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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는 무슨 돈으로 우리에게 줄 선물을 사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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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는 무슨 돈으로 우리에게 줄 선물을 사는걸까?

[최재천의 책갈피]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지카우치 유타 글, 김영현 옮김

이름을 밝히지 않는 '증여'자로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있다. 산타클로스. 세상은 '시장경제라는 교환의 논리의 한복판에서 증여를 성립시키기 위해' 산타클로스를 발명했다. 그런데 시대와 문화와 동네에 상관없이 어떻게 산타클로스라는 존재는 가능할까.

이는 산타클로스라는 장치가 '이건 부모가 주는 증여야.'라는 메시지를 지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산타클로스 덕분에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부채의식을 떠안을 필요 없이 순수하게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산타클로스는 유효기간이 있다.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부모였다는 것을 아이가 알게되는 순간 산타클로스의 역할은 끝이 난다. 우리가 '산타클로스 같은 건 없어.'라는 사실을 안 순간, 더 이상 어린아이일 수 없는 것이다. 저자 지카우치 유타의 설명.

"요컨대, 산타클로스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시간'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시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 책은 "증여의 원리, 언어의 본질을 밝혀낸 비트겐슈타인 철학. 이 두 가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세계의 구조를 알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증여가 키워드인만큼 저자가 생각하는 증여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한다. 이 책에서 증여는 "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김에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그리고 그런 것의 이동을 '증여贈與'"라고 부른다.

증여에 대한 철학적 결론이다. 요약하자면 '증여는 우리 앞에 불합리한 것, 즉 변칙현상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아니, 시장경제라는 체제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빈틈' 자체가 바로 증여다. 잠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를 빌어온다. 시장경제라는 체제와 교환의 논리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증여라는 변칙현상이 보이게 된다는 것.

저자가 인용한 아즈마 히로키의 문장이 더 쉬울 수도 있다.

"증여는 오히려 시장 속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증여란 교환의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구입한 것이 다른 곳에 가거나 구입하지 않은 것이 내게 오는 것이 증여의 본질 아닐까요. 일단 교환이 있어야 증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책 제목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보다는, 부제인 <자본주의의 빈틈을 메우는 증여의 철학> 이 부분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일본에 놀랄 때가 많지만 그 중에 하나가 현실을 분석해내는, 서양의 방법론을 끌어오는, 그리하여 자신들만의 철학을 결론 짓는 태도들이다.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 종교관을 이야기하곤 한다. 결국 삶은 세상을 해석하는 철학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지카우치 유타 글,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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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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