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딸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회에 갔다. 운동회는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다. 잠실학생체육관은 체육대회 바로 전날 남자 프로농구(KBL) 챔피언 결정전이 펼쳐졌던 곳이라 이상하게 생각했다. 의문은 금세 풀렸다. 잠실학생체육관은 서울시 교육청 소유였다. 서울 시내 공립학교가 미리 대관 일정을 잡으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도 궁금증은 남았다. 잠실학생체육관은 프로 농구 팀 SK나이츠의 홈구장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를 찾아보다 깜짝 놀랐다. 2023년 프로농구에서 펼쳐졌던 웃지 못할 사건 때문이다. 2023년 프로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챔피언결정전이 펼쳐질 장소가 경기장 대관 문제로 변경된 사건이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
2023년 KBL 챔피언결정전 일정은 왜 바뀌어야 했나
실내체육관은 주로 농구나 배구 경기를 하는 시설이다. 남녀 프로농구와 배구 구단은 각 지역 실내체육관에서 시즌을 치른다. 하지만 운영권은 지자체 소속 시설관리공단이 가지고 있다. 프로구단은 단기 임차를 통해 경기장을 빌려 쓰는 형태다.
2022~2023시즌 KBL 챔피언결정전 장소 변경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당시 SK나이츠는 정규리그에서 2위 경쟁을 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4위까지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SK는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경기장 대관 일정을 잡기가 매우 힘들었다. 2위가 될지 3위나 4위로 정규리그를 마감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잠실학생체육관은 최대한 SK나이츠의 사정을 봐주려고 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 돌입하기 전 오래전에 예약된 중요한 행사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펼쳐질 예정이라 애매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봄이 오면 잠실학생체육관 대관이 쉽지 않다. 서울시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들과 체육관 소유자인 교육청 등의 행사가 주로 이때 열리기 때문이다.
결국 SK나이츠와 안양KGC의 챔피언 결정전 장소가 변경됐다. 원래는 정규리그 1위 팀인 안양KGC의 홈경기장인 안양에서 챔피언결정전 5차전이 펼쳐지고 6차전은 잠실에서 열려야 했다. 하지만 경기장 대관 문제로 3, 4, 5차전은 잠실에서 6, 7차전은 안양에서 열리게 됐다.
이 챔피언 결정전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안양KGC의 우승으로 마무리 됐다. 앞서 언급한 딸의 초등학교 운동회는 챔피언 결정전 5차전이 끝난 바로 다음 날 열렸다. 물론 딸과의 소중한 추억이기도 했지만, 나는 혹시나 운동회 때문에 챔피언 결정전 장소가 바뀐 게 아닐까 하는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일은 SK나이츠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잠실 실내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쓰는 삼성도 12월에는 다른 이벤트로 경기장 대관으로 원정경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지역 체육관보다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지만 지역 체육관들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경기장의 추가 수입 확보를 위해 실내 체육관의 대관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체육관의 핵심 임차인인 프로농구 팀에게 적어도 '시즌 운영 안정성'은 주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주택 임차인에게 보장돼야 할 '주거 안정성'이 실내체육관을 쓰는 프로농구 팀에게는 아직 요원한 셈이다.
지자체와 구단의 NC 참사 책임 공방
지난 3월 29일 프로야구 구단 NC다이노스의 홈구장인 창원 NC파크에서는 전례가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창원 NC파크 3루 쪽 매점 벽에 설치된 구조물(알루미늄 루버)이 떨어져 관중 한 명이 사망했다. 무게 60kg에 달하는 구조물이 떨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친 한 관중은 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목숨을 잃었다.
참사가 발생한 뒤 지자체와 구단 간의 책임 공방이 이어졌다. 창원 NC파크의 소유자는 창원시다. 구조물 보수 등 시설 관리는 창원시설공단이 담당한다. 하지만 NC다이노스는 경기장의 소규모 보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야구장을 활용한 광고권을 행사한다.
