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도입된 실손의료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을 보완한다는 취지로 도입되었지만 비급여 의료 과잉공급, 의료이용 증가로 인한 국민건강보험 부담 증가, 의료공급자의 비급여시장 쏠림 현상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에야 실손보험 개혁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실효적인 개혁이 되기에는 갈길이 멀어 보인다. 특히 다수의 의사 관계자는 의료 생태계가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에 의존한다며 개혁방안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크게 수익이 되지 않는 건강보험 급여 진료만으로는 의료기관을 운영하기 어려워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에 의존하고 있다'는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동안 이를 이용해 과다한 의료를 제공해 온 공급자의 문제도 분명히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예시를 소개해본다.
#1. 서울 삼성병원 근처 암요양병원
소위 빅5라 불리는 서울의 대형 병원 근처에는 암요양병원이 성업하고 있다. 한국의 암관리체계는 치료에만 관심을 둘 뿐 항암 중, 암 생존 후 관리체계는 거의 없다는 현실과 입원비 거의 모두를 실손보험이 해결해 준다는 것을 이용한 시장이다. 암요양병원 홈페이지에는 1세대, 2세대 등 보유한 실손보험 세대에 따른 진료비를 상세히 소개해 놓고 있다. 그리고 월 최대 1050만 원, 2주 500만 원 등 실손보험 약관에 따라 최대 진료비를 책정하고 그에 따른 진료를 한다. 투약되는 약제는 셀레늄, 상황버섯 등의 비급여 약제 위주이며 매일 고가의 물리치료가 처방된다.
#2. 서울의 한 산부인과 외래
병원에 방문하자 "실손보험 여부를 알려주세요"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방광염 증상으로 방문한 40대 여성 환자는 1년에 한 번 정도 증상이 발생하면 소변검사 후 항생제를 처방받아 증상을 조절해 왔는데, 이번에는 복강 초음파, 요도경 검사를 해야한다는 말에 뭔가 이상했지만 검사를 받았다. 진료를 마치고 확인한 진료내역서에는 진료비가 57만 원이 나와 있었고, 자기부담금은 20만 원으로 실손보험에서 주는 외래진료비 한도였다.
#3. 통증 도수치료와 수액치료를 하는 의원
들어가자마자 접수창구에 있는 직원이 실손보험이 있는지 물어본다. 의사의 문진과 처방 하에 도수치료를 받고 나온다.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 이전에 방문했지만, 이미 의원에는 간소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 환자가 직접 진료내역서를 떼 보험사로 보내 돈을 받는 복잡한 청구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었고, 며칠 뒤 의원에서 카드로 계산한 20만 원이 환급되었다.
#4. 국가주도 실손보험 강화
공무원으로 취업하면 복지포인트가 나오는데 실손보험에 들지 않은 사람은 의무적으로 실손보험에 가입하여 복지포인트를 강제로 사용해야 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예외는 없다. 평소 실손보험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공무원 강제 가입 규정에 따라 실손보험을 들지 않겠다는 신념을 꺾을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공무원 실손보험이 좋지만 퇴직 후 보장이 안되므로 기존 실손보험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류의 정보만 있을 뿐 가입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최근 정부의 실손보험 대책은 외래환자에 대한 내용이 주가 되고 입원환자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 #1의 문제를 다룰 수 없는 것이다. 비급여 통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비급여가 아닌 건강보험 내에서 작동하는 과잉진료를 통제하기는 어렵기에 #2의 문제도 다룰 수 없다. #3을 보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통해 가입자를 돕겠다는 (실제는 보험사에 이득이 되는) 정책도 이미 한발 늦어 있다. #4에서는 실손보험 관리, 개혁을 과제로 내세운 정부가 공무원을 실손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하는 어이없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 정책이 정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최소한의 진정성도 없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은 앞서 이야기한 내용 중 일부에 대한 구체적 실증을 담고 있다(☞논문 바로가기: 실손의료보험이 건강보험 급여 서비스 이용에 미치는 영향). 이 연구는 실손의료보험 가입자 자료와 건강보험 청구 자료를 연계한 행정자료로 실손의료보험이 건강보험 급여 서비스 이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미가입자에 비해 외래서비스와 입원서비스 모두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모든 종별 의료기관에서 미가입자에 비해 의료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고 있는데, 특히 병원급 의료기관에서의 방문이 50% 이상 많았다. 한편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의료서비스 이용 정도가 다른 종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필자가 경험한 사례와 위 연구로 미루어 볼 때 실손보험이 과잉진료 유발과 의료의 상업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확인된 문제점들을 정교하게 다루는 정부의 실손보험 정책을 기대해 본다. 아울러 공급자의 이익추구 행태와 실손보험의 관계를 규명하는 실증적인 연구들도 앞으로 많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지정보
권정현. (2024). 실손의료보험이 건강보험 급여 서비스 이용에 미치는 영향. 한국경제의 분석, 30(2), 4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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