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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 정치학'의 위험한 유혹! '쉬운' 이준석 정치의 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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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 정치학'의 위험한 유혹! '쉬운' 이준석 정치의 해악

[기고] 유럽 극우와 이준석 현상이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위기

독일 동부 작센주의 한 소도시. 실업률이 치솟고 공장이 문을 닫자, 시민들의 분노는 금융자본이나 신자유주의 정책이 아닌 시리아 난민을 향했다. 독일대안당(AfD)이 제시한 "이민자가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간명한 구호는 복잡한 현실보다 훨씬 쉽게 받아들여졌다.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이민자들은 대부분 독일인들이 기피하는 저임금 서비스업에 종사했고,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자동화와 중국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복잡한 진실보다는 단순한 적대감이 더 강력한 정치적 동력을 만들어냈다.

이런 정치적 작동 방식은 프랑스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가 말한 '희생양 메커니즘'과 닮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인간 사회는 위기 상황에서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특정한 희생양을 지목하고, 그 희생양을 배제함으로써 공동체의 질서를 회복한다. 물론 그것은 진정한 해결이 아니라, 억눌린 불안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일 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마코스(pharmakos) 의식에서 시작된 이 패턴은 현대에도 여전히 반복된다. 차이가 있다면 제의적 폭력이 정치적 수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 메커니즘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불안과 구조적 문제 앞에서 정치는 자주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외국인일 수도, 여성일 수도, 장애인일 수도 있다. 이들은 언제든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중요한 것은 희생양의 선택이 우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약자이면서도 가시성이 높은 집단, 저항할 힘은 약하지만 상징적 효과는 큰 대상들이 선택된다.

공정이라는 이름의 재정의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유사한 양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고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구조적 문제보다 여성할당제나 장애인 고용의무제 같은 소수자 정책에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준석이 앞세운 '공정'과 '능력주의' 담론은 바로 이 정서에 호응하는 메시지다. 그의 정치적 성공은 이런 분노의 에너지를 조직화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의 '공정'은 이미 정의된 규칙이 아니라, 경쟁에서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일종의 해석 투쟁이다. 이준석은 여성과 장애인, 노년층 같은 집단이 기존 질서를 '왜곡'한다고 주장하며, 기존 구조 자체는 별문제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불평등한 출발선은 무시되고, 결과만 공정하면 된다는 논리가 그 뒤를 받친다. 이는 마치 100미터 달리기에서 어떤 선수에게는 10미터 핸디캡을 주고 시작한 뒤, 핸디캡을 받은 선수가 이기면 "불공정하다"고 외치는 것과 같다.

특히 '능력주의'라는 개념은 더욱 미묘한 함정을 품고 있다. 능력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형성된다는 믿음은 계급과 환경의 영향을 은폐한다. 서울 강남의 학원가와 지방 소도시의 교육 격차, 부모의 사회적 자본과 경제적 배경이 만들어내는 차이는 '개인의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와 같은 '희생양 정치학'은 구조적 개혁보다는 손쉬운 분노 해소에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청년 세대가 겪는 어려움은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 교육과 노동 시장의 불일치, 부동산 가격 급등 등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런 이슈는 뒤로 밀리고, 누군가에게 '특혜'를 줬다는 인식이 더 강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미디어와 알고리즘이 증폭하는 분노

현대의 희생양 정치는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셜미디어와 개인화된 알고리즘이 분노를 증폭시키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선호하고,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은 극단적 의견일수록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한다. 이런 환경에서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다루는 심층적 분석보다는 "누가 문제인가"를 지목하는 단순한 메시지가 더 빠르게, 더 넓게 퍼진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희생양에 대한 공격이 더욱 거침없어진다. 댓글과 게시글을 통해 집단적 린치가 이루어지고, 이는 다시 오프라인의 정치적 담론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들은 이런 온라인 여론을 의식해 더욱 자극적인 발언을 하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우리 안의 타자 만들기

유럽 극우정당들이 겨냥하는 이민자나 난민은 분명한 '외부자'다. 국경 밖에서 들어온 존재이기에 배제의 논리도 단순하다. "독일인을 위한 독일", "프랑스를 프랑스답게" 같은 슬로건이 가능한 이유다. 이들은 문화적, 종교적 차이를 강조하며 '진짜 국민'과 '가짜 국민'을 구분한다. 브렉시트를 주도한 영국의 정치세력들도 유사한 논리를 사용했다. EU 회원국 출신 노동자들을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 침입자'로 규정하면서 복잡한 경제 문제를 단순한 배제의 논리로 치환했다.