추락한 구조물은 NC 구단이 야구장을 사용하기 전부터 설치된 것이다. 하지만 과연 참사의 원인이 된 구조물 관리가 누구의 책임인지 애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중이 사망한 상황에서 펼쳐진 책임 공방은 야구 팬들은 물론 전 국민을 분노케 했다.
지난 2일 경제정의실천연대(경실련)은 "외벽 마감재나 부착된 구조물 등은 추락의 위험성이 있어서 그 아래에는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화단이나 구조물을 설치해야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참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물론 안전 진단을 통한 구조물 상태 확인 등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기장 운영과 관리 주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번 참사로 창원 NC파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홈경기는 지난 달 29일을 마지막으로 한 달째 원정 경기로 대체되어야 했다. 홈경기 없이 원정경기를 치렀던 NC다이노스의 성적은 급락해 현재 10개 구단 가운데 9위에 머물러 있다.

잔디 관리 문제로 어려움 겪는 K리그
K리그(프로축구)의 최대 문제는 잔디다. 지난 해 여름 오랜 기간 지속됐던 무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심각하게 훼손된 잔디가 예년보다 보름이나 일찍 개막한 2025 시즌 초반부터 문제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2025 시즌 K리그는 지난 2월 15일에 개막했다. 2월 중순에 K리그 경기가 펼쳐진 축구장의 잔디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라운드 바닥이 여전히 얼어있던 2월에 이 문제는 심해졌다.
흔히 말하는 잔디가 패여 흙이 드러나는 '논두렁 잔디' 위에서 경기를 하는 프로축구 구단이 적지 않았다. 국가대표 팀의 월드컵 예선 경기가 펼쳐졌던 경기장에서도 지난 해부터 '논두렁 잔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K리그는 기존의 춘추제에서 추춘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유럽 프로축구 경기가 펼쳐지는 시즌 일정과 최대한 맞추는 게 여러모로 이익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K리그의 경제적인 측면을 떠나 지금과 같은 잔디 상태에서는 추춘제를 하기가 쉽지 않다. K리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추춘제 일정은 대체로 8월에 시즌을 개막하고 겨울 휴식기(12월 3주~2월 2주)를 가진 뒤 2월 중순에 시즌을 재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잔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시즌이 개막하는 8월의 무더운 날씨에 어떻게 그라운드를 관리해야 하는지, 이상 기후가 많은 2월 중순 변덕스러운 날씨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잔디는 생물이다. 기온, 통풍, 습도, 햇빛 등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월드컵 경기장은 잔디를 위한 통풍을 고려해 지어진 곳은 없다. 그라운드 바닥이 얼어 있는 시기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선이 장착돼 있는 축구장도 물론 없다.
더 큰 문제는 K리그(1부, 2부리그) 26개 구단이 사용하고 있는 경기장의 운영권은 5개 구단을 제외하면 모두 각 지자체 시설공단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설공단 입장에서도 그라운드 관리에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재 수준으로는 역부족이다. 특히 추춘제 전환을 위해서는 큰 변화가 필요하다.
'반려식물' 정도는 아니더라도 관리 주체가 경기장 잔디에 관심과 애정을 쏟지 않으면 한국의 축구장은 본연의 기능을 하기 어렵다. 시설공단과 K리그 구단이 경기장 운영과 관련해 새로운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그 방향성은 K리그 구단이나 민간업체가 경기장 운영권을 가지는 모델에 무게 중심을 두고 논의돼야 한다.
유한 킴벌리는 지난 1984년부터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나무심기 운동으로 시작한 이 캠페인은 한국의 대표적 사회공헌 활동으로 한국인의 77%가 인지하고 있을 정도로 파급효과가 컸다.
이런 캠페인은 이제 '우리 구장 푸르게 푸르게'라는 캐치 프레이즈로 K리그가 해야 할 상황이다. 경기장 잔디 관리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K리그가 축구단과 함께 '잔디 스폰서십(Grass Sponsorship)' 상품을 만들 필요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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