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자치도 장수군에 있는 '장수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년)에 덕행이 훌륭한 사람들을 모셔 제사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나라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에도 잘 보존되어 조선 전기 향교의 형태를 잘 알 수 있다.
원 상태가 제대로 보존된 배경에는 1597년 정유재란 당시 향교내의 문묘(文廟)를 지킨 충복 정경손의 기개가 숨어 있다.

정경손은 왜적의 한 부대가 장수지역에 침입해 문묘(文廟)까지 이르자 문을 굳게 닫고 말하기를 "만약 문에 들려거든 나의 목을 베고 들라"고 호통을 쳤다.
그의 늠름하고 당당한 태도에 감복한 왜적들은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 이곳은 성스러운 곳이니 침범하지 말라는 쪽지를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대부분 불에 타버린 다른 지역의 향교들에 비해 장수향교가 불에 소실되지 않고 현재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연유이다.
조선 헌종 12년인 1846년 정주석 장수현감이 정경손의 거룩한 기개를 이어받기 위해 '호성충복 정경손명비(護聖忠僕 丁敬孫名碑)'를 세웠다.
장수군은 절의를 지킨 3명(長水三節)중 한 명으로 그의 희생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매년 음력 3월 15일이면 충복 정경손의 공덕을 기리는 제례봉행을 거행하고 있다.
장수군이 음력 3월 15일인 지난 12일 장수향교 정충복 비각 앞에서 임진왜란 때 장수향교를 지킨 충복 정경손의 애국충절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례봉행을 거행했다.

이날 제례봉행에는 최훈식 군수와 최한주 군의회 의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 및 단체장과 장수향교 유림회원, 지역주민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제례에서는 최훈식 군수가 초헌관을, 최한주 의장이 아헌관을, 유림회원이 종헌관을 맡아 제례식을 거행했다.
최훈식 장수군수는 "신분을 떠나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향교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정경손의 정신을 본받고 이어갈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장수향교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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