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국민들의 이목을 끈 것은 국민의힘 대통령후보 선출과정이었다. 모두 11명이 출사표를 던져 1차 경선에서 8명, 2차 경선에서 4명, 3차 경선에서 2명의 후보로 좁혀졌고, 4차 경선에서 김문수를 최종 후보로 선출했다. 그런데 5월 1일 사법쿠데타가 일어나던 날, 대통령선거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공언했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힘에서 단일화를 해나가는 과정은 삼류드라마 막장극에 가까웠다.
막장극이 된 국민의힘 후보단일화
국민의힘 지도부는 9일 자정 무렵 비대위와 당 선관위 의결로 김 후보 자격을 전격 취소한 뒤, 10일 새벽 3시부터 1시간 동안 후보등록 신청 공고를 받아 전격 입당한 한덕수 후보를 단독 후보로 세웠다. 국민의힘은 비공개 샘플링 여론조사를 자격 취소 근거로 삼고, 다른 후보에게는 기회도 주지 않는 등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도 무시했다. 하지만 10일 밤 전 당원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후보 바꿔치기 막장극'은 막을 내렸다.
정치전문가들도 전당원 투표에서 지도부의 안건이 부결되리라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국민의힘 당원들은 대체로 권위에 순응하고, 지도부의 제안에 따라가는 편이라 지도부가 야밤에 한덕수 후보를 세웠을 때 양 진영간의 법정 공방 진흙탕 싸움을 예상했다. 하지만 전 당원투표에서 예상밖의 결론이 나옴으로써 진흙탕 막장극으로는 흘러가지 않았다. 순응에 익숙한 국민의힘 당원들도 차마 이런 막장극은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간만에 국민의힘 당원들도 현명한 집단지성을 발휘한 셈이다.
21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이번 대선을 관통할 시대정신은 '국민주권'으로 보인다. 지난 12.3 내란사태 이후에 한국 사회는 여러 층위에서 쿠데타를 경험하고 있다. 어느 정치평론가는 지난 12월의 친위 쿠데타, 여론 쿠데타, 헌재 쿠데타, 사법 쿠데타, 정치 쿠데타 등 5가지 차원의 쿠데타를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5.5 한겨레)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출과정은 정치쿠데타의 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 차원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이 적극적인 주권의식을 발휘하고 행동함으로서 아직까지는 쿠데타 세력들의 기획과 음모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21대 대선의 시대정신과 실현방안은?
한국 사회에서 이런 쿠데타의 발호를 원천적으로 막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방향에 대한 의미있는 토론회가 열렸다. 시민민의회전국포럼과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지난 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이학영 국회부의장, 정동영 국회의원, 김용태 국회의원, 김재원 국회의원 등과 공동으로 '시민의 참여와 숙의로 함께 여는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주제의 정책토론회를 열고 시민의회의 제도화·입법화를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이학영 국회부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금 우리 국민은 단지 부정한 정권을 심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시민의 직접 참여가 필요한 시점임을 강하게 외치고 있다. 시민들은 '정치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던지고 있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요구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당 중심의 정치구조는 시민의 실제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의제만으로는 정치적 책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시민의회 제도화'가 제안되고 있으며, 이는 숙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와의 접점을 찾는 중요한 시도이다"라고 말했다.
이 부의장은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정권 교체나 정치 개혁의 수준을 넘어, 민주주의의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자는 흐름이다. 그 중심에는 '참여하는 시민', '숙의하는 공동체'가 있다. 윤석열 파면과 응원봉 혁명이 그 시작이었다면, 시민의회 제도화는 본격적인 전진"이라고 하면서 "오늘의 논의가 단순한 담론을 넘어서, 실제 정치구조를 변화시키는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시민의회'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키워가며, 참여와 책임이 살아 숨쉬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응원봉 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시민의회 - 제7공화국을 여는 개헌의 방법과 경로'라는 첫 주제발표를 한 김상준 교수(경희대)는 입법·행정·사법의 영역에서 시민주권, 국민주권의 확장을 위해서는 '시민의회 3법'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무엇보다 시민의회가 제도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가칭)시민의회법'이 만들어져야 하며,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상시적으로 시민들의 주권을 강화할 수 있는 '시민주권위원회'가 설치되어야 함을 제안했다. 무엇보다 차기 정부에서 개헌이 화두가 될 것이고 국회와 정부의 힘만으로는 제대로 된 개헌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진단하면서, 헌법개정 시민의회의 숙의과정을 통해 집단지성을 모으고, 개헌과정을 통해 국민들을 통합해나갈 수 있는 '국민참여개헌절차법'의 입법을 제안했다.
