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노동 분야 대선공약을 만드는 데 직접 관여한 인사가 공개 토론회에 참석해 공약의 취지와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권리 보장, 노동시간 단축, 산업재해 감축 관련 공약이 주 소재였다.
정길채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13일 서울 영등포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연 '새 정부, 노동정책 국정과제의 핵심방향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새 정부 노동정책 공약 과제별 흐름도'를 발표했다. 정 위원은 2017년 대선 때부터 민주당 노동공약작성 과정에 참여해왔다.
정 위원은 먼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 버전 1.0이었다면, 2022년 대선 공약이 버전 2.0 정도였던 것 같고 이번 대선공약은 제 평가로는 버전 2.5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집권이 가능한 정당에서 담기를 꺼려했던 여러 내용을 공약화해 냈던 것 같다"고 총평했다.
그는 다만 "공약을 만든 사람과 이를 해석해 국정과제로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며 "공약을 만든 사람 입장에서만 말씀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부터 말하는 과제는 중요도에 따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가장 화두는 일하는사람법…노동시간 단축, 법제화는 안 할 것"
본격적인 공약 설명에 들어가 정 위원은 "가장 화두는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이라고 짚었다. 이는 헌법에 규정한 "모든 국민이 가진 근로의 권리"에 따라 플랫폼·특수고용 등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규정하고 이에 대한 국가의 보장의무를 명시한 법안이다. 여기에는 △차별·괴롭힘을 받지 않을 권리 △노동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받을 권리 등이 포함됐다.
민주당은 이와 함께 플랫폼·특수용 등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개별 노동관계법 개정을 병행할 계획이다. 정 위원은 사용자에게 노동자성 입증책임을 부여하고 사용자에게 '반증권'을 부여하는 "근로자 추정 제도를 근로기준법에 도입하면 (플랫폼·특수고용 등) 근로자 오분류를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를 들었다.
정 위원은 일하는사람법의 추진방식에 대해서는 "경영계 반발이 커 사회적 대화로 하자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러면 5년 안에 안 끝난다"며 "전문가TF를 만들어 압축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민의힘이 비슷한 취지로 준비했던 노동약자지원법에 담긴 내용을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잘 정리하면 합의가능한 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강화와 관련된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도 정 위원은 "노조법 2, 3조 개정은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위원은 또 "이번 공약을 만들면서 가장 공을 들였던 과제는 초기업(산별) 단위 교섭"이라며 "국가가 공공부문에서 모범적인 모델을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선 비공무원에 초점을 두겠다"며 청소노동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예로 든 뒤 "실태조사를 거쳐 초기 교섭구조를 만들고 확산시키는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노동시간 단축 공약에 대해 정 위원은 "핵심은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라며 "2030년까지 OECD 평균 이하 노동시간을 만들기 위해 주4.5일제부터 연차휴가 저축 활성화, 포괄임금제 폐지 등 다양한 선택 가능한 정책도구를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4.5일제를 법제화하는 것이냐는 말도 있었는데 당은 법제화를 검토한 적 없다"며 "다만 노동시간 단축을 활성화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산업재해 공약에 대해 정 위원은 "기존에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중심의 공약이 나왔는데, 청에는 관리·감독 기능은 있는데 입법·예산 기능이 없어 예방 기능을 하기는 부족하다"며 "정부 부처 내에 통합운영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 산재판정기구에 국선노무사 제도 도입 △업무상질병 추정 적용 대상 질병 확대 등을 언급했다.
체불임금 공약에 대해 정 위원은 "2조 원 정도 되는 체불임금이 있는데 40%가 퇴직금"이라며 "퇴직연금을 의무화하면 이를 1.4조 원 정도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울러 체불임금 회수 전담기구 설립을 짚은 뒤 "채권추심 절차를 강력하게 할 것이다. 근로자보다 국가가 체불임금을 받아내는 것이 쉬울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 정 위원은 △상시·지속, 생명·안전업무 정규직 채용 및 고용원칙 확립 후 대폭 지원을 통한 민간 확산 △근로자 대표위원회 상설화·공공부문 노동이사제 전면화 등 직장민주주의 실현 △청년구직지원금 확대·채용연계형 직업교육프로그램 확산 지원 등 청년·지역주심 일자리정책 등을 노동공약 과제라 설명했다.
"노동 정책 위상 우려", "실사구시해야" 조언도
이날 토론회에서는 새 정부 노동공약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제시됐다. 김성회 L-ESG 평가연구원장은 노동공약을 포괄한 민주당의 전체 대선공약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민주당 버전"이라고 평하며 "노동정책이 여러 과제를 포괄하고 있는데 그 정책 위상이 어디일까 궁금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일하는사람법에 대해서도 그는 "기본적으로 근로자성 확대의 우회로"라며 "어떤 형태로 구체화 될지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 조치가 개별 노동관계법 개정에 이르지 못하고 선언적 성격의 기본법 제정에 그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반면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일하는사람법과 관련 "오해의 소지를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우회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하는사람법은 근로기준법이 가진 강력한 근로자성 경계를 와해"하기 위한 "이념적, 정책적 기본법이자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 대해서는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취지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대기업, 공기업 중심으로 주4.5일제가 도입되면 노동시간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소사업장 노동시간 실태조사, 사회적 대화 등을 통해 모두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교수는 또 특별연장근로인가(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사업주가 노동자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 동의를 얻어 주52시간 이상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게 한 제도)를 통해 "26개에 달하는 업종에서 제한 없는 연장근로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특별연장근로인가 허용 업종 및 사유, 연장노동시간 한도 설정 등으로 "제도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갈현숙 한신대 사회복지학 강사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공약을 겨냥 "사업주의 자발적인 정규직 전환 유도 정책이라는 아름다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너무 나이브(naive)하다"며 비정규직 확산에 대한 "구조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이 제시돼야 한다"고 짚었다.
노동문제에 대한 현실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도 있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정책을 할 때 정말 선언적인 이야기 갖고 시간을 보내지 말고 실사구시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로 5년을 보냈으면 좋겠다"며 "듣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정책으로 담거나 실현되기 어렵다면 자기기만에 가깝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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