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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여성청소년의 삶은 계속되는데, 서울시는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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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여성청소년의 삶은 계속되는데, 서울시는 등을 돌렸다

[나는봄 폐쇄 저지 공대위 연속기고①] 서울시는 위기 10대 여성청소년들의 삶을 이해하라

일본에서 '신체를 통한 인식'에 초점을 둔 '카라다키즈키(からだ気づき)' 프로그램을 연구하며 보건·체육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심신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에 제공하고 싶었고, 그렇게 8년 전 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과 인연을 맺었다.

'산부인과 가기 두려운 여자 청소년'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채팅 상담방을 운영하자 3000여 명의 여성청소년들이 채팅방을 찾았다. 필요하면 병원에 동행했고, 사후 상담과 위기개입도 병행했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단지 정보 제공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자신의 몸과 삶을 존중받는다는 감각을 되찾게 하는 일이었다.

친족 성폭력 피해로 재판 중이던 한 청소년은 산부인과적 질병이 있음에도 '병원에서 이 병이 드러나면 오히려 불리한 상황이 생겨 재판에서 질 수 있다'는 생각에 병원조차 가지 못하고 있었다. 법, 의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중 삼중의 억압을 겪는 위기 여성 청소년의 현실을 그때 처음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처럼 나는봄은 지난 12년간 성착취·성폭력 피해, 위기임신, 정신적 위기 등 복합적인 위험에 처한 여성청소년들에게 의료와 상담, 심리정서 지원을 전문적으로 제공해왔다. 8명의 실무진, 여성의학과·정신건강의학과·치과·한의학과 전문 촉탁 의료진 20여명, 교육·심리 강사들이 유기적으로 협업해 여성청소년의 건강권과 인권을 실질적으로 지켜내는 통합 지원체계를 운영했다.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 봄'에서 봉사하는 전문의가 위기청소년을 진료하고 있다.ⓒ나는 봄 제공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5월 12일, 오는 7월 4일 자로 센터 운영을 종료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이용자 보호 대책, 인력 고용 승계, 연속 서비스 계획 없이 예고된 폐쇄는 단순한 기관 정리가 아니라, 공공 복지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

서울시는 "내년 1월, 기능을 강화한 새로운 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밝혔지만 수탁기관 공모도 시작되지 않았고, 예산조차 확보되지 않았다. 숙련된 기존 인력 승계 계획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능 강화'라는 설명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나는봄의 주요 이용자는 만 10세부터 24세까지의 여성청소년이다. 쉼터에서 단체 생활 중 유일한 쉼을 얻기 위해 센터를 찾는 17세,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와 혼자 살아가는 20세의 후기청소년, 또래와의 관계 형성이 어려운 경계선 지능의 학교 밖 청소년 등 그들은 단지 치료를 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존중받고 있는 존재인지 확인받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초기 접촉만으로는 위기의 실체를 결코 판단할 수 없다. 이들이 처음 건네는 말은 "피임약을 어떻게 써야 하죠?", "생리를 안 해요"처럼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상담이 진행되면서 임신 걱정, 성병 감염 우려, 성폭력 피해 고백 등 더 심각한 위기로 전이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봄은 단순한 상담기관이 아니라, 위기청소년을 조기에 발견하고 지원하는 공공 안전망이다.

▲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폐쇄저지 피켓ⓒ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폐쇄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글을 쓰는 오늘도 19세 여성 청소년이 임신 관련 상담을 요청해왔다. 학교도, 병원도, 집도 아닌, 마지막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나는봄에 연락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 지시에 따라 센터는 신규 이용자 신청을 받지 않는 상황이며 종사자들은 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개입할 수 없다. 청소년은 다시, 고립된다. 서울시는 "공백은 없다"고 말하지만, 지금 나는봄에 접수되는 위기요청은 대부분 갑작스럽고,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한 긴급상황이다.

서울시는 이용 연속성에 대한 모든 책임을 운영법인에 떠넘겼고, 법인이 내놓은 유일한 대책은 홈페이지에 게시된 일반전화번호 한 줄 뿐이다. 이는 위기대응체계로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서울시가 이용자의 현실을 외면한 채 절차 없는 종료를 강행하고, 청소년 인권, 의료접근권, 정보보호, 상담관계의 연속성 등 나는봄이 실현해온 공공복지의 핵심 가치를 계승할 실질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서울시가 온전히 져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서울시는 나는봄 폐지를 멈추고, 이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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