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9년 개항을 목표로 하는 국내 2개의 신공항이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하나는 '글로벌 허브 도시 부산'을 실현할 핵심 기반으로 손꼽히는 '가덕도 신공항'이고 다른 하나는 환황해 경제권을 주도할 사회적 자본으로 평가받는 '새만금 국제공항'이다.
같은 해에 착공하고 개항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전자는 '제2활주로 건설' 주장이 나오는 반면 후자는 '최단거리 활주로'마저 향후 여객 수요를 봐가며 설계를 변경해야 할 것이라는 무대접에 처해 있다.

공사비도 한쪽은 국비만 13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화려한 면모를 자랑하는 반면에 다른 쪽은 8000억원을 간신히 넘기는 초라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새만금 국제공항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계기로 전국적 이슈로 떠오른 '활주로 연장' 문제마저 국토부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어서 전북자치도가 지나치게 '저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낳고 있다.
새만금 기본계획상 국제공항 활주로는 2500m로 국내 기존 공항이나 건설 예정인 신공항 중에서도 가장 짧은 편에 속한다.
인천국제공항 제1활주로(3750m)나 김포공항(3600m), 제주공항(3180m)과의 비교는 엄두도 못 내고 청주공항(2700m)보다 짧은 실정이다.
같이 출발하는 가덕도 신공항만 해도 현재 추진 중인 활주로의 길이가 3500m에 달하고 향후 추진해야 할 제2활주로 역시 3200~3500m를 예상하고 있음에도 현지에서는 그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단 착공부터…" 10여 년 저자세 일관
하지만 전북자치도는 지난 10여 년 동안 '자칫 활주로 연장을 욕심내다 되레 국제공항 착공이 뒤로 밀리는 것 아니냐'며 지레 겁을 먹고 "일단 착공부터나 해 놓고…"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각 공항의 활주로 문제가 핵 이슈로 급부상한 최근에도 전북도는 "국토교통부는 '일단 당초 설계대로 공항을 건설하고 수요가 많다면 그때 설계를 변경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국토부에 핑계를 돌렸다.
물론 국토부 등을 상대로 활주로 연장 등을 적극 건의해 나갈 방침이라지만 왜 그런지 믿음직하지 않다.
공항 이야기만 나오면 전북도가 움츠러드는 이유는 '김제공항 백지화'의 악몽 때문이다.
김제공항은 80년대 이후 전북에서 민간공항 건설 요구가 꾸준히 일자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에 본격 추진의 물꼬를 튼 사업이다.
당시 공항 건설을 2002년부터 총사업비 480억원을 투입해 김제시 백산면 일대 편입용지 46만5000평에 대한 보상까지 완료했다.
김제공항 백지화 가위눌림에 스스로 위축
하지만 지역 출신인 최규성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일부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하자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해 항공수요가 부풀려졌다며 공사 중단을 요구해 2004년 전면 백지화됐다.

김제공항 건설이 다름아닌 지역 내 갈등과 마찰로 무산된 이후 "전북은 예산을 줘도 지역에서 반대해 스스로 공항을 포기했다"며 중앙부처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고 한동안 공항(空港)의 '공'자도 꺼내기 어려운 처지로 전락했다.
이 사건의 가위눌림은 전북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새만금 방조제 완공과 함께 본격적인 내부개발 시대로 진입한 2008년 이후에도 중앙부처의 무관심 등 심한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10여 년 동안 중앙부처 눈치만 보다 보니 전북자치도 실무부서는 장기적 관점의 활주로 연장을 주창하기보다는 "착공만이라도…"라고 읊조리며 패배주의에 빠져들었다는 게 전북도청 주변의 분석이다.
전북자치도 공항관련 부서에서 퇴직한 전직 공무원 A씨는 "김제공항 후유증이 너무 커 중앙부처에 새만금 국제공항 얘기를 꺼내기 힘들었다"며 "어느 순간부터 공항의 큰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소명보다 첫 삽이라도 뜨자는 식이 되고 말았다"고 술회했다.
