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시는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삼성전자 반도체 캠퍼스 유치, 주한미군 기지 이전, 고덕국제신도시 건설, 평택항 개발 등 굵직한 정책들이 연이어 추진되며 '국제도시'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나 급속한 팽창 뒤, 그 속에는 균열이 존재한다. 현재 평택은 과거의 비전과 달리 실행력이 부족하고, 도시 간 연계성이 미흡하며, 외형적인 개발이 실질적인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고덕국제신도시 생활 인프라 태부족
고덕국제신도시는 외국계 기업의 주재원과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을 위한 고급 주거·업무 복합 도시로 설계됐지만, 현재 실정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고덕신도시의 상업시설 공실률은 70%를 넘으며, 상가 건물 대부분이 비어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이곳은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 부족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대형마트나 병원, 문화시설 등이 부족해 시민들은 '국제도시'라는 명칭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 서울 접근성은 개선됐지만, 자족 기능과 정주 여건은 여전히 미비하다.
고덕 주민 김덕희(60) 씨는 “고덕은 말이 국제신도시지, 주민 편의시설이 부족하다. 카페나 상점은 많은데 의료시설, 키즈카페, 문화공간은 부족하다”며 “자치단체장이나 행정이 보여주기식 개발이 아니라 주민 눈높이에 맞는 생활 인프라를 만들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브레인시티 ‘실행력 없는 지식기반 미래도시’
브레인시티는 평택시가 지식산업 중심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 추진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대학, 병원, 연구기관, 첨단 산업단지가 결합된 미래 도시를 표방했다. 그러나 사업은 지지부진했고, 성균관대학교와의 협약이 무산된 이후 고육지책으로 KAIST와 협약을 체결했으나, 여전히 착공을 못하고 있다. 연구기관 설립도 대학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아주대학교 병원 설립 또한 예산 문제로 진척이 없다. 과거의 구호와 설계는 있었지만, 실행력은 부족해 도시의 미래를 이끌 ‘브레인’ 역할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포승·현덕 경제자유구역 ‘기회 없는 산업단지’
포승·현덕 경제자유구역은 평택항과의 인접성을 바탕으로 물류 및 제조업의 중심지로 발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기반 시설 확보 지연, 행정절차의 복잡성, 투자 유치의 어려움으로 사업은 정체 상태에 빠졌다. 주거 및 상업시설 공급이 부족해 근로자들의 정주 여건이 열악하고, 기업 유치에 어려움이 많다. 산업단지임에도 자족적 정주 기능은 미비하며, 유휴 부지가 많은 상태다.
평택항 ‘단절된 물류 중심지’
평택항은 물동량 4위를 기록하는 등 성장세를 보였지만, 항만 기능과 도시 간의 연계성은 부족하다. 평택항은 산업 및 물류 기능에 집중돼 있으며, 관광, 상업, 정주 기능과는 동떨어진 상태다. 교통 인프라가 제한적이고, 일부 컨테이너 터미널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으나 확장 속도는 느리다. 항만과 도시 간의 연결 부족은 평택항이 복합항만도시로 성장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평택의 미래, 무엇이 필요한가
평택의 급속한 팽창 뒤에 숨겨진 문제는 실행력 부족과 균형감 없는 개발이다. 고덕국제신도시는 '국제도시'라는 명칭을 얻었지만, 실제 생활 인프라와 자족 기능이 미비하고, 브레인시티는 대학과 병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포승·현덕 경제자유구역은 산업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평택항은 물류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도시와의 연계성이 떨어진다.
이제 평택은 내실을 다지는 단계로 들어서야 한다. 단순히 외형적인 개발을 넘어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도시의 기능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도시의 미래를 이끌기 위해서는 산업, 물류, 관광, 정주 기능이 함께 작동하는 종합적인 개발 전략이 요구된다.
이동훈 평택시발전협의회 회장은 “평택은 외형적 개발에 집중한 나머지, 주민 삶의 질을 고려한 생활 인프라 투자가 소홀했다”며 “중앙정부-지자체-민간의 공동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평택은 물류 허브가 될 수 있는 지정학적 장점을 갖췄지만, 항만 기능에만 집중되어 있어 산업 및 금융 기능과의 연계가 취약하다”며 “싱가포르나 로테르담처럼 물류와 금융, 고부가 산업이 결합된 항만도시 모델을 벤치마킹해 단순한 물류기지에서 산업 메카로의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행 중심의 도시 전략이 필요하다
평택은 몸집 불리기에만 집중하며, 내실이 부족한 상태에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숫자나 계획이 아닌, 시민 중심의 기능과 공간을 재설계하는 시점에 와 있다. 실질적인 발전을 위한 전략적 전환과 실행이 필요하다. 평택이 진정한 국제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구호가 아닌 실행력을 바탕으로, 균형 잡힌 개발과 자생적인 발전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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