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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만이라도 엄마를 만나는 게 인생 최대 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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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만이라도 엄마를 만나는 게 인생 최대 소원입니다"

[인터뷰] 한국계 덴마크 입양인 리케 로닝 라스무센

리케 로닝 라스무센(47세)은 지난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나 21개월 만에 덴마크로 입양된 한국계 해외입양인이다. 그녀는 친부와의 재회에는 성공했지만, 7년째 친모 찾기에 좌절하고 있는 리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리케와 지난 한 달간 페북 메신저와 이메일을 통해 서면 인터뷰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덴마크로 입양된 리케 로닝 라스무센, 한국 이름 구민경 씨. ⓒ필자 제공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해외입양이 되었나?

"내 이름은 리케 로닝 라스무센이다. 지난 1978년 6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 이름은 구민경, 생후 21개월 때인 지난 1980년 3월 14일 덴마크로 입양됐다.

양부모로부터 받은 입양서류에는 내가 고아로 홀트에 보내졌고, 거기에서 지내다가 4개월 간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다가 덴마크로 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 덴마크 양부모와 가족에 대해 소개하면?

"모든 사람이 서로를 아는 덴마크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양부모님과 그들의 친아들(내 양오빠)과 함께 살았고, 다른 가족들도 같은 마을에 살았다. 지역 학교에 다니고 스포츠클럽 활동도 했다.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공부도 잘했다.

온통 백인들만 있는 환경에서 평범한 덴마크인처럼 지냈다. 10대 때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내가 덴마크인이 되려고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 덴마크인 형제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고 싶어하는지, 나 스스로도, 가족들도 이해하지 못했다.

양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 사랑이 완전히 무조건적이지는 않다고 느꼈다. 집에 손님이 오면, 그들이 나를 오페어(외국인 가사도우미)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덴마크로 입양된 직후의 리케 씨. ⓒ필자 제공

- 해외입양인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인가?

"나는 스스로 백인 소녀로 생각하면서, 내 아시아인 얼굴과 몸에 대해 슬픔, 어쩌면 수치심 같은 걸 느꼈다. 내가 가장 바랐던 일은 어느날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지고 깨어나는 것이었다."

- 한국 친부와 재회하셨는데, 언제 어떻게 이뤄졌나? 친부가 왜 해외입양을 보냈는지 말해줬나?

"나는 평생 내가 해외입양 됐다는 것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른 아시아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30대 초에 두 아이를 낳고 아이를 하나 더 가질 예정일 시점부터 뭔가 바뀌었다.

다른 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기 시작했고,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고 복잡한 해외입양서류가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던 중 홀트에 연락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를 얻었다. 홀트를 통해 친부에게 연락이 닿았다.

지난 2017년 한국의 해외입양인연대(GOAL)의 '첫 번째 고국방문'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갔다. 그때 친부를 만났는데, 친부가 들려준 내 어린시절 이야기는 입양서류 기록과 달랐다.

친부는 내가 생후 4개월까지 친부모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친모가 경제적 문제로 다투다 '도망갔다'고 했다. 친모는 부모님이 이발소를 운영했고 세 오빠가 있었는데, 무학에 일정한 직업이 없던 친부와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친부모가 헤어진 뒤, 친부는 나를 친할머니 댁으로 데려갔고, 그렇게 셋이 살다가 결국 나를 포기하고 홀트로 보냈다고 한다. 친부는 내가 덴마크가 아니라 미국으로 입양된 줄 알았다고 하셨다. 나중에 안 건데 친모는 내가 친부와 함께 한국에서 자라는 줄 알았다고 한다. 이 모든 새로운 정보로 나는 내 정체성에 의문이 들었다."

- 친부가 한국 친모를 찾는 데 도움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왜 그런가? 친부가 친모에 대해 뭔가 말해줬나?

"지난 2014년 친부와 연락이 닿았을 때, 친부는 친모와 많이 싸웠고 친모가 도망갔다고 했다. 지난 2017년 다시 물었을 때도 친부는 내게 별로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지난 2022년에도 친부는 더 이상의 정보가 없었다. 올해 봄에 다시 친부에게 편지를 썼더니, 친부께서 이전 정보를 확인해주고 친모 오빠들(외삼촌들)의 이름에 대한 정보를 추가로 주셨다.

처음에는 친모에 대해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하셨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주시고 있다. 친부가 더 이상 직접적으로 도움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정보를 주는 게 불법인지 두려워하시는 것 같다. 게다가 친모에게 전해주시지 못했고 나를 해외입양 보낸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계셨다.

친부를 만났을 때 친부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했고, 그날부터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전에는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버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때부터는 진심으로 친부를 탓하지 않았다."

- 홀트와 아동권리보장원이 친모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아동권리보장원이 한국 친모와 연락했다고도 주장하는데,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

"홀트에서 받은 입양 파일에는 부모 모두 알 수 없다고 되어 있었는데, 지난 2014년에 홀트에서 받은 문서에는 친부모 이름이 모두 나와 있었다. 당시 내가 홀트에게 왜 그게 가능한지 묻지 않은 게 신기하다. 당시 그냥 기쁘고 홀트에 고마워서 그런 생각 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지난 2020년 아동권리보장원이 친모를 찾아서 연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친모가 아동권리보장원에 전화를 걸어와서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에 아이를 낳은 적이 있다는 것은 확인해줬다고 한다.

지난 2022년 한국 방문 중에 아동권리보장원이 친모에게 다시 전화했다. 그때 친모는 여전히 나를 만나거나 어떤 형태의 연락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새 가족 때문이라고 하셨단다."

- 한국 친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친모가 이 기사를 읽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엄마, 과거와 현재의 상황에 대해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언젠가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해요. 단 한 번 보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모녀 관계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짧은 만남만을 원해요. 매일 엄마를 생각하며, 엄마를 보고 만지는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소원입니다. 나는 덴마크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나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국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가 최근 한국의 해외입양 관행에서 일부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많은 해외입양인들이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데, 한국 진화위와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진화위와 한국정부가 인정했으니 책임도 져야 하고 해외입양인과 친부모의 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야한다. 게다가 미혼부모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사회가 그들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데도 책임이 있다.

내가 아동원리보장원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내 친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친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만나겠다고 더 쉽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다. 아동권리보장원은 친어머니들이 안전하게 아이를 비밀리에 만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또 친어머니들이 자녀에게 은밀하게 편지를 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또 한국정부와 사회는 비혼모 친어머니들에 대해 사회적 낙인을 찍지 말아야 하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캠페인을 벌어야 한다."

- 해외입양의 잘못된 관행과 관련해 홀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지난 2013년 홀트에 연락했을 때 그들이 친부를 찾았다고 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시 그저 홀트에 고마워했고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전혀 묻지 않았다. 아마 내가 아주 운이 좋고 완전히 특별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후 비슷한 상황들에 대해 듣기 시작했고, 오늘날은 홀트에 대해 전혀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 정반대다. 이제 홀트와 아동권리보장원은 해외입양인들을 돕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한다."

- 해외입양과 관련해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한국인들은 해외입양인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덴마크와 다른 해외입양 수령국들이 해외입양을 승인한 책임의 일부를 지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지금도 덴마크는 해외입양 중 발생한 인권침해와 관련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법적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현재 리케 씨의 가족들. 남편과 세 명의 아이들. ⓒ필자 제공

* 리케 로닝 라스무센님은 현재도 친모와의 만남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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