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3 내란 사태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6.3 제21대 대선이 실시된다. 주요 정당은 대선 후보 등록과 함께 정책공약을 발표하고 있지만, 2017년 조기 대선에서 경험한 것처럼 정책 선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제6공화국에서 빚어진 대통령 탄핵-조기 대선의 반복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지 않고서는 변화의 열망은 곧 냉소와 반동으로 전이될지 모를 일이다. '아직은 내란 상태'가, 어쩌면 리처드 시모어(Richard Seymour)가 <재난 민족주의: 자유 문명의 몰락>(Verso, 2024)에서 설명한 것처럼 '아직은 파시즘 아닌(not-yet-fascism) 상태'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탄핵 너머, 대선 너머 사회대개혁으로 만드는 세로운 세상"을 위해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개혁과제 118개, 세부과제 424개 등을 포함한 분야별 사회대개혁과제를 마련한 바 있다.
1)다시 민주공화국 시민이 주인되는 세상, 2)정의로운 경제와 민생이 안정된 사회, 3)평화·주권·역사정의가 실현되는 사회, 4)기후위기 너머 정의로운 생태사회, 5)모두의 행복한 삶을 위한 돌봄중심 사회, 6)좋은 일자리와 보편적 노동권이 보장되는 사회, 7)생명·안전이 지켜지는 세상, 8)모두의 존엄과 공존을 위한 성평등·인권 사회, 9)언론·정보통신·문화의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 10)식량주권과 먹거리가 보장되고, 지역이 살아나는 세상, 11)교육과 청(소)년의 삶에 평등을 여는 세상, 그리고 12)내란의 완전한 종식과 헌정질서 회복(8개 정당·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 공동정책토론회 자료집, 2025. 4. 17).
각론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더 필요하겠지만,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총론에 대한 시민사회의 합의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선에 임하는 각 정당과 후보의 입장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사회대개혁과제에 대한 동의 수준은 다르다. 선거판에서 움직임도 다르다.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반면 사회대전환 연대회의의 단일 후보로 선출된 민주노동당의 권영국 후보는 노동당, 녹색당과 노동·사회단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렇게 개혁·전환의 현실 결합은 나름의 전략적 선택으로 나타나고 있다.
선거용 정책공약은 집권 후 여러 이유로 수정·보완·폐기되기 마련이지만, 공식 약속이라는 점에서 그 내용과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의 영향과 그 대응 방식에 따라 정치체제가 변화를 겪게 된다는 이론과 전망을 고려하면, 기후·에너지·생태 분야에 대해 진지한 정책 검증이 요구된다.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공개 자료를 보면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 개혁신당과 이준석 후보의 약속은 사실상 텅 비어 있다. 굳이 찾자면 AI 산업에 필요한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 대형·소형 원전을 확대하겠다는 정도다(김문수 후보). 그들에게 우리의 미래는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미래세대를 위해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겠습니다"라는 정책을 통해 자신의 기존 탄소중립 에너지전환 입장과 유사한 방향을 제시한다. 석탄화력발전 폐쇄 시점을 2040년으로 정했다는 점은 흥미롭지만, 탈석탄 정의로운 전환의 대안은 마땅치 않다. 2030년까지 서해안, 2040년까지 한반도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 제안은 새롭지는 않지만, 재생에너지 송전망 갈등이 발어지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거나 예방하는 방법에 대한 고려는 없다.
두 후보의 강조점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재생에너지(이재명 후보) 대 원전(김문수 후보)으로 대립각이 형성된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10대 공약에는 언급이 없지만, 요즘 이재명 후보의 발언 뉘앙스로 볼 때 문재인 정부의 원전 일부 축소 정책 방향에서 후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AI·반도체 산업과 원거리 대규모 (재생)에너지 송전, 각각과 이 둘을 무조건적으로 연결하는 사고는 두 후보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만 주장해서는 곤란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도 문제다. 지역별 재생에너지 자립 개념을 설정해야 한다는 제안, 민간·해외자본 의존에서 벗어나 공공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 등 최근 에너지전환의 화두에 대해서 침묵한다. 이미 민주연구원의 연구보고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그린뉴딜 3.0 정책 과제>(2024)에서 검토한 주제이기도 하다.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다음 "기후위기 너머 정의로운 생태사회" 제안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다른 정당과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실한 편이다.
1)기후위기 책임묻는 누진세 강화와 과감한 재정투자로 주택·교통·식량·에너지의 생태공공성 강화, 2)석탄발전소 조기 폐쇄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및 발전노동자 고용 보장, 3)기후생태 위기에 대응하는 헌법 개정, 4)2035 온실가스 감축목표 대폭 강화와 '탄소중립녹색성장법'의 '기후정의법'으로 전면 개정, 5)신공항 건설, 국립공원 케이블카 등 보호지역 내 개발 등 난개발 중단, 6)노후 핵발전소 폐쇄와 신규 핵발전소․SMR 건설 중단 및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 재수립, 7)탈플라스틱과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 8)4대강 자연성 회복과 신규 댐 건설 계획 폐지, 지속가능한 물관리계획, 9)해양오염 방지, 2030년까지 해양 보호지역 30% 확대 및 갯벌 복원.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의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정의로운 탈탄소사회로의 전환"은 2035년 온실가스 감축 70%, 2035년 탈석탄 및 재생에너지 60%, 2040년 탈핵 등 탈탄소 에너지전환의 핵심 방향과 로드맵, 그리고 2030년까지 녹색공공투자 500조 재원조달 방안을 담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부분을 큰 틀에서 보여준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발전공기업 개혁 및 통합을 통한 전환기업화 추진, 재생에너지 주권 확보, 지역 버전 공공재생에너지 추진 등 공재생에너지 및 공공협력 확대를 위한 전략 방향은 누락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기후생태 위기에 대응하는 헌법 개정"을 위해서, 즉 생태사회공화국 개헌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절차와 과정도 중요하다. 일각에서 검토하고 있는 '기후시민의회'나 '기후시민 개헌의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동시에 혁신적으로 기획한 다양한 방식의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시민사회의 자발적 또는 공동의 경험을 예시적으로 쌓아가는 것에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번 대선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방법을 하나 꼽자면, 권력을 누구와 어떻게 나누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것이 아닐까. 이 대답은 우리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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