록자', '조선족' 대신 '조선 동포', '탈북자' 대신 '새터민'처럼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차별적 표현을 개선하자는 의견이 대두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개선된 단어마저 차별어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게이'와 '호모' 같은 표현이 차별어라는 인식은 보편화된 듯 하지만, 성소수자 축제는 매년 차별 속에 진행된다. 광장 사용 여부나 반대를 위한 반대 집회 또한 정권에 따라 부침이 큰 게 현실이다.
서로 '보수 꼴통'이니, '좌파 좀비(좌좀)'니 하며 삿대질하는 경우도 차별과 혐오에 기인한 표현이다. 뿐만 아니라 '임대 거지' '빌거지'는 사는 곳에 따른 차별, '신불자(신용불량자)' '불우 이웃'은 가진 것에 대한 차별이다.
이 같은 차별어는 단어의 나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를 들어 "씁쓸한 방정식, 학종=금수저 전형", "흙수저에겐 수능도 넘사벽" 같은 말은 현실을 드러내고 문제를 제기하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 언어는 현실을 반영하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지 금수저, 흙수저 같은 단어가 생겨나 쓰이게 된 것이다."(위의 책, 109쪽)
"언어는 본디 정을 나누고 친해지려고 쓴 것…현재를 세심하게 인식하는 능력 필요"
<차별어의 발견>를 쓴 김미형 상명대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는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두고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영어 '헬(hell)'은 지옥을 뜻하고, 조선(朝鮮)은 우리나라를 뜻한다. 즉, 지옥 같은 우리나라라는 뜻이다.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이 자국을 그렇게 표현하는 말이다. 살기 어려운 나라, 열심히 노력해도 살기 어려운 사회를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부정의 대상이 우리나라이니 다분히 자조적이다.
그럼 우리 자신을 이렇게 부르는 말도 차별어인가. 어떤 면에서 차별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을 혐오하든 타인을 폄하하든 이러한 경우 모두 차별어에 속하는가."(위의 책, 130쪽)
우리는 어쩌다 '헬조선'의 '포기세대'를 자임하게 된 걸까. 차별과 혐오가 시나브로 내재된 결과일까.
김 교수는 차별과 혐오가 발화자 스스로를 갉아먹는 자조에 이른 상황에서 언어의 본래 기능을 다시 강조한다.
"언어는 본디 사람들이 정을 나누고 친해지려고 쓴 것인데, 이 귀한 언어로 누구를 차별하고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못 할 짓 아닌가. 우리에게는 언어의 본래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현재 세상을 섬세하게 인식하는 능력이다."(위의 책,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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