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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커피 이야기] ⑥커피가 건네는 시원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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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식품전문기자의 커피 이야기] ⑥커피가 건네는 시원한 위로

커피에 탄산·스파이스·젤라틴이 더한 이색 음료와 디저트, 그리고 로부스타 가격이 바꾼 한 잔의 경제학

▲ 개성적인 향을 지닌 향신료를 곁들인 커피 문화가 있는 홍콩의 카페. 홍콩은 연유를 넣은 밀크커피에 흰 후추를 뿌린 데서 유래한 ‘후추 커피(胡椒咖啡)’가 태어난 곳이다. ⓒ프레시안(문상윤)

여름 더위가 극성일수록 커피 한 잔이 주는 위안은 오히려 커진다. 문제는 뜨거운 잔을 손에 쥐기엔 기온도 체감 습도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 세계 카페 시장은 매년 6월이면 ‘얼음·거품·시럽’으로 무장한 냉음료 전쟁터가 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콜드브루·에스프레소 토닉·아포가토·커피 그라니타처럼 커피가 주연이면서 동시에 디저트이기도 한 메뉴가 쏟아진다.

이색 레시피를 맛보는 일은 단순한 음료 소비를 넘어 한 나라의 기후·식문화·트렌드를 읽는 미식 여행이기도 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커피 수요는 20년 새 60%가량 뛰었다. 그 견인차 중 하나가 콜드브루다.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 2024년 보고서에 의하면 글로벌 콜드브루 시장은 2024년 31억 6000만 달러에서 2032년 162억 달러까지 연평균 22.7 % 성장할 전망이다.

콜드브루의 강점은 추출 온도가 낮아 쓴맛·산미가 줄고 대신 단맛·초콜릿 노트가 살아난다는 점이다.

▲ 베트남 ‘카페 탄(tan.)’의 여름 시그니처 메뉴. 와인 글라스에 담은 싱글오리진 콜드브루와 연유 아이스 라테가 한 트레이에서 진하고 달콤한 맛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프레시안(문상윤)

진한 원액을 얼음에 붓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식히기 충분하지만 요즘 카페들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질소를 주입해 부드러운 크레마를 만든 ‘나이트로 콜드브루’, 라임 시럽으로 산뜻함을 배가한 ‘시트러스 콜드브루’, 박하·타임 같은 허브를 우린 ‘보태니컬 콜드브루’가 등장하며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혔다.

탄산수·토닉워터와 에스프레소를 섞은 ‘에스프레소 토닉’은 북유럽 로스터들이 주도해 SNS에서 입소문을 탔다.

커피 머신 제조사 하드탱크가 2024년 발표한 RTD 보고서에 따르면 캔·병 형태의 에스프레소 토닉은 “새로운 고객층을 유입하는 급성장 세그먼트”로 지목됐다.

레시피는 단순하다. 얼음 가득 채운 잔에 토닉워터를 붓고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천천히 띄워 층을 만든다.

오렌지 슬라이스를 포갠 뒤 살살 저으면 시트러스·삼나무·진토닉을 연상시키는 향이 퍼진다.

토닉 대신 자몽 탄산수나 무가당 진저에일을 쓰면 단맛이 덜하고 한여름 목 넘김이 가벼워진다.

에스프레소를 갓 스쿠핑한 젤라토 위에 붓는 아포가토는 아이스크림이 녹으면서 크림·설탕·커피가 자연스럽게 섞여 디저트와 음료의 경계를 허문다.

이탈리아 요리연구가 에미코 데이비스의 기록에 따르면 ‘affogato’는 “커피에 ‘익사시킨’ 젤라토”라는 뜻 그대로 전후(戰後) 이탈리아 카페 문화와 함께 대중화됐다.

최근엔 피스타치오·말차·다크초콜릿 젤라토에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를 곁들이는 식으로 변주가 거듭된다.

커피인이 만든 디저트라는 콘셉트 덕분에 국내 로스터리에서도 여름 한정 메뉴로 채택하는 곳이 늘고 있다.

