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노조 집행부의 임금 인상 이면 합의를 비판했다가 노조에서 제명된 사실이 알려졌다. 조합원들은 노조를 상대로 부당 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삼성전자노조의 한기박 기흥지부장과 우하경 대의원은 지난 22일 노조를 상대로 제명 징계 처분을 취소하는 징계 무효 확인 소송 및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수원지법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노조 징계위에서 받은 '3년 간의 제명 및 피선거권 박탈' 징계가 부당하기에 취소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징계를 받은 이유는 노조 집행부 비판 활동 때문이다. 지난 3월 노조 위원장이 집행부 7명의 처우 개선을 두고 회사와 별도로 추가 임금 인상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두 사람을 포함한 대의원 7명은 노조 내부에서 이를 비판하고 공론화하는 활동을 벌였다. 대의원들이 모인 채팅방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비판 성명서를 썼으며, 성명서 내용을 조합원들과 공유하며 토론했다. 조합원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공개하기도 했다.
이같은 집행부 비판 활동은 모두 노조 규약 위반 사유가 됐다. 집행부는 간담회 영상 공개 및 이에 따른 조합원 명예훼손, 반조직 행위, 업무 방해 등을 사유로 한 지부장을 포함한 대의원 4명을 징계위에 회부했다. 그리고 지난 4월 대의원 1명에겐 영구 제명, 한 지부장과 우 대의원에겐 제명 및 피선거권 박탈 3년, 나머지 대의원 1명에겐 권리정지 3개월 등의 중징계를 내렸다.
지난 22일 <프레시안>과 만난 한 지부장은 "납득하기 어려운 징계 사유는 더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한 지부장이 '기흥·화성지부장'이란 명칭을 지부가 둘로 분리된 후에도 4개월간 계속 썼다며 노조 규정 위반을 적용했다. 한 지부장은 지부 조합원들이 있는 카카오톡 비공개 채팅방에 코드를 공유한 적 없는 대의원이 입장해 그를 강퇴시킨 적이 있는데, 이 또한 '모욕'이라며 징계 사유에 포함됐다. 조합원들이 반대해 부결됐던 지난해 임금 잠정합의안 반대 활동에도 특정 조합원 명예훼손, 반조직 행위 등이 적용됐다.
또 다른 대의원은 대의원대회 중 집행부 주장을 듣다가 도중에 나가면서 혼자 욕을 내뱉었는데, 그게 주변에 들렸다는 게 노조 명예훼손, 반조직 행위 등의 징계 사유가 됐다.
이들은 징계에 불복해 지난 15일 재심을 치렀으나 원심이 유지됐다. 징계받은 대의원 중 한 명은 노조를 탈퇴했다. 조합원들도 노조의 이면 합의가 알려진 후 지금까지 6000여 명이 탈퇴했다. 한 지부장과 우 대의원은 "정당한 노조 활동에 대한 부당 징계"라며 집행부를 대상으로 한 달 넘게 싸우다 이날 소송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면 합의'가 반노조 행위... 비판은 민주주의 상식"
두 사람은 지난 22일 오후 12시 징계 취소 소송을 알린 기자회견에서 "조합원 누구나 비판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조합 안에 보장돼야 한다"며 "노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가처분 신청을 대리한 류하경 변호사(법무법인 물결)는 "승소 가능성은 높다"며 "터무니없는 징계인 데다, 조합원 제명은 통상 폭행, 성폭행, 횡령, 배임 등의 큰 문제로 내려지는 중징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류 변호사는 "오히려 밀실에서 조합원들에게 보고하지 않고 전임자 본인들만 회사와 이면 협약을 체결하는 게 반노조 행위"라며 "이건 불법행위기도 해, 부당징계를 시정하지 않는다면 추가 소송도 고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투쟁에 연대하는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지회장은 징계 사유 대부분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합원이 노조 활동을 하며 반대 성명을 내고 전단을 배포하고, 서로를 비판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 일상적"이라며 삼성전자노조 집행부의 비민주성을 비판했다. 그는 "그들이 원하는 건 노조 활동 포기하고 떨어져 나가라는 것 아니냐"며 "끝까지 싸워서 민주노조 깃발을 세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의원 40여 명 중 이들의 싸움을 지지하며 돕는 이들은 5명 남짓이다. 노조를 상대로 한 싸움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22일 41개 사회단체·노조와 1900여 명의 시민들은 이들의 부당징계 철회를 촉구하는 연서명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공동 성명서를 내 "집행부가 조합원들과 대의원에게 알리지도 않고 별도 이면 합의로 조합원 평균 인상률보다 높은 인상률로 (임금 인상에) 합의했다는 것은 민주노조운동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전국삼성전자노조가 토론의 자유,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노조로 거듭날 수 있길 희망한다"며 "용기 있게 내부 고발을 하고 노조의 단결과 민주적 혁신을 위해 노력한 이들이 노조에서 쫓겨나선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삼성 무노조 탄압을 뚫고 성장한 삼성전자노조에서 지난해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삼성전자노조의 노동자 권리를 위한 역사적 진전이 멈추질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조 위원장에 부당 징계 논란과 징계 취소 소송과 관련해 22~23일 전화·문자 등으로 노조 입장을 질의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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