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민주화투쟁은 지난해 11월 공학전환에 관하여 총학생회가 요청한 면담에 처장단이 나타나지 않자 학생관 앞에서 자발적으로 피켓팅을 진행하던 몇몇 재학생이 점거농성에 돌입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졌고, 학생들은 여전히 족벌비리 사학을 대상으로 가열찬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동덕여대 학생사회는 2003년에 무기한 수업거부, 단식투쟁, 철야농성, 가두행진 등의 단체행동으로 독선적 학교운영으로 문제를 야기했던 조원영 당시 총장을 비롯한 이사진 전원 사퇴 및 학내 구성원의 이사진 참여를 쟁취한 바 있다. 그러나 2011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가 조원영 일가에게 이사회 정원 9명 중 5명의 정이사 추천권을 부여했고, 2015년 교육부가 조원영의 개방이사직 임명안을 신청 하루 만에 승인했다. 그렇게 조원영은 이사장으로 동덕여대로 복귀했으나, 학생사회는 비리재단 문제 해결과 학생 자치 보장을 주요 의제로 삼아 9번의 전체학생총회를 성사시키고 4차례의 점거 농성을 하며 끈질긴 투쟁을 이어왔다.
동덕여대 졸업생인 내게 학생사회를 괄시하는 대학본부와 남성화된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고 "민주동덕"의 이름 아래 모였던 모든 순간은 자부심으로 남았고 또 자긍심이 됐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54억'이라는 허무맹랑한 피해액을 강조하는 언론보도가 연일 경쟁적으로 이어졌고, 대학생활 플랫폼 '에브리타임'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에서는 학내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모욕하고 신상정보를 유포하는 게시글이 쏟아졌으며, 일부 남성들이 교정에 무단 칩입하거나 신남성연대가 정문 앞에 집회 신고를 하는 등 여성혐오적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한 듯 본관 점거, 현수막 게시, 구호 제창 등을 금지해 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하고 50명이 넘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고소·고발·징계를 시도하는 등 학생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동덕여대 재학생 연합'은 지난 1월6일에 대대적인 "캠퍼스 환경미화"를 진행하겠다는 사무처의 공지에 항의하고자 학내 시위를 주최했고, 교정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연대의 마음을 담아 보내준 발언문이 생생하게 울렸다. 그때 나는 세종호텔 해고자로서 복직 투쟁을 이어나가는 허지희 동지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
"세종호텔에서 정리해고 당하고 싸우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한 허지희 동지는, "동덕여대의 투쟁이 세종호텔의 투쟁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명동에 위치한 세종호텔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영악화를 핑계로 정리해고를 단행한 사업장이다. 그러나 COVID-19가 사실상 종식되고 호텔관광업계에 훈풍이 불어도 세종호텔 해고자의 복직 투쟁은 쉽사리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2월13일 고진수 동지는 해고철회를 외치며 10미터(m) 높이의 구조물 위로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해야 했다. 세종호텔의 지분 중 100% 소유하고 있으며 세종호텔의 경영진을 임명하는 세종대 학교 법인 대양학원은, 더불어민주당 정을호 의원실이 제안한 4자 대면 간담회까지도 거부했다.
허 동지의 발언으로 세종호텔과 대양학원을 알게 된 나는 동덕여대와 세종호텔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동덕여대에 조원영 일가가 있다면, 세종호텔에는 주명건 일가가 버티고 있다. 세종대 학생사회는 단식투쟁, 점거농성, 수업거부 등으로 주명건 일가의 비리를 고발했고, 2004년 교육부의 종합감사를 통해 교비 횡령, 교원임용 부정 등의 혐의가 밝혀졌다.
그렇게 주명건은 이사장직에서 사임했으나, 2009년 6월 사분위는 주명건의 주변인을 임시이사로 파견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명건은 세종투재개발의 회장으로 복귀했으며, 이듬해에는 대양학원 명예이사장으로 위촉되었다.
주명건이 복귀하면서 세종호텔 노동자 탄압이 본격화됐다. 조직 개편과 부서 통폐합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이전 경영진과 맺은 정규직 전환 단체협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2001년 세종호텔에 일식 요리사로 입사한 고 동지가 일하던 일식당은 중식당이 됐고, 호텔 대표 전화를 받던 허 동지는 20년 근속상을 받았던 바로 그날 일방적인 전환배치 통보를 받았다. 세종호텔에는 한때 200명이 넘는 정규직이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의 직군이 하청으로 외주화됐고 고작 20여명의 정규직과 4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은 2007년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설치된 사분위가 족벌경영 체제를 옹호하며 대학의 공공성을 저버리고 일가의 소유물로 전락시키면서 시작됐다. 동덕여대 학생사회와 마찬가지로, 세종호텔 노동자도 학내 민주화투쟁을 통해 몰아냈던 비리 재단의 복귀를 사분위가 승인하면서 부침을 겪게 된 것이다.
월곡동, 청담동, 혜화동에 위치한 3개 캠퍼스의 모든 건물을 점거했던 동덕여대 재학생과 세종호텔을 마주보고 가로폭이 1m도 되지 않는 구조물 위로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의 투쟁은 이렇게 꼭 닮아 있다.
동덕여대 재학생 연합의 학내 시위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오이도 리프트 추락 24주기' 추모 행동이 있었던 4호선 지하철에서 허 동지를 만났고 동덕여대 혜화캠퍼스를 향해 행진했다. 이 순간들을 통과하며 나는 아주 천천히 세종호텔의 투쟁과 동덕여대의 투쟁이 다르지 않다는 그 말의 뜻을 알게 됐다.
지난 1월6일 그가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쩌면 동덕여대 재단과의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인지 모릅니다. (중략) 항상 동덕여대의 투쟁을 응원하며, 우리가 필요한 지원과 연대를 하겠습니다." 먼저 달려왔던 그 걸음에 화답하며, 세종호텔 해고노동자에게 필요한 목소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이제 우리는 서로의 배후가 되기로 결심한다. 동덕학원의 반여성적 행보와 대양학원의 노동탄압이 똑닮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또 동덕여대 학생들이 배움터로 돌아가고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길 바라며. 신년을 맞이하며 나누었던 인사말처럼 나의 투쟁이 당신의 해방이 되고 당신의 투쟁이 우리의 해방이 되는 바로 그곳에선 우리는 기어코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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