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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은 안 껴졌다…'산불 산청' 피해 노인들 "집 못 짓지, 셋방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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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은 안 껴졌다…'산불 산청' 피해 노인들 "집 못 짓지, 셋방 살아야지"

[산불참사 한 달, 주민들의 목소리 ①] 산청 중태마을, 건물 철거가 한창... 한푼이라도 쥐여주려 고물값 도움도

"말도 못 한다. 미안해서. 얼굴도 못 쳐다보겠더라. 거기 아는 아저씨가 '내가 돈이 어디있노. 집 못 짓는다. 고마 셋방 살아야지' 하대. 중태리 거기는 진짜 다 팔십, 구십 노인이다. 나라가 무슨 빚을 또 져라 하노."

지난달 22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태리로 가기 전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주민 A 씨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중태리 옆 사리에 사는 A 씨는 "중태에 밭이 있어 마을 사람들을 자주 보는데, 따뜻한 내 집 있는 게 그렇게 미안하다"며, 산불 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기는 아직 모이면 산불얘기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산청은 지난 3월 경북산불과 동시에 발생한 영남 대형산불 피해지역 중에서도 피해 정도가 가장 컸다. 사망자 4명을 포함해 13명의 인명피해가 났고 전소된 건물도 33채가 넘는다. 이 중 16채가 중태리에 있다. 산과 산 사이 길게 늘어선 길을 따라 형성된 중태마을은 양쪽 산 사면에서 불이 거세게 내려와 덮치면서 피해가 컸다.

집이 없어진 주민들은 아직 인근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숙소에서 지내고 있다. 임시주택은 지어지지 않았다. 지난달 22~23일 방문한 산청 중태리에선 철거 작업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선 포크레인과 고철 수거 차량의 덜그럭거리는 소리, 지원 나온 육군차량의 엔진 소리가 하루 종일 들렸다.

▲지난 4월 24일 대형산불 피해를 본 경남 산청군 중태마을에서 포크레인이 전소된 집을 철거하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농사철, 망연자실할 시간도 없어"

23일 점심 중태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재민 김아무개(75) 씨는 대뜸 손톱깎이세트를 건넸다. "같은 게 3개나 왔다"며 "가져가라"고 손을 내밀었다. 김 씨 손톱 주변은 까맸다. 새벽부터 고사리 일을 한다고 흙과 고사리물이 손톱 밑에 다 엉겨붙었다고 했다.

"힘들어 죽겠다. 어떨 때는 밥도 못 먹고 그대로 자버린다. 근데 지금이 고사리철이다. 저거 지금 안 하면 그대로 다 버리는 거다. 내 아니면 할 사람도 없는데, 우예 앉아 있노. 매일 해야지. 아침 6시 전에 나와서 7시에 여기 와서 오후 5시까지 고사리한다. 그리고 저녁까지 고사리 삶다가 잔다. 근데 요새는 면에서 오라하지, 철거한다고 오래 붙잡지, 밭일할 시간이 없다. 오늘 인터뷰할 시간도 없다."

집, 곶감창고, 모든 농기계를 잃은 김 씨는 "그렇다고 농촌 할매들은 쉴 수 없다"며 "농사는 때를 놓치면 안 된다"라고 했다. 감 농사도 했던 김 씨는 감나무 60여 그루도 다 잃었다. 나무가 없어졌다는 건 향후 5~6년 간의 소득원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감은 한 5년은 돼야 열매를 조금씩 맺어. 근데 처음 2년 정도는 풀을 계속 뽑아 줘야 해. 안 뽑아주면 나무가 풀에 치여서 못 커. 풀이 얼마나 잘 자라는데. 근데 내가 이걸 다시 하면 5년 후에 팔십이다. (정부가) 지원도 제대로 안 해줄 건데, 죽기 전에 따먹도 못할 걸 뭐 하러 심겠노."

마을에는 정부 피해회복 대책은 간접지원(대출)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입말이 이미 널리 나돌았다. "추억이 모두 불에 없어졌다"며 눈물을 흘리던 김 씨는 울분을 터트리며 말했다.