두 번째로 발표에 나선 서현수 교수(한국교원대)와 김주형 교수(서울대)는 '한국 민주주의의 혁신과 시민의회 제도화를 위한 전략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를 했다. 서현수 교수는 시민의회의 제도화를 위한 전략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헌법 개정을 통한 시민의회 도입을 주장했고, 단계적·실용적 관점에서 4층위로 나누어 시민의회 도입을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4층위의 시민의회는 △헌법개정을 위한 시민의회 △주요 개혁의제 논의를 위한 시민의회 △지방의회와 연계된 지역 시민의회(주민의회) △민주적 자치 활성화 및 시민참여 생태계 구축을 위한 시민의회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다. 김주형 교수는 시민의회가 가질 수 있는 대표성의 문제, 정당성의 문제, 효과성의 문제, 진정성의 문제를 국민들에게 설득력있게 제시해야만 제도화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 번째로 '시민민주주의 시대의 지역시민의회 제도화 방안'에 대해 발표한 김의영 교수(서울대)는 시민의회가 제도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시민들의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잘 알려진 중앙정치 수준의 사례를 넘어 지역 및 풀뿌리 수준의 시민의회도 주목해야 하며, 지역 및 풀뿌리 수준의 시민의회에 관한 정책적 관심과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역 및 풀뿌리 수준의 수많은 실험이 존재하며 △둘째, 지역 및 풀뿌리 수준에서 상향식 시민의회의 실험이 가능하고 중요하며 △셋째, 시민의회 논의를 사회적으로 파급·확산해 사회적으로 시민의회 제도에 대한 인지도와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단 지방 수준에서 시민의회를 안착시켜 나가는 실험이 필요하며 △넷째, 동벨기에 모델(The Ostbelgien Model)처럼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한 해외 사례들이 있는 만큼 이런 모델을 연구하고 실험해 우리 실정에 맞는 지역시민의회를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대표자를 뽑는 일로 선거민주주의로 대다수가 생각하고 있기에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에 대해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정치인을 욕하는 것이 일상화 되었지만, 일상생활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모색은 없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분출하는 광장 민주주의의 목소리는 뜨겁지만,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지역에서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민주주의자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무늬만 민주주의 때문에, 정치평론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층위별 무작위 추첨과 숙의를 특징으로 하는 시민의회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추첨을 통해 누구나 대표자가 될 수 있으며, 숙의를 통해 집단지성을 경험하고 만들어감으로써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를 시민의회를 통해 극복해나갈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사회실험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전국 3500여개의 읍면동에서 주민의회를 설치할 수 있다. 현재의 주민자치회나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철학과 운영방식을 바꿔서 운영하면 그리 복잡하지는 않다. 현재의 무급 봉사가 아닌 적정한 활동수당을 책정하고, 무작위 추첨을 통해 적정인원의 2~3배 가량을 선발하고 1~2년 활동할 의지가 있는 주민들을 주민의원으로 위촉하면 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만큼 충분한 교육과 서로간의 학습이 이뤄져야 하고, 적절한 권한도 함께 주어져야 할 것이고, 의지가 있는 지역부터 시범적으로 진행해 나간다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작위 추첨을 통해 1달에 1~2명이 돌아가면서 학급 대표의 역할을 맡아 리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면 학교는 민주시민을 키워내는 훌륭한 교육장이 될 것이다. 작은 단위부터 시민의회라는 사회실험을 해보면 그 효과와 효능을 금방 드러날 것이다.
새로운 정부에서 국민주권, 시민의회를 기대한다
12.3 친위쿠데타와 이후에 발생한 다양한 사태를 보면서 한국사회의 엘리트 학교(서울대, 육사 등)들이 얼마나 허구적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시대정신을 읽는 지혜도, 엄청난 사회적 참상을 야기할 쿠데타를 막는 용기도, 시민들과 함께 난국을 헤쳐나가는 덕성도 대부분의 기득권층에서는 부재함을 목격하고 있다. 입신양명, 출세지상주의가 낳은 한국사회 교육의 총체적인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쿠데타와 역사적인 퇴행을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지역에서, 직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시민의회를 통해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만들어가면서 스스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런 점에서 시민의회의 제도화를 추진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민주주의 모델을 만드는 일은 다음 정부에서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토론회에 앞서 지역모델을 만들어가기 위해 6개 지역과의 시민의회활성화 협약식이 있었다. 1차로 선정된 서울의 광진구와 동대문구, 경기도의 광명시와 경기 중부지역(과천, 의왕, 군포, 안양), 강원도의 춘천시, 전남의 여수시 등 6개 지역포럼(준)은 시민의회전국포럼과 협약을 맺고, 지역을 기반으로 시민의회를 활성화시키고 지역모델을 만들어가보자는 협약식을 진행해 기대를 모았다.

한국 사회는 헌법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추상적 명제를 생활과 지역에서 구체화시킬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친위, 여론, 헌재, 사법, 정치 등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쿠데타들이 막을 내릴 수 있다. 시민의회는 쿠데타를 발본색원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고, K-democracy를 만들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이십 여일 뒤면 출범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재명 정부에서 국민주권의 시대정신과 '시민의회' 등의 새로운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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