반면, 이준석이 지목하는 여성이나 장애인, 노년층은 명백히 우리 사회의 '내부자'다. 따라서 직접적인 배제는 정치적으로 위험하다. 이 지점에서 자유주의적 '공정' 담론이 역할을 한다. 혜택과 배려를 '특혜'로, 정책을 '역차별'로 재정의함으로써 사실상 배제 효과를 얻는다. 이는 '타자 만들기'의 새로운 형태다. 물리적 국경이 아니라, 심리적 선 긋기를 통해 내부에서 외부를 만든다.

이런 방식의 타자화는 더욱 교묘하다. 표면적으로는 평등과 공정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기존의 불평등 구조를 온존시킨다. 여성이나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공격할 때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정작 그 평등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비난할 때도 "다른 시민들의 불편"을 강조하면서, 그들이 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시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은 회피한다.

'희생양 정치학'이 힘을 얻는 근본적 배경에는 경제적 불안이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 심화된 불평등, 고용 불안정, 사회적 이동성의 감소는 중산층과 노동계급 모두에게 위기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치적 비용도 크다. 따라서 포퓰리스트들은 더 쉬운 해법을 찾는다. 불안의 원인을 특정 집단에게 돌리는 것이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브라질 보소나로의 반페미니즘, 인도 모디의 힌두 민족주의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복잡한 세계화의 부작용을 단순한 적대 관계로 치환하면서 정치적 지지를 얻는다. 한국에서도 경제성장률 둔화, 청년실업 증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의 문제가 '공정' 담론과 결합되면서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존의 정치학을 향하여

희생양 정치학은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에너지를 끌어모을 수 있다. 누구를 탓할지 정해주면, 분노는 방향을 잡고, 정치적 응집력은 높아진다. 그러나 그 대가는 치명적이다. 독일에서는 AfD 부상 이후 외국인 혐오 범죄가 급증했고, 프랑스에서는 무슬림 공동체의 고립이 심화되었다. 한국에서도 젠더와 세대 갈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휠체어 시위에 대한 비난, 여성 정책 기사에 달리는 악성 댓글은 그 그림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갈등이 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를 가진 시민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다. 하지만 희생양 정치학은 이런 다원성을 위협한다.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강화하고, 대화와 타협의 여지를 줄인다.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권위주의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동력이 된다.

이와 대조되는 길이 있다. 공존의 정치학이다. 공존의 정치는 '누가 더 받았는가'가 아니라 '왜 어떤 이들은 덜 받게 되었는가'를 묻는다. 희생양을 만들기보다, 사회의 구조적 불균형을 직시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다. 갈등은 조정의 대상이지,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공존의 정치학은 다양한 형태로 실현될 수 있다.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한 가지 예다. 높은 세율과 강력한 복지 제도를 통해 불평등을 줄이고, 모든 시민이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제로섬 게임의 논리가 약화되고, 상호 연대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다른 길은 참여민주주의의 확대다. 시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면, 정치인들이 쉽게 희생양을 만들어내기 어려워진다. 시민배심원제, 참여예산제, 공론장 같은 제도들이 그 예다.

이런 제도들은 시민들이 복잡한 사회 문제를 직접 다루면서,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선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돕는다.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

공존의 정치는 복잡하다. 단순한 분노보다 복잡한 연대가 필요하고, 누군가를 배제하는 대신 모두를 위한 새로운 질서를 상상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민주주의는 더욱 민주적이 된다. 연대는 동질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청년과 노인, 남성과 여성,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이런 연대의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세대 간 연대, 돌봄 노동의 사회적 분담을 위한 성별 간 연대, 포용적 성장을 위한 계층 간 연대 등이 그것이다. 이런 움직임들은 여전히 초기 단계이고,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희생양 정치학의 파괴적 동력에 맞설 수 있는 건설적 대안임에 분명하다.

공정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정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약자를 겨누는 정치가 아니라, 약자를 품는 정치일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정치의 언어는 분노를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길을 찾는 나침반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은 배제가 아닌 포용, 대립이 아닌 연대, 분열이 아닌 통합이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의 진정한 모습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이재명 대통령 취임선서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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