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가 8일 단일화 협상을 위해 두 번째 회동을 가졌지만 견해차만 확인한 채 헤어졌다. "단일화하기 싫으냐(한덕수)", "경선 참여도 안 하고 청구서를 내미느냐(김문수)"며 날 선 말을 주고받은 두 후보는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했고, 갈등은 더욱 고조됐다.
김 후보와 한 후보는 이날 오후 국회 경내에서 1시간가량 회동했다. 웃음기 없는 두 후보의 대화는 단일화에 대한 각자의 이해관계만 주장하는 '도돌이표' 양상으로 이어졌다. 먼저 말문을 연 한 후보는 "단일화하지 않고 국내적으로 갈등과 분열을 해결할 수 있나. 국민의 명령이고, 당원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며 "김 후보는 4월 19일부터 5월 6일까지 18일 동안 22번 단일화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나"라고 김 후보를 압박했다.
김 후보가 당의 무리한 단일화 추진을 문제 삼으며 토론회와 여론조사를 1주일가량 연기해야 한다고 제시한 데 관해 한 후보는 "결국 (단일화를) 하기 싫다는 말같이 느껴진다"며 "방향은 옳은데, 시작은 1주일 뒤에 하자는 건 '하지 말자'는 얘기와 똑같다"고 공격했다. 그는 "오늘 내일 결판내자"며 "모든 방법은 다 당에서 하라는 대로 받겠다"고 했다.
이에 김 후보는 "한 후보가 출마를 결심했다면 당연히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게 마땅한데, 왜 안 들어오고 밖에 있느냐"는 점을 문제삼았다. 김 후보는 "경선 과정을 거치며 많은 후보들이 (기탁금을) 1억씩 내고 또 냈다. 많은 과정을 거쳐 제가 여기에 있지 않나"라며 "한 후보는 어디서 와서 저보고 빨리 단일화하는 건가. 왜 저한테 책임을 묻나"라고 반격했다.
한 후보는 "국민의힘에 왜 안 들어오냐는 건 사소한 문제"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한 후보는 "저로서 유일하게 국민과 국가에 봉사하는 일은 후보로 등록 안 하는 것"이라며 대선후보 등록 마감일인 오는 11일까지 김 후보와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주자로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강조했다.
한 후보는 회동 종료 뒤 취재진과 만나 "단일화 문제에 대해 속 시원한 해결책을 드리지 못해 국민께 죄송하다"고 했다. 다만 '단일화가 불발되면 11일 이후 아예 정치권을 떠나는 건가'라는 질문에 한 후보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단일화가 어느 쪽으로 되든 김 후보를 열심히,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울 것"이라고만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추진하는 단일화 진행 방식에 관해서는 "정치 최고 전문가들이 판단할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날 두 후보 회동 시각에 맞춰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소에 집결하기도 했다. 김 후보가 먼저 회동 장소에 도착하자 일부 의원은 박수를 보냈지만, 일부는 "오늘 꼭 단일화해달라"고 외치며 김 후보를 압박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을 땐 대다수가 박수를 치며 한 후보를 맞이했다. 김 후보 지지자들은 "무임승차 반대", "쌍권(권영세·권성동) 사퇴", "한덕수 아웃" 등을 외치며 반발했다.

단일화 협상 결렬에 깊어지는 金-지도부 갈등
두 후보 간 단일화 회동이 연이어 결렬됨에 따라 버티기에 들어간 김 후보와 대선후보 등록기간인 오는 11일 전 단일화를 강행하려는 당 지도부 간 갈등도 한층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양측은 이날도 날 선 말을 주고 받았다. 김 후보는 회동 뒤 기자들과 만나 "제가 당무 전반에 대해 최종적 전권을 가진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다"라며 "이런 게 다 (당) 규정에 나와있는데 완전히 무시하고 제가 이야기하는 게 단 하나도 안 받아들여지는 게 지금의 국민의힘이다. 그럴 수가 있나"라고 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그는 "5월 3일에 (대선후보로) 뽑혔는데 그날 저녁부터 당장 ‘단일화하기 전에 선거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킬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공식적으로 뽑은 후보한테 첫 마디가 말이 되나. 이걸 그냥 일반 당원이 한 게 아니라 (이양수) 사무총장이 제게 했다"고 재차 당 지도부에 불만을 표했다.
김 후보는 당 지도부가 오는 9일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를 진행한 뒤 단일화를 강행하려 하는 데 대해서도 "제가 당의 공식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설문 문항에 대한 문의도 없고 상의도 없고 일방적으로 진행해 발표하는, 그 발표를 제가 믿어야 하나"라며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과거에 어느 정치 사례에 이런 일이 있었나"라고 덧붙였다.
김 후보는 앞서 이날 방송 인터뷰에서 "대선후보 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을 서울남부지법에 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 지도부의 전국위원회·전당대회 소집에 맞서, 자신이 당헌상의 당무우선권을 가진 대선후보 지위에 있음을 확인해 달라는 취지의 소송이다.
반면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회동 전 기자간담회에서 "오늘 합의가 결렬돼도 여론조사는 계속 간다"며 "그 뒤에 11일까지 단일화를 이뤄내기 위해 혹은 대선 승리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필요하면 '결단'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결단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단일화 강행, 대선후보 강제 교체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권 위원장은 김 후보가 대선후보 등록일이 지난 뒤 한 후보와의 단일화를 진행하자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김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큰 문제 없지만 무소속 후보(한 후보)로 될 경우 국민의힘은, 기호 2번은 대선에서 없어지게 된다"며 "우리 진영 후보가 기호 2번이라는 무기와 당의 체계적 지원 없이 맨몸으로 이재명과 싸워야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반발했다.
권 위원장은 끝내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는 "결국 김 후보로 가는 것"이라며 "그럴 경우 제가 사퇴한다고 이야기했으니까 모든 점에서 김 후보와 화합이 잘 맞는 다른 지도부가 와서" 대선을 치르면 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단일화 회동 전 한 차례 의총을 소집했고, 이어 다음날 오전 11시 의총을 재소집한다고 밝혔다. 의총에서는 김 후보에 대한 단일화 압박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내 일부 중진 의원을 중심으로는 당 지도부의 단일화 강행 방침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왔다. 나경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후보 강제 교체, 강제 단일화 관련 일련의 행위는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 아니다. 명백한 당헌·당규 위반이자 정당민주주의 위배, 위헌·위법적 만행"이라며 "이제라도 멈춰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윤상현 의원도 페이스북에 "강제적 단일화는 절차의 정당성 원칙과 당내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이렇게 가면 당이 끊임없는 법적 공방의 나락으로 떨어져 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며 "이런 단일화는 감동도 없고 시너지도 없다. 원칙 없는 승리가 아니라 원칙 있는 패배를 각오해야 길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