이 공직자는 "새만금 부지에 활주로를 연장할 부지는 충분히 확보돼 있다"며 "자칫 활주로를 연장하자고 국토부에 주장했다가 된서리를 맞아 개항 시기가 늦어질까 걱정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활주로 연장을 뒤로 미룰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국회 국토위 소속의 이춘석 4선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북 익산갑)도 '마냥 저자세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4년 동안 쉬었다가 국회로 되돌아와 보니 국토부의 전북 홀대가 너무 심각한 상황이었다"며 "전쟁을 치르더라도 전북 몫을 찾겠다"고 주장했다.
활주로 연장-적기 개항은 '양자택일' 아냐
지금은 비상계엄 선포와 대통령 탄핵 국면에 모든 지역 이슈들이 함몰돼 겨를이 없지만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이춘석 의원은 국토부의 전북 홀대를 비난하며 대전쟁을 선포한 상태였다.
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김제공항 여파로 전북이 공항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저자세로 일관해 온 것이 사실이고 전북도 입장도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활주로 문제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전국적인 이슈가 된 마당이어서 전북이 당연히 연장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굳이 착공 지연 등을 걱정하며 전북이 과도하게 움츠러들 필요가 없으며 활주로 연장과 2029년 적기 개항은 '양자택일'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항공업계에서 20년 종사하다 최근 퇴직한 L씨는 "새만금 국제공항의 설계상 활주로(2500m)는 주행거리 5~6시간 정도의 동남아 거리만 오갈 수 있는 보잉 737-800기종 정도만 뜰 수 있는 활주로"라며 "전북이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최소 3200m에서 3500m의 활주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L씨는 "전북도는 공항의 조기 착공과 적기 개항에 온 신경을 쓸지 모르겠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활주로 문제"라며 "개항이 약간 늦추더라도 국제선이 뜰 수 있도록 기반을 갖추는 것이 실리적"이라고 덧붙였다.
국제공항의 문만 열어 놓고 제주노선과 내륙노선, 울릉도와 흑산도 등 도서노선만 오가는 국내 공항으로 전락하기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미주노선 등 국제선을 띄울 수 있도록 기반시설을 처음부터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전북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활주로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장 설계를 수정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행정적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며 "나아가 기재부와의 총사업비 협의도 해야 하는 등 자칫 조기 착공에 어려움을 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단 공항 착공부터 하고 활주로 연장 등의 문제는 전북 정치권과 함께 기재부와 국토부를 설득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우선 당장 올 상반기 안에 새만금 국제공항 착공을 하고 활주로 문제를 병행 추진하는 등 2029년 개항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강력한 '실행력'과 '추진력'
전북도는 국제공항의 활주로를 지금보다 1000m 늘린 3500m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국토부와 기재부를 상대로 강력히 요청하는 추진력과 실행력이다. 이는 전북 정치권과의 협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전북이 조기 착공을 고민하는 사이에 부산에서는 2029년 가덕도신공항이 개항한 이후 여객과 물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에 대비해 '제2 활주로'를 건설해야 할 것이라고 벌써 군불을 때고 있다.

심지어 가덕도신공항이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갈 발전의 축으로 인식해 '제2 활주로' 동시 착공과 활주로 길이와 폭 확장에 대한 재검토가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는 등 전북의 새만금 국제공항과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전북도가 2036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해 놓고 '활주로 연장' 문제를 가볍게 본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적기 개항만큼 중요한 과제가 바로 활주로 연장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국제공항의 조기 착공과 적기 완공이 중요하다면 국토부로부터 '조기에 활주로 연장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담보라도 받아 놓고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만금 국제공항의 2029년 개항 가능성도 정밀하게 따져볼 일이다. 이미 정부의 새만금 기본계획 재수립 용역에는 '2030년 개항'이라고 은근슬쩍 1년 뒤로 미뤄놓은 모습이다.
작년 11월 14일 발표된 '새만금 기본계획(MP) 재수립 기본방향(안)' 용역에는 새만금 국제공항과 관련한 개항 시기로 2030년을 못박고 있다.
