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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 없었다'던 한전KPS, 거짓말? 김충현 휴대전화에 카톡 지시 '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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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 없었다'던 한전KPS, 거짓말? 김충현 휴대전화에 카톡 지시 '빼곡'

시민사회단체 100여 개 모여 '김충현 사고 대책위' 출범…"투쟁 거점, 이젠 용산"

태안화력발전소 고(故) 김충현 씨 산재 사망 사건과 관련해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가 '고인이 임의 작업을 했다'고 밝혔으나, 김 씨의 휴대전화 메신저에서 원청에 작업 완료를 보고한 기록이 다수 확인된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초기 원청의 허위 보고 정황인 동시에 불법 파견 정황을 드러내는 증거다.

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12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씨의 휴대전화 속 업무 지시·보고 기록을 공개했다. 대책위는 지난 11일 경찰로부터 돌려받은 김 씨 휴대전화의 카카오톡 메신저 대화 기록을 분석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김 씨의 카카오톡엔 한전KPS가 지시한 작업의 완료를 알리는 내용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며 "한전KPS 직원으로부터 작업 지시를 받아 TBM(작업 전 안전 검토 회의) 일지를 작성하고, 작업을 완료하면 카카오톡으로 보고 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전KPS는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정비 업무를 도급받은 1차 하청업체다. 김 씨가 고용된 한국파워O&M은 한전KPS로부터 '경상 정비' 업무를 재하청받은 2차 하청업체다.

▲고 김충현 씨 휴대폰에 있는 한전KPS 소속 직원과의 6월 2일 사고 발생 직전의 대화내용. ⓒ대책위
▲6월 2일 사고가 발생한 작업 내용이 적힌 TBM 일지. ⓒ대책위

대책위에 따르면, 김 씨와 가장 업무 대화를 많이 나눈 직원은 한전KPS 기계1팀 소속 김아무개 씨였다. 김충현 씨가 "다 됐습니다"라며 작업물 사진을 같이 올리면, 이 직원이 "고맙다", "애썼네, "고생했다"라고 답한 기록이 일상적으로 남아 있었다.

지난 2일 사고 당일 업무 대화도 발견됐다. 김 씨는 이날 오전 용접 전에 부품 표면을 다듬는 래핑(Lapping) 작업을 먼저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밸브 4개의 표면을 다듬은 후 결과물 사진을 찍어 원청 직원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냈고 TBM 일지도 남겼다. 이후 맡은 사고 발생 작업인 '특수 밸브핸들' 제작도 김 씨는 TBM 일지에 남겼다. 일지 오른쪽 상단엔 원청 한국KPS 직원의 서명이 적혀 있다.

김충현 씨의 동료인 김영훈 한국KPS비정규직지회장은 이를 두고 "명백한 불법파견의 증거"라며, 원청을 겨냥해 "사람이 죽어도 하청에 하청이니까 우리가 시킨 게 아니라며 죄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이다"라고 비판했다.

김 씨 동료들의 현장 안전 문제를 조사 중인 대책위는 하청 노동자들이 일상적인 산재 은폐와 '위험의 외주화' 문제에 노출돼 있다 했다.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 다친 사람은 많았지만 산재 처리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난 1월 고온 설비에 데어 2도 화상 진단을 받았던 조합원도 회사로부터 공상 처리를 권고받고 산재 신청을 하지 못했다.

▲고온‧고압의 스팀을 배관에 주입하다 2도 화상을 입은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의 오른손 모습. ⓒ대책위

최 상황실장은 "이들이 가장 자주 하는 일 중 하나가 200킬로그램(kg) 무게의 터빈용 냉각수필터를 뜯어내 운반하는 일인데, 2차 하청업체가 가진 장비라곤 간단한 공구뿐"이라며 "운반 트럭도 없어서 원청 트럭을 빌리거나 개인차량을 이용했고, 이것도 없으면 리어카에 싣고 그 넓은 발전소 현장을 이동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태안화력 내 물 위에 태양광 패널을 띄워놓은 발전시설인 수상 태양광 발전시설에서도 일한다. 최 실장은 이들이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빠른 환경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밧줄 하나에 의지해 작업한다"며 "파손되고 부실한 부력제는 사람이 밟으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라고 말했다.

회견에 참석한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는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시 지속적 업무를 인위적으로 분리해 도급을 주면, 권한과 책임이 분리돼 안전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며 "다단계 하청구조를 줄이고, 고용구조를 일원화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권한과 책임을 접근시키고 안전시스템을 정상화할 수 있는 해법이다"라고 밝혔다.

▲6월 12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프레시안(손가영)

서부발전·한전KPS 중대재해처벌법 고발 예정

이날 대책위는 100여 개 전국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노조 등이 함께 참여하는 연대체로 공식 출범한다고 알렸다.

대책위 공동대표를 맡은 조현철 신부는 여는 발언에서 "고인은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탄핵 집회에 참석했고 사무실 책상 위엔 <이재명과 기본소득>이란 책이 놓여 있었다"며 "늘 '더 나은 나'와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애쓰며 살았던 노동자가 한순간 스러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더 좋은 세상'이란 과제는 '그저 운이 좋아 살아남은' 우리에게 남았다"며 "대책위는 고인에 대한 충분한 애도, 철저한 진상 규명, 확실한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책위의 각 대표자는 지난 10일 태안의료원 김충현 씨의 빈소에서 첫 회의를 열고 향후 투쟁 계획을 정했다. 대책위는 "다음 주부터 투쟁 거점을 용산으로 옮긴다"며 "사고 진상조사 과정에서 대책위를 배제한 고용노동부를 향한 투쟁도 전개한다"고 밝혔다.

또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서부발전과 한전KPS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고소·고발하겠다"며 "정의로운 전환과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발전 노동자들이 예정한 오는 8월 총파업을 지지하며 함께 하겠다"고 계획을 발표했다.

투쟁 계획을 밝힌 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지난 6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요구안을 전달했는데, 아직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며 "그사이 서부발전은 하청사를 단속하며 근로감독을 철저히 대비하고 있고, 고용노동부는 당사자를 배제하고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엄 위원장은 "모든 일을 신속하게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한 답만은 늦게 한다"며 "그래서 우리는 대책위를 구성하고 투쟁 계획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회견 종료 직후 요구안을 들고 대통령실로 행진하려 하자, 대통령실의 노동비서관실 행정관이 회견 현장으로 나와 엄길용 위원장,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권영국 대표 등 대책위 대표들과 5분가량 면담했다.

권영국 대표는 "일방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며 "지난 김용균 사망 때처럼 대책위와 유족들과 실제로 협의할 수 있는 소통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일 사고 진상조사에 대책위, 유족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는 요구안을 전달한 이들은 "일주일이 지났다. 오는 13일까지 답변을 줄 것을 확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통령실 행정관은 거듭 '논의 중이다', '곧 연락드리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기자회견 종료 직후, 대통령실 노동비서관실 행정관이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 나와 대책위 대표단과 5분가량 면담했다.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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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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