시칠리아에서는 진한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녹여 반쯤 얼린 뒤 포크로 긁어내는 ‘커피 그라니타’를 아침빵(브리오슈)과 곁들인다.

샌프란시스코·멜버른 카페들은 이를 접목해 ‘모히토 그라니타’처럼 화이트럼·라임즙을 섞어 칵테일 전주곡으로 내기도 한다.

한편 일본 다과 문화는 1960년대부터 콜드브루에 젤라틴을 더해 ‘커피 젤리’를 만들었다.

사각큐브에 연유·생크림을 부어 먹거나 라테 위에 투명 젤리를 띄워 “쿠니쿠니한” 식감을 강조한다.

SNS 쇼트폼 영상에서 ‘커피 젤리 탭핑’ 사운드가 인기라 여름철 재조명되는 메뉴다.

한편 올여름 카페 메뉴판에서 가장 눈에 띄는 흐름은 단맛과 매운맛을 교차시키는 ‘스위시(Swicy)’ 트렌드다.

Better Homes & Gardens 2024년 음료 리포트가 지적하듯 글로벌 체인들이 앞다투어 스파이스 커피를 선보이면서 시장을 넓히고 있다.

개성적인 향을 지닌 향신료를 곁들인 커피 문화는 지역마다 특성을 달리한다.

홍콩에서는 1950년대 부두 노동자들이 몸을 녹이려 연유를 넣은 밀크커피에 흰 후추를 뿌린 데서 ‘후추 커피(胡椒咖啡)’가 태어났다. 지금도 카우룽의 차찬텡에서는 부드러운 연유의 단맛 뒤에 알싸한 후추 향이 이어지는 이 레트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스페셜티 카페들은 이를 현대적으로 변주해 콜드브루에 흑후추 시럽과 라임즙을 더한 ‘페퍼 콜드브루’를 여름 한정으로 내놓기도 한다.

북미 카페들은 핑크 페퍼콘 시럽을 넣어 베리처럼 산뜻한 매운맛을 강조하거나 꿀을 곁들여 에스프레소 토닉의 탄산감과 매운 여운을 동시에 살린다.

이렇게 향신료는 커피의 단맛과 산미를 돋보이게 하면서 혀끝에 짜릿한 피니시를 남겨 무더위 속에서도 한 잔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무알코올이 아쉽다면 베트남·브라질 커피 바리스타들이 애용하는 ‘코코넛 커피’를 생각해볼 만하다.

블렌더에 얼음샷·로부스타·코코넛밀크를 넣고 갈아 슬러시처럼 제공하면 라테보다 포만감이 적고 당도는 은은하다.

반대로 칵테일 바에서는 럼·커피리큐어·라임을 젓는 ‘마자그란(mazagran)’이 여름 시그니처로 부활 중이다.

로스팅 팽창과 냉음료 수요가 겹치는 6~8월은 생두 가격 기복이 가장 클 때다.

올해는 특히 로부스타가 변수다. 작황 부진에 투기 자본까지 겹치며 베트남산 가격이 사상 최고로 치솟았다.

원가 부담을 줄이려면 카페 입장에선 아라비카 대비 가성비가 높은 선택적 로부스타 블렌딩이 필요하기도 하다.

반대로 소비자는 각 브랜드가 제시하는 대체 레시피, 즉 브라질·우간다산 로부스타나 에티오피아 내추럴 아라비카를 섞은 새로운 블렌드를 통해 풍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여름 한가운데 서면 카페 메뉴판이 가장 다채롭다. 거품·얼음·스파이스·알코올·젤라틴까지 커피는 더위를 식히는 동시에 오감을 자극하는 실험의 재료가 된다.

콜드브루 잔에 라임을 띄우거나 바닐라 젤라토 위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붓는 단순한 변화만으로도 커피는 냉음료 혹은 디저트로 성격을 바꾼다.

더운 날씨가 이어질수록 우리 손에 쥔 한 잔의 커피는 그 자체로 작은 축제가 된다.

점점 더워지고 있는 올 6월 진한 원액 한 모금과 차가운 달콤함이 만나는 순간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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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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