이 용역의 '용지별 개발방향' 항목에는 '관광·레저용지는 국제공항(2030년 개항) 활성화 수준에 맞춰 점진적으로 개발 확대 및 가속화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관련 기관에서 은근슬쩍 개항 시기를 종전의 2029년에서 1년 늦게 잡은 것이다.
은근슬쩍 1년 뒤로 미뤄진 새만금 국제공항
더 큰 문제는 국제공항 예산이 제때에 확보되지 못할 경우 개항 시기가 2030년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새만금 국제공항은 지난해 6월 설계·시공 일관입찰 방식의 턴키 발주로 사업자가 확정됐고 올해부터 대규모 예산투입이 불가피한 상태이지만 향후 투자계획은 전혀 없어 적기완공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전문기관이 국토부에 작년 6월에 제출한 '새만금 SOC사업 적정성 검토'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의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 중기예산(잠정)'에는 대규모 재원이 소요되는 착공 이후 단계의 투자계획은 없는 상황임을 확인했다.
예산확보 방안이 극히 불투명하다 보니 연구 보고서는 새만금 국제공항의 '2대 위험 요인'으로 환경성과 함께 재원조달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관련 보고서는 또 "중앙정부는 새만금 국제공항 착공 이후 단계에 소요되는 대규모 투자재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제안했했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 2019년 12월에 내놓은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사업 계획 적정성 검토' 자료에 따르면 새만금 국제공항의 2029년 적기 개항을 위해서는 2025년에 1603억원의 막대한 국가예산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분석됐다.
또 2026년과 2027년에 각각 2150억원을 집중 투입하고 2028년에 766억원의 마무리 예산을 쏟아부어야 2029년 개항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 바 있다.
2026년부터 매년 2100억원 재원 확보 필수
하지만 올해 투입될 국가예산은 고작 632억원에 불과한 '쥐꼬리 상태'이다. 국토부와 기재부에서 새만금 국제공항 예산 분배에 극히 인색한 상황에서 과연 2026년부터 2028년까지 3년 동안 국비가 집중 투입될 수 있을 것인가?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2026년 이후 무더기 국비를 확보하지 못하게 될 경우 자연스럽게 국제공항 개항 시기는 2030년도 아닌 그 이후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한해 '항공과 공항 분야' 총 예산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라며 "2026년 이후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막대한 재원 조달이 요청되는 데 다른 시·도 공항과 경쟁하게 되면 대규모 국비 확보는 어렵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북자치도는 "정치권과 협력해 국비 예산을 대거 확충하고 활주로와 터미널 공사를 1년 내내 진행하면 개항시점을 뒤로 미루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희망사항'이란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공항을 가진 광역지자체간 피 튀기는 '공항 예산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만금 공항만 대규모 예산을 가져올 순 없는 노릇이어서 전북도의 적기 개항 목표는 '희망고문'이 될 소지가 높다는 분석이다.
결론을 종합하면 전북은 수십년 동안 '대도시 광역교통에 관한 특별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등 각종 SOC 확충에 있어 전국 17개 시·도 중 최대 피해자로 전락해 있다.
하소연 하는 현안 추진 패배감 극복하자
겨우 붙들고 있는 새만금 국제공항마저 '최단 활주로 논란'에 휘말려 있어 그간의 홀대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라도 활주로 조기 연장과 공항의 적기 개항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촉구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국토부는 선(先)수요를 언급하겠지만 국비 재원을 먼저 투자해 낙후 전북에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북 몫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전북이 열패감이나 패배주의에 휩싸여 중앙부처의 눈치나 보며 하소연하고 구걸하는 식의 현안 추진에 나서야 하는지 곱씹어 볼 때"라며 "낙후 전북의 몫을 확보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고 그 선봉에 전북자치도와 국회의원 등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전북 몫 확보의 시험대가 바로 새만금 국제공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활주로 연장과 새만금 SOC 예산은 대의적 명분이 있는 만큼 정당하게 요구하고 강력히 대시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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