"정부한테 하고 싶은 말? 진짜 이(비틀어진 손가락) 봐라. 농촌 할매들이 이래 비뚤어지게 일한다. 이 먹거리를 갖다가 도회지 사람한테 다 제공해 주잖아. 꼭 총칼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것만 애국이가? 우리가 열심히 한 그 자체도 애국이다. 농사할 수 있게 제대로 도움을 줘야 되는 거 아니가."

▲지난 4월 24일 대형산불 피해를 본 경남 산청군 중태마을에 전소된 집이 철거됐다. ⓒ프레시안(손가영)
▲마을 입구에 놓인 석면 유해물질 자루. ⓒ프레시안(손가영)

농사 포기 속출... "5년 키워 열매 맺는데, 그땐 내가 팔십 노인"

"3600만 원? 그걸로 뭐하게? 나가서 셋방 살라고?"

이날 오후 마을회관에 앉아 있던 주민 3명의 대화 자리에서 '3600만 원 비판'이 터져 나왔다. 전소된 가구에만 2000만~3600만 원까지 주거비를 지급하는 재난안전법 규정을 두고 마을에선 "말이 안 된다"는 정서가 팽배하다고 했다.

이 자리에 있던 전소 피해자 정아무개(60대) 씨는 "집 짓는 게 제일 걱정"이라며 "자재비도 다 두 배씩 올랐을텐데, 턱없이 적은 금액"이라고 망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 씨는 주거 지원 사각지대에 처했다. 13년 전 귀농 당시 곶감 창고를 크게 지으면서 집 지을 돈이 부족해, 창고 안에 생활방을 마련해 쭉 살았다. 정 씨는 "창고가 전소되며 주거지까지 다 타버렸으나 관에선 창고로 보기에 (보상 기준의) 3분의 1만, 1800만 원까지만 보상 가능하다고 한다"며 "이마저 새집을 지어야 짓고 난 후에 줄 수 있단다"고 말했다.

오전에 만난 주민 박아무개(75) 씨도 "내 잘못일 때는 벌금도 내게 하고 난리굿을 치면서, (재난이) 내 잘못도 아니고 가만히 있는데 날벼락을 쳐놓고 왜 제대로 안 해주느냐"며 "법이라는 게 한참 잘못됐다"고 피해주민들 울분에 공감했다.

▲지난 4월 24일 대형산불 피해를 본 경남 산청군 중태마을에서 포크레인이 전소된 집을 철거하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마을 이장 마음건강 적신호 걱정도

마을에선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되는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날 철거지 곳곳을 둘러보던 손경모(67) 중태마을 이장은 "한 푼이라도 더 모아주려고 고물상을 각각 부르고 있다"며 "원래 지자체에서 철거하면 알아서 다 가져가는데, 그렇게 안 하고 고물상이 살던 사람한테 고물비를 주고 사 가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의료봉사를 나왔던 자원봉사자 B 씨는 "의성, 안동, 영덕 곳곳을 다 돌아다니고 있는데 자기 얘기를 잘 터놓지 않는 노년 남성들의 심리적 트라우마가 걱정될 수준"이라며 "그중에서도 회의에, 주민들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장님들 마음 건강이 내가 체감할 만큼 나빠진 게 보인다"라고 걱정했다.

손 이장은 '봉사자가 이런 걱정을 하더라'고 전하자 가볍게만 웃었다. 손 이장은 "구호물품 정말 고맙지만, 사실 피해 주민들은 라면, 생필품보다 삶을 회복할 직접 지원금이 절실하다"며 "정부가 보상가를 좀 올려서, 집을 짓고 농작물 피해를 복구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4일 대형산불 피해를 본 경남 산청군 중태마을의 한 야산의 고사리밭에서 주민들이 고사리를 따고 있다. 고사리밭 뒤로 검게 그을린 소나무숲이 보인다. ⓒ프레시안(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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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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